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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에서 홀로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바다 위에 쌓아올린

가토 구니오가 그리고 히라타 겐야가 글을 쓴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 바다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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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에는 바닷물이 점점 차오릅니다. 
 
물이 차올라서 살던 집이 물속에 잠겨버리면 잠긴 집 위에 새로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이 또 잠기면 그 위에 또 새집을 짓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치 나무 상자를 몇 개 씩이나 쌓아올린 듯한 집이 되었습니다.

삼 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이 집에서 홀로 살아가던 할아버지, 그런데 또 다시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다시 새 집을 지어야겠지요. 뚝딱뚝딱 집을 짓던 할아버지, 그만 톱과 망치가 바닷속 깊이 빠져버렸습니다. 잠수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바닷속을 헤엄쳐 내려갔습니다.

삼층이나 아래에 있는 집에서 찾은 연장들, '아....', 그 집은 오래전 어느 봄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집이었습니다. 다시 좀 더 아래 쪽으로 헤엄쳐 내려 간 할아버지, 옛날 일들이 떠오릅니다. 퍼레이드 배가 음악을 연주하던 마을 축제,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맛있는 파이를 구워주웠지요.

할머니가 만든 드레스를 입은 맏딸이 시집을 가던 집도, 그보다 더 오래 전 아기가 태어나던 집도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아래  쪽, 아직 이곳에 물이 없던 시절, 이곳에서 자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을 하고 처음 지은 작은 집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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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원작 에니메이션이 81회 아카데미 단편 에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프랑스 앙시 에니메이션 영화제를 비롯 12개 영화제에서 20개의 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영화제가 이 그림책에 찬사를 보냈을까요? '매장에서 읽다가 울고 말았다'는 서점 담당자들의 말처럼,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은 오랜만에 다락 청소를 하다 찾은 오래된 앨범 속 '가족 사진'을 보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노스탤지어'라고 하지요. 할아버지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보여주는 추억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소환합니다. 독일의 문화학자 얀 아스만은 '역사'란 결국 우리가 가진 '기억', 문화적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지난 삶의 역사가 바닷속에 층층이 쌓여진 집을 통해 우리가 가진 경험 속 '향수'를 소환합니다.

그렇게 바닷속 여행을 통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던 할아버지, 다시 올라와 짓던 집을 마무리하십니다. 이전 보다 훨씬 더 작은 집을요. 하지만 다시 돌아온 봄, 벽틈에서는 민들레가 한 송이 피었고 할아버지는 꽃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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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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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결에 맞춰 집을 짓다 

마을에 점점 더 차오르는 바닷물, 이건 우리에게 밀려드는 시간의 물결 아닐까요?  시간의 물결 속에 할아버지처럼 우리는 그 시간에 걸맞는 자신만의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그의 인지 발달 이론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외부 환경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 틀, '도식(schemes)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림책 속 '집'처럼 말이죠.  각자가 태어난 환경, 자라온 성장 배경 그리고 사회적 경험에 따라 그에 걸맞는 자신만의 인식 '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각자의 외부 환경이 변화되면 더 이상 기존의 '도식, 스키마로 세상을 해석할 수 없게 됩니다.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에 처음 입학 했을 때 우리가 느끼던 '혼란스러움'이 바로 이런 거죠. 처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을 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던 존재에서 이제 내가 한 생명의 절대적인 '보호자'가 되는 상황이 낯설고 두려웠던 기억은 '엄마'가 되어본 그 누구라도 공감할 '기억'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맨 땅에 지어지는 게 아닙니다. 기존에 있던 집 위에 새로운 '인지적 경험'을 쌓아올려 한층 성숙한 존재로 우리를 다시 세상에 '동화(assimilation)'되도록 합니다. 

할아버지는 계속 새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이 살던 집 위에, 갓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장하자 또 거기에 걸맞는 집을 차례로 지어갔습니다. 잘 먹고 입히기만 될 줄 알았던 '부모' 노릇은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또 다른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지요. 공부면 공부, 친구 관계면 친구 관계, 하다못해 성적인 고민까지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삶의 과제를 어떻게든 좀 덜 버겁게 해주기 위해 부모들은 늘 고군분투합니다. 

그림책 속 할아버지의 집은 처음 할머니와 결혼할 때는 아주 조그만 보금자리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며 할아버지의 집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평수의 문제일까요? 아니 그것보다는 삶의 미션들로 가득찬 정점의 인생 그래프같은 것 아닐까요. 그런데 그 인생의 '정점'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늘 나보다는 '우리'를 위해 해야 할 '과제'들로 버거웠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 바다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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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말이 안 통한다고 하고,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곤 자신들의 둥지를 찾아 훌쩍 떠납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북적북적하던 '집'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서서히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의무와 책임과 당위가 빠져나가는 시간'입니다. 시니어 전문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이노우에 가즈코는 나이듦의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진짜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삶의 수고와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복잡하고 번잡한 것들을 털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른다워지려고, 부모다워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이제 나이듦의 시간, 평생을 살아왔던 '지혜' 위에, 하지만 의무와 당위에서 자유로워질 새 '집'이 필요할 때입니다. 작고 소박한 할아버지 집 벽틈에 피어난 민들레, 돌틈에서도 꽃을 피는 민들레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 에도 실립니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히라타 겐야 (글), 가토 구니오 (그림), 김인호 (옮긴이), 바다어린이(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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