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이변은 없었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1일(한국시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잘기리오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 A조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80-94로 패배했다.

25년 만의 올림픽 본선진출을 노렸던 대표팀은 베네수엘라를 1승 제물로 노렸지만 여전히 세계농구와의 벽을 확인했다. 2일 열리는 2차전에서 홈팀이자 국제농구연맹 랭킹 8위의 강호 리투아니아에게 패하면 도쿄올림픽 도전은 이대로 끝난다.

전반에 무기력한 대량실점이 아쉬웠다. 한국은 1쿼터 초반 몸이 덜 풀린 베네수엘라가 실책으로 주춤하는 틈을 타 이현중이 득점을 터뜨리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1쿼터 후반부터 수비가 급격히 무너지며 외곽포와 리바운드를 대거 허용했다. 한국은 전반을 38-56, 무려 18점 차이로 크게 뒤진 채 마감했다.

3쿼터 들어 조상현호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전반에만 3개의 파울을 저지르며 주춤했던 이현중이 적극적인 플레이로 공수에 걸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동료들의 스크린을 활용하여 던지는 3점슛과 빠른 공수전환이 돋보였다. 수비에서도 장신과 활동량을 활용한 넓은 수비범위와 악착같은 근성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전성현-변준형의 3점슛을 비롯하여 이대성도 과감한 림어택으로 공격을 지원했다. 한국은 한때 베네수엘라를 1점차까지 압박하는 등 3쿼터를 28-14 더블스코어로 압도하며 66-70, 4점차까지 점수차를 좁혔다. 낙승 분위기에 젖어있던 베네수엘라 벤치도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농구의 고질병인 4쿼터 뒷심 부족이 재발했다. 3쿼터까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게 눈에 보였다. 수비매치업을 잇달아 놓쳤고 리바운드를 계속 허용하면서 쉬운 실점을 내줬다. 라건아가 골밑에서 분전했지만 장신선수가 부족한 한계를 혼자 극복할 수는 없었다. 4쿼터 초반에 점수차가 다시 두 자릿수로 벌어졌고 한국은 이 격차를 다시 만회하지 못했다. 경기 종료 2분 전 스코어가 다시 77-93까지 벌어지면서 한국은 사실상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농구의 '현재'임을 보여준 이현중

이날 경기의 가장 큰 소득은 역시 이현중이었다. 성인대표팀 첫 발탁이었던 이현중은 지난 이사아컵 4경기에서 평균 17.3점을 기록한 데 이어 전력상 한 수 위인 베네수엘라전에서도 3점슛 3개 포함 팀내 최다인 18득점을 올렸고 5리바운드 2스틸을 추가하며 사실상 한국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문태종의 은퇴 이후 국제무대에서 확실한 슈터 부재에 굶주렸던 대표팀으로서는 이현중이 더이상 한국농구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현재'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실력이었다.

라건아는 무릎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17득점 10리바운드로 더블 더블을 올리며 그나마 한국의 골밑이 유린당하지 않도록 버텨줬다. 아시아컵에서 부진했던 이대성도 17득점 3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분전하며 모처럼 주장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현중까지 포함하여 베네수엘라전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이 3인방의 공통점이라면, 이미 해외에서 선진 농구를 오랫동안 경험하며 외국 선수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는 것이다.

패배는 안타깝지만 결과만 놓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베네수엘라를 1승 목표로 잡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하면 처음부터 한국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높지 않았다. 조상현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아시아컵에 이어 첫 데뷔전이자 초보감독이었고, 대표팀은 이정현-김종규-허훈-송교창-김선형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유망주들 위주로 꾸려진 1.5군에 가까운 전력이었다. 선수들은 열악한 상황과 준비과정 속에서도 국가대표라는 책임감만으로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성도 필요하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슬로베니아-캐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러시아-도미니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농구가 국제무대에서 안타까운 좌절을 거듭할 때마다 비슷한 평가도 반복된다. '졌지만 잘싸웠다', '희망을 건졌다', '좋은 경험이 됐다'같은 레퍼토리들이다.

문제는 그 뒤로도 근본적인 변화나 성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걸음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격려와 희망도 좋지만 그것이 단지 자기 위안에만 그친다면 영원히 발전은 없다.

한국농구가 과연 이번 최종예선에서 이변을 기대할 자격이 있을 만큼 최상의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기존의 주전급 프로선수들이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를 잇달아 고사하며 유망주들을 기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에 가까웠다. 특별히 이전 대표팀과 차별화되는 조상현호만의 개성이나 색깔이 드러났던 것도 아니다.

조상현호의 한계
 
남자농구, 베네수엘라 도쿄올림픽 예선 첫 승 도전 조상현 감독이 지휘하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7월 1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최종 예선에 출전한다. 사진은 인터뷰하는 조상현 대표팀 감독.

조상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 ⓒ 연합뉴스

 
조상현호의 한계는 이미 아시아컵에서부터 드러났다. 한국은 태국-인도네시아같은 약체들을 압도하며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유일한 강팀이었던 필리핀에게는 두 번 연속 석패했다. 불리한 심판 판정의 영향도 있었지만 근본 원인은 승부처에서의 실책과 리바운드 열세였다. 그리고 이 문제점은 아시아농구보다 더 수준이 높은 국제무대에서 베네수엘라를 상대로도 반복됐다.

2미터 이상의 장신선수가 부족한 한국농구의 특성상 높이 열세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기와 몸싸움, 체력은 또다른 문제다. 한국농구가 전반에 일찍 점수차가 벌어진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투맨 게임을 전혀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2대2 플레이는 농구 전술의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은 베네수엘라의 플레이를 알고도 막지 못했다. 수비수들이 스크린에 걸리는 족족 종이인형처럼 나가떨어지니 수비전술이고 뭐고 의미가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슈팅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서도 베네수엘라가 강하게 압박을 걸어오자 볼 간수에 어려움을 겪으며 슛도 던져보지 못하고 실책으로 공격권을 헌납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한국이 3쿼터 반격에 가능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방심 덕분이었다. 하지만 점수차가 좁혀지며 베네수엘라가 다시 정신차리고 수비집중력을 끌어올린 4쿼터에는 다시 점수차가 벌어졌다.

국제무대에서 언더독인 한국은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높이 열세를 만회해야하는 팀이다. 이러다보니 체력소모가 상대보다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최종예선에서 석패했던 2008년 캐나다전이나 2012년 도미니카전도 잘싸우다가 4쿼터에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실책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베네수엘라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력의 열세를 떠나 같은 패턴의 문제점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선수나 감독의 능력 탓만이 아니라 협회의 의지와 비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올림픽 본선에 오랫동안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수준의 강호들을 상대할 기회가 많지 않다. 최종예선은 그나마 올림픽 수준의 강호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무대였다.

그러나 그 경험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연속성있게 이어지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이번에도 그냥 몇몇 선수들의 분전과 '졌잘싸'라는 자기 위안으로 그친다면 앞으로 4년 뒤에도 한국농구가 다시 올림픽 본선이나 세계무대 1승을 기대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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