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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거리는 자비 없이 가혹하다.
 밤의 거리는 자비 없이 가혹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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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면 우리의 시간이 돌아온다. 산그늘이 슬금슬금 내려와 도시를 집어삼킬 때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몸도 마음도 전쟁터를 향하는 전사와도 같이 무장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나는 어린 딸아이를 집에 홀로 두고 밤길을 선택했다.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기 위해 잡던 핸들 대신에 나는 술에 취한 누군가의 차 핸들을 잡았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밤에도, 매일 밤 달은 그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무심하게 떠올라 밤을 비추었다.

이제 벌써 내 나이 쉰넷. 나는 18년 차 베테랑 대리운전 기사가 되었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세월이 소리가 움직이는 음속보다 빠른 듯하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내가 처한 이 암울한 세상이 오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쓰레기처럼 떠밀려 세상 속으로 흘러갔다.

매일 만나는 손님들은 나에게 묻는다. 여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면 되지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서 이런 일까지 하면서 사느냐고.

나도 이런 겨울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울이면 딸아이의 손을 잡고 노을이 내려앉는 백조의 호수 같은 저수지를 찾아다니며 탐조를 다니던 꿈결 같은 시간이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야생화도 배우고 새 공부도 하고 나무 공부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던 인생의 낮은 저물고 가장 어두운 밤에 떨어져 있던 내가 일을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다면. 도둑질 등의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밤거리에 나섰다. 적어도 운전하는 일은 여자라고 돈을 적게 주지는 않으니까. 내가 일한 만큼 나의 능력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기에 나는 이 일을 선택했다. 여자의 몸으로 떳떳하게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운전에 못한다'는 그 말 

밤의 거리는 자비 없이 가혹하다. 대리기사들은 업체가 휘두르는 칼날 같은 갑질과 터무니없는 요금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폭언, 폭행 등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이 일삼는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밤을 견뎌낸다. 그리고 여성 기사에게 허락된 밤은 그보다 조금 더 험난하다.

어느 날 밤, 나는 손님을 모시고 집에서 70km 이상 멀리 떨어진 지역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대중교통도 모두 끊어지고 아침 첫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들어갈 곳 없는 으슥한 주택 단지였기에 나는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휴대전화 불빛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 코끝과 손끝까지 아려왔다. 마치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이 숨이 막히고 막막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딩동, 하고 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지역까지 돌아갈 수 있는 콜이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도는 듯했다. 나는 화면에 뜬 전화번호로 황급히 전화부터 걸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창원 가는 기사입니다."

나의 기쁜 물음에 손님은 단 한마디의 말로 나를 무너져 내리게 했다.

"여잡니까?"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그는 여자 기사는 싫으니 당장 남자 기사를 보내라고 소리쳤다. 나는 차갑게 식은 핫팩을 꽉 쥐었다. 이 콜을 놓치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더 이 추위와 싸워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기... 사장님. 제가 창원에서 와서 꼭 사장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데요. 제가 두 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창원 가는 콜 잡았습니다. 사장님께서 배차 거부를 하시면 저는 아침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사라서 싫으실 수도 있지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간절히 사정했다. 그런데도 그는 완고히 거절하다가 딸아이가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90도로 절을 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인사를 거듭했다.

손님을 태우고 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왜 여기사를 싫어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여자들은 운전을 못 해. 그래서 나는 여자한테는 절대 운전대를 안 맡기는데, 아지매가 하도 통사정을 하니 하는 수 없이 오라 했소. 그러니까 운전이나 똑바로 하자고."

그의 차가운 태도에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지만, 그의 기분이 수틀려 고속도로 중간에서 차를 세우라고 하면 정말 큰 일이었다. 나는 웃으며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추며 공손히 대답했다. 내 기분이 어찌 되었건 간에 목적지까지만 무사히 잘 도착하면 됐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손님이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나에게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자 그가 이어 말했다.

"아지매 운전 잘하네. 출발하는 거 보면 알거든."
"예, 제가 대리운전 기사만 10년이 훨씬 넘었는데요."


나는 운전석에 앉고부터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여자 기사는 운전 실력이 서툴 거라는 편견으로 그랬을 것이라고. 그래서 출발부터 아주 능숙하게 운전하는 데만 집중했다. 운전은 출발과 정차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조금의 급출발, 급정차도 하지 않고, 커브 길도 쏠림 없이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

"아따, 아지매 운전 한번 시원시원하게 하네. 남자 기사보다 낫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생의 마지막 날처럼, 또 집을 나선다 

하나하나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손님처럼 여자라고 운전조차 시켜 보지 않으려는 사람, 여자 기사가 왔다고 가는 동안 잘해 보라며 희희낙락하는 손님 일행, 하루 일당을 줄 테니 자기랑 놀다 가자고 하는 사람, 심지어는 운전 중에 옆자리에 앉아서 무방비 상태인 운전자의 몸을 만지는 사람까지... 여성 기사라고 대리운전 기사로 보지 않고 함부로 구는 취객들의 행동에 천만 배는 더 힘들어진다. 그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한겨울의 바람보다 더 날카롭게 내 살결을 베고 지나간다.

그렇게 나를 베어내는 말들을 삭히며 수십 킬로미터를 걷고, 뛰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차가운 새벽을 헤치고 해가 떠오른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오늘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 밤, 다시 눈부시게 빛날 인생의 아침 해를 기다리며 나는 생의 마지막 날처럼 집을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영자 대리운전 노동자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에도 실렸다. http://www.workingvoice.net/xe/?mi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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