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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과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을 다룬 공연 <고기, 돼지>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돼지 농장을 방문했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책도 읽고, 육시에 대한 영상도 보면서 자료 조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미루었던 것은 실제 도축 장면을 보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도축'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성인 인증이 필요한 실제 도축 장면 영상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댓글도 많이 달려있다. 살아있는 동물인 돼지가 왜 포장된 고기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왜 인간들은 돼지를 열악한 환경에 가두고 6개월 동안 찌워서 잡아먹는 짓을 반복하는지. 이는 실제로 돼지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지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해당 영상을 공연 준비 기간 막바지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잠들기 전에 봤던 기억이 난다. 매달려서 운반되는 기절한 돼지, 쏟아져 나오는 피와 내장이 순식간에 분해되는 돼지의 몸, 분해 과정을 거친 후 익숙한 모습으로 조각나 있었다.
  
나는 공연 이후 비건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동물권과 기후위기, 공장식 축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셜미디어 타임라인과 친구들도 점점 관련한 정보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새벽이 생추어리, 동물권 단체들의 개농장 방문 사진, 보호소의 안락사 소식과 임시보호처를 구하는 소식 등을 보게 되면서 언젠가 나도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비질(Vigil, 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도 한 번은 하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가지는 않지만, 도축 영상을 보게 된 날처럼 운명적으로 오고야 말 것이라고 각오하는 이상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비질에 참여하다

우리는 오산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아침 일찍 모였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도살장으로 향했다. 우선 근처 공원 화장실에 있는 물통을 씻고, 동물들에 줄 물을 채워서 도살장 앞 도로에 모였다. 절대로 길을 건너 도축장으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듣고 돼지나 소를 태운 트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길 건너 도축장에는 이미 한 대의 트럭에서 돼지들이 내리고 있었다. 트럭 운전사인지 도축장의 근로자인지 알 수 없는 한 분이 긴 쇠 파이프로 돼지들을 찔러 트럭에서 내리게 하고 있었다. 내가 글로 배운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돼지들이 계류장으로 갈 때 빨리 내리게 되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다칠 수 있어 천천히 안전하게 내리게 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읽은 것 같은데, 그런 권장사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는지 계속 기다려도 동물을 태운 반입 트럭은 지나가지 않았다. 어쩌다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트럭도 쌩하니 들어가 버려서 비질 활동을 해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도축장에 들어간 트럭에서 동물들이 내리면 그때부터 엄청난 비명이 시작되었다. 돼지든 소든 마음껏 소리를 질러댔고, 그 소리는 계류장에서 50미터 넘게 떨어져서 지켜보는 인간들에게 전해졌다. 모두 움찔하며 하던 행동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은 냄새도 잘 맡을 수 있고 소리도 잘 들리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도축장을 바라보며 소리를 듣다가 그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에 바싹 붙은 눈, 목격자로서 존재하고 있는 눈. 이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비질이라는 것이 그저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무의미한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앞서 썼듯이 우리는 계속 기다렸고 계속 허탕을 쳤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날씨가 더워져서 도축장 반입 시간이 당겨진 거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트럭에 실린 동물을 만난 후 방문할 계획이었던 도축장 뒤편의 매매 시장을 일부가 먼저 갔다 오기로 했다. 일부가 먼저 떠났고 기다릴 사람들은 계속 기다렸다. 슬슬 허리와 다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도축장에서는 계속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에서 살아있는 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 돼지의 분뇨 냄새가 섞인 냄새였다.

똥오줌을 가릴 공간도 없이 좁은 틀에 갇혀 사는 돼지는 어쩔 수 없이 몸에 분뇨를 묻히게 된다. 더운 날씨에 땀구멍이 없는 돼지는 진흙 목욕을 해서 체온을 낮춰야 하는데,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 위에 갇혀 사는 돼지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자기의 분뇨를 몸에 바른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냄새가 아니라 살아있는 돼지의 냄새였다. 그 냄새가 나지 않았어야 하는 돼지들이었다. 넓은 공간이 있고 흙과 짚이 제공되는 환경에서 만난 돼지에겐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랄 게 없다. 처음 맡아보는 재미있는 냄새가 났었다. 그런 넓은 농장에서는 돼지를 가까이서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냄새를 맡기도 힘들었다.

분해된 동물 사체를 전시해서 파는 매매 시장에 다녀온 이들이 혹시 그사이에 동물을 만났냐고 물었다. 도축장에서는 계속 돼지들이 소리를 지르고 길 건너까지 냄새가 났지만, 우리는 돼지를 만나지 못했다.

