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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이 흐르는 나루터에 있는 주막.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34호로 지정되었다.
 삼강이 흐르는 나루터에 있는 주막.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3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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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운 모래톱의 내성천이...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연의 이치이다. 강으로 흘러든 물은 산도 만나고, 들도 만난다. 지형지물에 따라 때론 유유히, 때론 힘차게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직선의 강은 없다. 곡선이다.

낙동강 지류의 내성천. 회룡포에서 350도를 멋들어지게 휘감아 돌다 다시 반대로 180도 꺾여 굽이굽이 흐른다. 거세지도 깊지도 않은 내성천은 도도히 흘러 큰 물줄기를 만나려 삼강나루로 향한다.

지난 5월 30일,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은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발길을 돌리다 말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말이야! 내성천이 많이도 변했네 그려. 그 은빛 모래톱은 줄어들고, 모래톱 자리에 풀숲이 무성하고, 물 색깔도 예전만 못하구! 영주댐 건설이 강줄기 흐름에 영향을 줬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아!"
 
내성천이 흐르는 회룡포의 아름다운 풍광. 그런데 모래톱이 줄고 강물도 예전만 못하다.
 내성천이 흐르는 회룡포의 아름다운 풍광. 그런데 모래톱이 줄고 강물도 예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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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예전부터 강물과 모래가 만든 강이라 해서 '모래의 강'이라 불렀다. 물줄기가 실어 나른 모래는 금빛 은빛으로 반짝이며 부드럽고 고왔다. 모래톱에 관정을 박아 식수로 쓸 만큼 물이 깨끗했다. 맑은 모래 강에서만 산다는 흰수마자 물고기가 눈에 띄지 않고, 수달과 희귀종인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도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 아프다.

내성천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모래톱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강은 원래 흐르던 대로 그냥 놔둬야 한다는 이치가 들어맞다. 더 늦기 전에 원래 모습을 찾아야겠다.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삼강주막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점심때가 지났다. 시장기가 돌고 목도 탄다.

"전 선생, 막걸리 좋아한다면서?"
"네, 제가 막걸리 맛은 좀 알지요."
"그래? 그럼 폼나는 데서 한잔할까?"
"어디 근사한 곳이라도?"
"지금 가는 삼강나루엔 유서 깊은 주막이 있지."


술꾼이 예천에 오면 그냥 지나치기에 섭섭한 곳이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삼강주막이 바로 그곳. 회룡포에서 삼강나루가 있던 곳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이다. 강가에 군락을 이뤄 핀 노란 야생화가 무더기로 피어 여행자들을 반긴다.
  
낙동강 본류, 내성천, 금천이 합쳐 흐르는 삼강나무터.
 낙동강 본류, 내성천, 금천이 합쳐 흐르는 삼강나무터.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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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흐르는 삼강.
 유유히 흐르는 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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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풍양면은 세 개의 강이 합쳐진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600여리를 흘러 여기까지 왔다. 봉화에서 시작하여 영주를 거친 내성천도 이곳에 도착하고, 문경 사불산이 발원지인 금천 또한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래 붙여진 이름이 삼강마을이다. 합쳐진 삼강은 부산 다대포까지 700리를 더 흘러 길고 긴 낙동강 1300리 물길을 이어가며 영남의 풍요로운 젖줄이 되었다.

삼강나루 가는 길목. 가슴에 담아내는 일행의 고향 소개가 자못 진지하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삼강나루, 예전엔 참 유명했지! 소금배가 부산에서 삼강까지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농산물과 교환했거든. 그러니까 여기가 선착장이고 집하장이었다는 얘기야. 어디 그뿐인가! 이 나루터가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갈 때 넘는 문경새재의 길목이기도 했구. 사람들이 얼마나 붐볐겠어!"

삼강나루에는 보따리 상인들은 물론 배를 타는 사공들의 숙소가 있었다. 나루터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주막은 왁자지껄 사람 소리로 넘쳐났다. 나들이객에게는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에겐 휴식처가 되었다.

