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브레이크까지 이어진 첫 세트를 아쉽게 내주고 대회 첫 날 어둠이 깔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라켓을 가방에 집어넣어야 했던 권순우가 다음 날 이어진 두 번째 세트부터는 다른 선수가 된 듯 침착하게 상대 선수의 스트로크 실수를 기다렸다. 네 번째 세트 두 번째 게임이 끝난 뒤에도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약 4시간 정도 또 기다려야 했지만 역전 기세를 휘어잡은 권순우에게는 문제될 것 없었다.

한국 남자테니스의 희망 권순우(세계 랭킹 71위)가 우리 시각으로 29일(화) 오후 8시 35분 영국 런던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 5번 코트에서 벌어진 2021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다니엘 마주어(독일, 222위)와의 1라운드에서 3-1로 멋진 역전승을 거두고 이 대회 커리어 최초로 2라운드(64강)에 올랐다.

권순우의 아름다운 '백핸드 다운 더 라인'

권순우는 하룻밤을 넘기며 첫 세트를 내준 이유를 여러 차례 곱씹을 수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스트로크 싸움은 좋지만 너무 급한 마음으로 빨리 끝내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게임 흐름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다음 날 이어진 두 번째 세트부터 권순우는 코트 반대쪽에서 공을 넘기는 다니엘 마주어의 스트로크를 끈질기게 받아주었다. 수비의 기본부터 충실하게 갖추고 상대의 실수를 기다린 것이었다. 이 전략은 너무도 정확하게 맞아들었고 실제로 다니엘 마주어의 스트로크 실수(언포스드 에러)가 조금씩 늘어난 것이다.

역전승을 위한 첫 번째 중요한 갈림길은 2세트 여섯 번째 게임이었다. 마주어의 서브 게임이었지만 권순우가 3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아냈다. 베이스라인 뒤에서 침착하게 수비에 집중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다니엘 마주어의 백핸드 크로스가 옆줄 밖에 떨어지는 바람에 러브 게임이 나왔다. 4-2로 달아나기 시작한 권순우의 역전승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2세트 마지막 포인트도 끈질기게 스트로크 싸움을 펼친 권순우가 다니엘 마주어의 실수를 기다린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가져왔다. 다니엘 마주어가 급하게 돌아서서 때린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를 넘지 못한 것이다. 

3세트와 4세트는 데칼 코마니처럼 비슷한 패턴이 나왔다. 다니엘 마주어의 첫 서브 게임을 권순우가 침착하게 대응하며 1포인트도 내주지 않고 러브 게임을 만들어 세트 초반 분위기를 휘어잡은 것이다. 여기서도 다니엘 마주어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에 걸리는 경우가 자주 나왔다.

수비만 잘 한 것이 아니라 권순우의 멋진 스트로크가 상대를 압도하는 순간도 이어졌다. 3세트 여섯 번째 게임을 가져오는 위닝샷이 마주어가 라켓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뻗어나가는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이었다.

그리고 4세트 두 번째 게임까지 권순우가 따내 2-0 게임 스코어가 만들어졌을 때 비가 퍼붓기 시작하는 바람에 잔디 코트 위에 방수 커버가 덮였고 약 4시간 뒤에 남은 일정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도 두 번이나 연기된 첫 라운드였지만 역전승 요령을 완벽하게 터득한 권순우의 스트로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4세트를 6-4로 끝냈다. 매치 포인트도 다니엘 주니어의 포핸드 스트로크 실수였고 역시 러브 게임이었다.

이제 권순우는 2라운드(64강)에서 도미니크 쾨퍼(독일, 62위)와 만나게 됐다. 쾨퍼는 1라운드에서 이번 대회 27번 시드를 받은 미국의 오펠카를 3-0(6-4, 7-6, 6-2)으로 물리치고 기세등등하게 올라왔다.

2021 윔블던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라운드 결과
(6월 29일~30일, 올 잉글랜드 테니스클럽 5번 코트)

권순우 3-1(6-7{2TB7}, 6-3, 6-4, 6-4) 다니엘 마주어

주요 기록 비교
서브 에이스 : 권순우 14개, 다니엘 마주어 10개
더블 폴트 : 권순우 6개, 다니엘 마주어 4개
첫 서브 성공률 : 권순우 64%(84/131개), 다니엘 마주어 66%(80/121개)
첫 서브 성공시 득점률 : 권순우 81%(68/84개), 다니엘 마주어 71%(57/80개)
세컨드 서브 성공시 득점률 : 권순우 49%(23/47개), 다니엘 마주어 49%(20/41개)
네트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81%(13/16개), 다니엘 마주어 58%(18/31개)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40%(4/10개), 다니엘 마주어 33%(1/3개)
리시빙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36%(44/121개), 다니엘 마주어 31%(40/131개)
위너 : 권순우 41개, 다니엘 마주어 33개
언포스드 에러 : 권순우 34개, 다니엘 마주어 48개
총 뛴 거리 : 권순우 5723.3m, 다니엘 마주어 5635.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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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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