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서형.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서형. ⓒ 씨네2000

 
15년의 시차를 두고 출연한 이 배우는 얼마나 달라졌고 성장했을까. <여고괴담>의 여섯 번째 시리즈가 지난 17일 개봉해 관객의 평가를 받고 있다. 신인 배우와 감독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이 프렌차이즈에 배우 김서형의 위치는 조금 독특하다. 4편과 6편 모두 출연한 유일한 배우이며 동시에 약한 학생을 품을 줄 아는 좋은 어른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교'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영화는 그간 공포영화로써 장르에 충실했던 전작과 달리 1편의 주제 의식과 정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어른에게 유린 당한 고교생의 슬픔, 그 마음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과거에 어떤 상처를 입은 뒤 수십년이 지나 모교의 교감으로 발령받은 은희 역을 맡았다. 학생을 홀리는 학교 내 귀신의 존재가 괴담처럼 전해지는 가운데 은희는 그 귀신보다 더욱 무서운 현실 속 어른의 행태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기꺼이 복수를 강행하는 인물이다.

어른의 책임감

같은 시리즈에 또 출연하는 건 전혀 부담이 아니었다고 김서형은 말했다. 영화에 담긴 여러 은유적 표현들, 상징들이 있는데 그는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결국 학생이었던 은희의 안타까운 사연과 현재 학생들의 아픔을 지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그걸 해결해가는 것"이라 운을 뗐다.

"은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고통스럽게 갖고 있는 기억이 있다. 직접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친구가 당했다. 그 무게감, 그리고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 지금의 교장 선생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을 보면서 더욱 학생들의 손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매번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학생들의 손을 잡아 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고, 누군가 지켜줘야 한다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악역은 교장 선생이라 생각한다. 어른의 적이자, 학생의 적, 그리고 여자의 적이지. 학생들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고, 지켜주지 못했잖나. 은희가 교감으로 부임할 때 교장은 과거 어린 은희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거든. 영화 장면이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어 헷갈릴 수는 있지만 현재 학생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은희의 서사와 감정에 집중하려 했다."


김서형 해석으로는 <여고괴담6>는 복수극이라기 보단 일종의 연대와 화해의 서사였다. 공교롭게도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속 영진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다. 김서형이 연기한 두 캐릭터 모두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변화의 계기를 맞기 때문이다. 

"<여고괴담>을 하기로 하고, <아무도 모른다>를 결정했는데 두 작품에 비슷한 지점이 있더라. 제 안에 있는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공포 장르로만 보면 매번 고민이 되거든. 공포영화를 정말 못 본다. 이번 촬영에서도 화장실 장면을 앞두고 아주 기겁을 했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닐 때 화장실이 재래식이었거든. 그 때문에 볼일을 안 보고 참으면서 집에 간 기억이 있다. 이번에 학교 자체는 무섭지 않았는데 피칠갑 된 화장실 세트가 너무 두려웠다. 결국 촬영을 마치고 펑펑 울었다. 감독님이 그런 제 모습이 의외라 하시더라(웃음)."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관련 이미지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관련 이미지 ⓒ 씨네2000

 
20년 넘게 지속된 프렌차이즈에 김서형 또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매작품마다 신인 여배우들이 발굴됐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서형은 함께 연기한 김형서, 최리 등을 언급하며 <여고괴담> 시리즈에 얽힌 미덕과 의미를 말했다. 

"현장서 제가 이모뻘이라 아이들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나름 편하게 대해주더라. 현장에서 제가 치마를 담요로 덮어주며 챙기려고는 했다. 너무 무더운 날 촬영이 이어졌는데 형서가 실신한 적이 있다.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기도 했는데 정말 힘든 여건에서도 잘 해줬다. 이번 영화 또한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된 것 같다. 오히려 제가 아이들을 의지할 때도 있었다. 눈빛으로 서로의 의도를 알아챌 정도로 호흡이 좋았지. 

이번 시리즈가 제작자이신 이춘연 대표님의 유작이 돼 버렸다. 6편이 잘 안 되더라도 10편까지 찍을 수 있게 장수하셔야 한다고 제가 말했었는데. 너무 마음이 안 좋다. 씨네2000이라는 제작사 이름 자체가 <여고괴담>과 함께라 제게도 추억이다. 4편 때 만났던 대표님은 참 무서워 보였는데 2년 전에 다시 만났을 땐 고군분투하고 계시더라.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 발인식 때 못갔는데 이제서야 만나 뵈러 다녀올까 한다."


악녀와 당당한 어른의 모습에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스카이 캐슬>, 그리고 최근의 <마인>을 비롯해 그가 쌓아온 영화들을 보면 악녀의 이미지와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가 공존함을 알 수 있다. 강렬한 인상과 개성으로 악역 캐릭터의 계보를 이어 온 몇몇 남성 배우와 김서형의 악녀는 그래서 결이 좀 달라 보인다. 물론 김서형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아내의 유혹> 신애리 이후 이미지를 바꿔보기 위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악녀에 강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 택한 게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한 거였다. <스카이 캐슬> 또한 <아내의 유혹> 때의 아쉬움 때문에 택한 게 아니라 제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 같아서였다. 물론 10년 전 스스로 겪은 마음의 아픔을 또 느낄까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숙제를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아시다시피 제게 제안되는 작품들의 폭이 넓은 건 아니다. 그 안에서 제가 변할 수 있고, 이전 필모그라피를 깰 수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 연기는 평생 할 거니까 지금 안주하지 말고 악역이 또 주어지더라도 정면 돌파해야지. 범죄물이나 스릴러 영화 속 악역과 달리 제가 했던 악역은 좀 느낌이 달랐다고 본다. 신애리는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한 결핍이 있었다. 이유가 있는 입체적 캐릭터였지. 그런 캐릭터를 만났다는 게 행운인 것 같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서형.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서형. ⓒ 씨네2000

 
제법 분명하게 말했지만 김서형은 "지금도 매번 무너진다"고 고백했다. 1994년 KBS 1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오롯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매일이 숙제고 매일 고민의 연속이라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좋은 캐릭터가 들어오는데 왜 고민하냐 핀잔을 주기도 한다"며 김서형은 작품을 택하고 준비하는 과정 일부를 전했다.

"내가 분석해서 조금이라도 깊이감을 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많이 묻는 것 같다. 단순히 대본이 재밌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 깊이 들어간다. 제가 밀어내려 해도 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택했으면 책임감을 가져야지. 약해질 때면 왜 내가 고향(강릉)을 떠나 서울에 와 있는지 생각해본다. 누가 시키지 않는데 어떤 역할로 고생하고 있기도 한다. 연기는 정말 허투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0년 넘게 배우로 버티면서 자리매김하기까지 제 안에 연약함도 있을 것이고, 당당함도 있을 것이다. 다치고 깨진 경험이 있는데 당당한 캐릭터, 멋진 여성 캐릭터가 주어질 때마다 그런 여성이 곁에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더 잘 해내고 싶었다. 게다가 감독님과 작가님이 잘 만들어 주셨기에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서형은 "인간 김서형으로 돌아가면 참 부족한 게 많다"며 "작품을 만날 때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돌파구를 찾을 때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인생의 기로에서 그가 만난 작품이 일종의 지침서가 된다는 의미였다.

"당당하거나, 연약해지는 게 잘못된 게 아니다. 착하거나 순수한 게 잘못된 게 아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고 작품들은 말해왔다. 그래서 전 행운아인 것 같다. 작품으로 배운 걸 잊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근 몇 년 사이 드는 생각은 늘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배우가 됐고, 지금도 늘 흔들리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 버티고 있다."
김서형 여고괴담6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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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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