도축된 동물, 구역질이 났다

시간이 많이 지나자 도매시장에 다녀오지 않은 분들이 견학하고 오자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는 절대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영업하는 분들이 싫어하신다고. 비건 지향을 하고 도축 영상을 본 뒤로는 정육점이나 고기가 전시된 곳을 보기가 힘들어 멀리 돌아가기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뭐 대단한 것이 있겠냐 싶어서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본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방금 도축된 동물이었다면 그곳이 지옥이겠구나 싶었다. 절단된 동물의 머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하얗게 색이 바랜듯한 동물들의 머리가 있었고, 거기 아직 잘 있는 눈이 나를 바라본 채 혀가 내밀어져 있었다.

걸어가다 보니 한 명의 것인지, 여러 명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내장이 뒤섞여서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담겨 있었고, 갈비뼈가 그대로 있는 소와 돼지의 가슴이 반으로 잘려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를 손님으로 오인한 분들이 고기가 좋다며 우리를 불렀다.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습니다'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을 나오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내가 속이 좋지 않아 보이자 다들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를 걱정할 때가 아닌데 싶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신이 있다면 저 광경을 봤을까. 도매시장 앞 철창 안에 있는 개들이 우리를 보며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고 뒷발로 일어서서 친근함을 표시했다. 누구는 죽여서 분해하고 누구는 그 고기를 받아먹으면서 살아가는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는 뭘 하는 거지?

다시 도축장 앞길로 돌아가자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조금 전 도매시장의 광경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귀에는 계속 돼지들이 질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배가 고파질 시간인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비가 계속 왔다. 지나가는 차들이 있어서 길가로 바싹 붙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트럭이 오지 않자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해산해야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마무리하기 위해 물통을 가져왔던 인근 공원의 정자로 향했다. 모두 느낀 바를 한마디씩 나누고 누군가 준비해온 방울토마토를 돌려서 하나씩 먹었다. 와중에 맛있어서 좀 어이가 없었다.
  
이후 버스 탈 사람들은 정류장으로, 다른 차를 탈 사람들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는데 앞서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빨라졌고,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따라잡으니 도축장에 들어가려고 좌회전을 기다리던 돼지를 실은 트럭 한 대가 길 가에 정차하고 있었다.

물을 나눠 주다
 
c어스링스 김지수
▲ 부드러운 분홍코 c어스링스 김지수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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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트럭을 에워쌌다. 가까이 다가가자 돼지들의 열기와 냄새가 훅 올라왔다. 왜 물을 준비하는지 알만한 열기였다. 좁은 트럭에 많은 돼지를 싣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멀미를 했는지 토사물이 묻은 돼지도 있었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뭔가 표시가 되어있는 돼지도 있었다. 다들 궁금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돼지에 다가갔다.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뚫어 돼지 입으로 물이 들어가게끔 했다. 나도 물통을 들고 가서 관심을 보이는 돼지에 물을 주었다. 다른 분이 물이 그냥 흘러내려 가지 않고 돼지가 핥을 수 있도록 물을 손에 받아 주었고, 돼지는 그분 손에 흐르는 물을 혀로 마셨다. 다른 돼지들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돼지가 짜증 섞인 몸짓을 하기도 했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더워서 인간들이 다가오든 말든 늘어져 있는 돼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몸에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계속 물을 받아먹은 한 돼지에 분홍 코가 드러났다. 돼지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코가 내 눈앞에서 물을 마시느라 실룩대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오른손 검지를 펼쳐 코를 살짝 눌러보았다. 다행히 돼지는 놀라거나 피하지 않고 내가 터치하게 두었다. 너무나 부드러웠다. 누군가 나에게 돼지! 라고 하면 분홍 코! 부드러워! 하고 바로 외칠 정도로 부드러웠다.

고작 6개월 살다가 도축장으로 가는 돼지 한 명도 구출 못 한 날이지만, 내가 준 물을 마신 그 순간만큼은 시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돼지의 코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비질은 그저 인간들이 '아이고 도축되는 동물 불쌍하여라 가여워라' 하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궁금한 분들은 서울 애니멀 세이브의 정기적 비질 활동에 함께 참여하여 꼭 한번 동물을 만나보길 추천드린다. 만나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깐.

태그:#비질, #공장식축산, #느끼는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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