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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둘째 녀석이 11시 반경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 명의 자녀가 있는 우리 집의 풍경은 다채롭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첫째 아이는 격주로 일주일에 두 번 또는 세 번만 학교를 가기 때문에, 주로 실시간 수업, 온라인 학습 즉 비대면 학습을 주로 하고 있다. 반면 둘째 아이는 저학년에 속하여 매일 등교를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유치원생은 주로 아이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등교하는 초등학생
 등교하는 초등학생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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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막내는 살살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나를 빼꼼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몸까지 살짝 비비 꼬며 애교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 유치원 가기 싫은데... 또 힘든 거 한단 말이야."

또 시작이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분석해보자면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 약 10번 중 8번. 즉 약 80%의 확률로 유치원에 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오늘도 막내는 유치원을 가지 않았다. 엄마는 오전에 글을 쓰니 놀아주지 못한다는 엄포에도 아이는 괜찮단다. 심지어 환하게 웃으며 엄마가 글 쓰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진심은 아닐 것 같지만 얼마나 유치원이 쉬고 싶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자녀의 돌발 질문

이런 동생을 보게 된 둘째 아이는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항변을 시작했다.

"왜 나만 맨날 학교를 가야해? 누나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동생은 유치원을 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아침마다 졸린 것을 참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나만 이렇게 맨날 학교를 가는 것은 공평하지가 않아. 나도 쉬고 싶을 때가 있다고..."

나는 아이의 이 말에 단호한 어투로 훈계하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냥 동생이 유치원 안 갔으니, '너도 학교 가지마'라고 쉽게 말하는 건 안 되잖아.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자 둘째 아이의 눈두덩이가 금세 벌겋게 올라오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했다. 하필 왜 난 눈물에 약한 엄마, 감성 충만한 엄마란 말인가. 마음이 약해진 나는 자신의 방으로 유유히 사라진 둘째 아이를 찾아갔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한번 의견을 말해봐."

"나는 매일매일 학교를 가느라 아침에 졸린 것을 참는 것도 너무 힘들어. 그래서 하루는 좀 쉬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동생도 쉬었으니까 나도 내일 하루는 쉬고 싶다고."

"그래? 알겠어. 그럼 이번에는 엄마가 너 의견을 들어줄게. 근데 아침에 갑자기 졸린다고 학교를 안 간다거나, 동생이 안 갔다고 갑자기 너도 안 가겠다고 그러면 안 된다. 그건 약속해줘. 그리고 지금 네가 가정학습을 한 번 쓰면 그만큼 2학기에 네가 쓸 수 있는 일수가 줄어드는 거야. 그 점은 네가 알고 있어야 해. 나중에 쓰고 싶어도 못 쓸 수도 있다는 거야. 알겠지?"


"알겠어. 그럼 나도 엄마 말대로 그렇게 할게. 사실 지난번 아침에 졸려서 일부러 자는 척했거든. 그런 것도 앞으로는 안 할 거야."  
 
잠자는 아이
 잠자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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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지난 아침 간지럼을 태우고 흔들고 난리를 피워도 꿈쩍도 안 했던 일이 있었는데 나와의 협상에 뜻밖의 고백까지 한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적절히 받아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숙한 협상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내일의 계획에 대하여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쉽게 수긍해주었다.

담임선생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애석하게도 내일은 수행평가가 있어서 가정학습을 해도 좋으나, 다음날 별도의 과제가 제시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에게 문자 내용을 알려주고 내일은 학교를 가는 게 낫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금세 '수행평가가 없는 날 쉬도록 해달라'라고 쿨하게 수용했다. 하하. 역시 나를 닮은 협상의 달인이다.

엄마의 교육 철학

어떤 엄마는 프리한 교육관을 가진 내가 독특하다고 사뭇 놀라기도 한다. 또 어떤 엄마는 학교는 무조건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학교는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다. 아이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에 목숨을 걸었고 학년 말 받아 드는 개근상이 근면 성실의 표상이자 때로는 우등상 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규칙을 준수하는 학교생활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 어떤 틀에 의해서 무조건적인 강요를 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던 사람이었다.

보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서 가끔 열이 나도 집에 못 간다는 학생들이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학생의 부모님께서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고 하시기 때문에 일단 버텨야 한다고, 혹은 집에 가면 혼난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럴 때 난 한 번씩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그럼 어머니께 전화드려볼까? 이렇게 열이 많이 나는데 공부하기도 힘들고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건강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하는 애잔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 끄덕 하기도 하였다. 공부고 뭐고 그저 푹 쉬고 싶은 아픈 자의 생각은 어른이든 아이이든 매한가지였다.

몇년 전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EBS 다큐프라임, 감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적어보라고 하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방 침대에 가서 눕도록 한다. 또는 학교를 쉬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쉬도록 하신다' 등의 말을 적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교육체계나 분위기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부모 그리고 나는 과연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 즉 공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학교의 공간혁신과 미래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는 요즘, 학교는 이제 배움을 넘어 삶과 쉼이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는 혁신맘으로서 앞으로의 학교가 물리적 공간 혁신을 넘어 유동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배움의 공간으로 변화하길 희망한다.  
 
아이들의 등굣길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아이들의 등굣길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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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코로나19, #학교공간혁신, #변화와혁신, #등교수업, #온라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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