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뿌듯한 결말이었다. 방영 초기 불륜 혹은 치정 드라마라는 오해(?)를 받았던 tvN 드라마 <마인>. 하지만 중반 이후 드라마는 재벌가에 갇힌 며느리들의 연대기로 극의 중심이 옮겨졌고 마침내 여성들의 '해방'으로 끝을 맺었다.

'배우'라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감을 버리고 재벌가에 입성했던 희수(이보영)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찾았고, 서현(김서형)은 꿈꿔왔던 야망을 실현하면서 동시에 성적 정체감을 통합시켰다. 하준의 생모 자경(옥자연)은 원해왔던 아이에 대한 돌봄을 시작했으며 유연(정이서)은 신분의 벽을 넘어섰다.
 
특히 희수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은 여성이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매우 잘 보여줬다. 서현과 자경은 희수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자기 자신 역시 치유해갔다. 이들의 이야기는 미국의 심리분석전문가인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쓴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 등장하는 내 안의 여걸(여성 본연의 야성을 간직한 여성)을 회복한 여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희수를 중심으로 이들이 자기 자신을 회복해간 치유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왜 희수는 지용 같은 인간에게 끌렸을까?
  
 tvN <마인>의 여성들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tvN <마인>의 여성들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 tvN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한 가지 들었던 의문점이 있었다. 바로 희수처럼 영민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던 여성이 어쩌다 지용(이현욱)같은 괴물에게 빠져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희수는 드라마 초반 지용에 대해 "저 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라며 남편의 사랑을 맹신한다. 도대체 그녀는 왜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에스테스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성들>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야성(여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판단력과 직관력 같은 내면의 힘 혹은 심리적 잠재력)'을 상실하는 순간을 맞는다. 몹시 지쳐있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질 때 종종 야성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바로 이럴 때 여성은 쉽게 유혹에 빠진다.
 
희수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영국여행 중 지용을 만난다. 2회 희수는 엠마 수녀(예수정)와의 면담 도중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다 이룬 거 같았지만 인생의 허무함이 몰려오던 시절이었죠. 연기에 대한 부담과 사람들의 관심에 지쳐있기도 했고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당시 희수가 지치고 공허했던 상태, 즉 에스테스가 말한 야성을 상실한 시기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에스테스에 따르면 이런 시기에 여성들은 종종 분별력을 잃곤 한다. 때문에 희수는 지용의 '계산된 호의'를 '진실한 사랑'으로 느꼈을 것이고 그토록 소중했던 배우로서의 커리어마저 포기하고 지용의 아내로 살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희수는 결혼한 후에야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취급"하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지용의 사랑을 더 믿으려하고 하준(정현준)에 대한 모성으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줄넘기를 하며 자신을 지키고자 애쓰지만, 진정한 내면의 힘을 끌어낼 용기는 아직 내지 못한다.
 
희수를 자각시킨 자경
   
 <마인>의 자경은 희수를 자각시키고 그 여정에 함께한다.

<마인>의 자경은 희수를 자각시키고 그 여정에 함께한다. ⓒ tvN

 
이런 희수를 '자각' 시킨 건 자경이다. 희수는 자경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부터 자경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불안해 하는데 아마도 자경이 희수의 직감을 깨어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마음 안에 일어나는 견디기 힘든 감정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이 내면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응시할 때 우리는 타고난 내면의 힘이자 잠재력인 야성을 다시 깨울 수 있다. 희수는 이런 기분을 무시하라는 여러 가지 증거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알아내고 분노한다.
 
처음에 희수의 분노는 자경에게 향한다. 아마도 이는 자경의 존재 자체가 주는 불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경의 존재는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하면서까지 의지했던 지용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게다가 하준의 생모라는 자경의 위치는 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라 여기며 공허한 마음을 채워왔던 하준마저 빼앗아갈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꿈꾸던 평온한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이런 진실을 알게 하는 존재인 자경에게 증오와 분노가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테다.
 