어느새 삼강마을에 도착했다. 삼강주막이라는 간판이 우리를 반긴다.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문화단지이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문화단지이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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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은 1900년경에 생겼다. 낙동강 강줄기에 남은 마지막 주막이라고 한다. 주막은 여덟 평 남짓 손바닥만 하다. 예전 가장 작은 집 하면 초가삼간이라는데, 여긴 그것에도 못 미친 초가두간. 겹집 구조로 방이 두 개 있고, 부엌과 툇마루, 다락까지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추었다. 초라한 규모지만 주막집으로 장사하기에 알맞게 지어져 있다.

삼강주막은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여 문화재(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 숱한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한 삼강주막도 유옥연 주모 할머니가 88세를 일기로 2006년 세상을 뜨면서 방치되다가 옛 모습을 복원하여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삼강마을 주민들이 주막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옛날의 맛과 멋을 아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막걸리 마시는 분위기만큼은 1900년
  
삼강주막 500여년 된 아름드리 회나무
 삼강주막 500여년 된 아름드리 회나무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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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집 옆 500년을 떡하고 버티고 서 있는 큰 회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여름이면 주막을 찾는 사람들에게 쉼터로 안성맞춤이었으리라.

회나무 아래 크고 둥근 돌멩이가 눈에 띈다.

"이게 뭣일 것 같아?"
"글쎄요. 무슨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들돌이라는 거야! 들돌이 뭔지 알지? 어디 한번 들어보라구!"

  
삼강주막에 있는 들돌이다. 머슴에게 들돌을 들게하여 새경을 책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삼강주막에 있는 들돌이다. 머슴에게 들돌을 들게하여 새경을 책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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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돌! 난 처음 본다. 빈약한 내 체력으로 꿈쩍도 안 할 것 같다. 들돌은 농경사회에서 머슴에게 새경(한 해 동안 일을 한 대가로 머슴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을 책정할 때, 올려 받을 만큼 힘을 쓸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도구였다고 한다. 삼강나루터에는 물류가 이동하는 곳인지라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들돌을 들어 올리는 힘을 보고 품값을 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니 참 재미있다.
  
예전 삼강주모 주모는 글을 몰라 부엌 벽에다 부지깽이로 금을 그어 외상을 표시하였다.
 예전 삼강주모 주모는 글을 몰라 부엌 벽에다 부지깽이로 금을 그어 외상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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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의 구조가 궁금하다. 부엌에서 벽화도 아닌 빗금 친 표시가 눈에 띈다. 당시 주모는 글을 몰랐던 모양이다. 외상술을 먹은 사람들이 있을 때 부지깽이로 벽에다 금을 그어 기억을 더듬었다고 한다. 주모 자신만의 외상장부인 셈이다. 세로로 짧게 그은 것은 한 주전자 값이고, 긴 줄은 그 이상이었다는 것 같다. 외상값이 갚아지면 가로로 줄을 그어 갚았다는 표시를 했다. 술꾼들과 주모의 약속이 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 자! 우리도 막걸리부터 한잔하자구!"

날씨도 좋고 바람도 살살 분다. 사람들이 주막집에 길게 줄 서 있다. 차림표에 '주모'라는 단어를 넣어 재미를 더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 '주모3'. 잔치국수는 40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삼강주막에서 옛 주막의 정취를 느끼며 먹은 소박한 음식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안주로 먹은 배추전이 특히 맛있었다.
 삼강주막에서 옛 주막의 정취를 느끼며 먹은 소박한 음식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안주로 먹은 배추전이 특히 맛있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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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도토리묵, 두부, 거기다 배추전이 입맛을 당긴다. 양은 주전자에서 쏟아져 나온 막걸리 한잔. 배추전 안주가 입에 착 감긴다.

술이 한잔씩 돌아가자, 고향을 소개한 분이 시집 한 권을 꺼낸다.

"내 시 한 수 읊어볼 게. 들어들 보시게. 제목은 '주모, 주안상 하나 주소!' 이 시로 말할 것 같으면 예천의 출향 시인 김호림의 작품인데, 옛 향수가 물씬 묻어 있어!"

그렇다. 시에 묻어있는 삼강주막에 대한 향수가 구구절절하다. 시와 함께 마시는 막걸리가 술술 넘어간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회나무 아래 부드럽고 상쾌한 바람이 분다. 기분 좋은 취기가 오른다. 막걸리에 취한 것인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취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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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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