하지만 희수는 분노를 실컷 토해낸 후 마침내 판단력을 회복한다. 그녀는 자신의 적은 자경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억압자 지용이었음을 간파하고 자경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를 받아들인다. 11회 자경은 유산을 한 희수를 극진히 돌보고, 희수는 자경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같이 먹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같은 아픔을 겪은 여성들이 연대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연대하며 서로를 지켜내다
    
 <마인>의 희수는 배우로서 자기 자신의 삶을 회복한다.

<마인>의 희수는 배우로서 자기 자신의 삶을 회복한다. ⓒ tvN

 
이렇게 손잡은 희수와 자경에게 서현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서현은 처음부터 늘 희수를 지지하는데 아마도 이는 희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하준에 대한 모성으로 살아왔던 희수와 사랑보다는 야망에 무게를 싣고 지내온 서현은 아마도 매우 상반된 인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잃고 지내왔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닮아있다. 다만 희수는 자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오래 지내왔고, 서현은 이를 자각하면서도 야망을 위해 감내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서현은 희수를 온 힘을 다해 돕는다. 희수가 아플 땐 "나만 믿어. 내가 동서편이야"라고 말해주며 그녀를 안심시키고, 자신이 가진 힘을 모두 끌어모아 희수가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전략들을 짜낸다. 그녀가 이렇게 혼신을 다해 희수를 도울 수 있었던 건, 희수의 해방이 자신의 해방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서현이 희수를 돕는 과정은 자기 자신의 치유과정이기도 했다. 에스테스가 앞의 책에서 '심리적인 건강을 되찾는 길은 외롭거나 상처받은 존재들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고 적었듯이, 서현은 희수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건강도 회복해간다. 서현은 지용과 대적하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감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수용해낸다. 남편 진호(박혁권)에게 커밍아웃하고, 세상에 자신의 정체감을 드러낼 용기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희수에게 가해진 억압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 역시 해방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이렇게 힘을 모은 여성들은 '타산'과 '사랑'을 구분해낸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이 '가부장제는 가족 구성원들을 경제적 이해관계로 엮어놓음으로써 그들 사이에 순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막는다'고 적었듯, 자본이 최우선인 효원가에 순수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모성이라는 순수한 사랑을 구분하고 이를 지켜낸다.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하준에 대한 순수한 모성적 사랑'이었고, 여성들은 '하준을 지킨다'는 원칙을 원동력 삼아 지용을 무너뜨린다.
 
순수한 사랑을 이해 타산과 분리시킨 이들은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님'도 간파한다. 희수는 12회 자경에게 "하준이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요"라고 제안하고, 자경은 희수에게 "당신이 진짜 엄마"라고 말해준다. 드라마 초반 서로 하준을 '나의 것'이라 말하며 소유하려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는 이들이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준인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야. 당신 것도 내 것도 이혜진(강자경의 다른 이름)것도 아니야. 내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아이로 잘 키워 세상에 돌려놓을게"(13회)라는 희수의 말은 이런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대사였다.
    
 <마인>의 서현은 야망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성소수자로서의 정체감을 통합해낸다.

<마인>의 서현은 야망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성소수자로서의 정체감을 통합해낸다. ⓒ tvN


16회 서현은 희수의 촬영장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는 한계를 넘어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날 더 사랑할 수 있는. 동서가 나에게 알려준 거야."

이렇게 이들은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진정한 나의 것이 무엇인지를.

"모든 것을 잃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나 자신. 마인. 그거예요."(희수, 16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희수, 서현, 자경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의 모습은 참 생기있어 보였다. 이는 이들이 여성으로서 지니고 있던 본성의 힘, 그러니까 심리적 잠재력(에스테스 식으로 말하자면 '야성')을 회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든 내면의 힘을 기억하고, 이를 통해 사랑과 폭력, 억압과 호의를 구분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함께하는 연대의 손길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되살아나 생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인>의 여성들이 보여준 함께하는 치유의 여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마인 김서형 이보영 옥자연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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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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