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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I에 대한 이야기는 신기하거나 새롭지 않을 정도로 AI는 우리 삶에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에는) 어느 정도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사람들은 인간 대신 AI가 대신할 미래 세계를 이야기한다.

현재 내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무인 안내기'나 '시리(아이폰 음성인식)'를 사용하는 정도) 언젠가는 AI 시대가 올 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사는 이 시대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또 바라기도 한다.

<클라라와 태양>은 AI와 한 소녀의 우정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클라라는  AF(Artificial Friend)다. 인공로봇 친구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인형을 고르듯 자신의 아이에게 AF를 골라서 선물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인기가 없으면 단종 되기도 하고, 더 나은 기능을 장착하고 업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조시는 클라라를 보는 순간, 클라라를 마음에 들어 한다. 어딘가 병약해 보이는 조시는 엄마를 졸라 클라라를 집에 데리고 온다. 이 소설은 클라라의 시점과 관점으로 전개된다. 조시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화상수업으로 공부를 하는데, 조시를 포함해서 조시 주변 친구들은 모두 '향상'된 아이들이다(조시의 단짝인 '릭'은 향상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릭은 따돌림을 받고, 릭의 엄마는 별종으로 취급된다).

향상이라는 것은 (소설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유추해보기로는) 우월한 유전자로 개조하는 과정인데, 미래의 아이들은 모두 남에게 뒤지지 않고 뛰어난 유전자를 갖기 위해 향상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조시는 향상 기술의 착오로 병을 얻는다.

처음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조시와 영원을 사는 인공로봇 클라라의 우정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시의 엄마가 왜 클라라를 집에 데리고 왔는지, 클라라를 고를 때 왜 그렇게 신중하고 까다롭게 굴었는지 의문이 풀리면서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가 드러난다.
 
<클라라와 태양>의 겉표지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왜 표지가 그토록 강렬한지 이해할 수 있다.
 <클라라와 태양>의 겉표지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왜 표지가 그토록 강렬한지 이해할 수 있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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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에게는 죽은 언니가 있다. 큰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난 뒤, 조시의 엄마는 조시마저 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조시와 똑같은 복제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조시가 죽는다해도, 자신의 곁에 영원히 살아있는 딸의 존재를 미리 준비해놓기 위함이다. 클라라가 조시의 말투나 움직임 등을 배우게 하는 것도 바론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조시의 아빠는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강하게 말리지는 못한다. 번민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클라라에게 묻는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클라라는 조시의 아빠에게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클라라는 사람의 마음을 '방이 아주 많은 집'으로 비유한다. 그러자 조시의 아빠는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있다면서 인간의 마음을 복제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음을 내비친다.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클라라는 끝내 조시를 구원한다. 클라라가 택한 방법은 바로 '태양'이었다. 태양은 생명력을 의미한다. 병으로 죽어가던 조시는 찬란한 태양빛을 받고 다시 건강을 회복한다. 아무리 문명과 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유한한 생명'이고 '지겹게도 떨쳐지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클라라가 지닌 '선한 마음'도.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것, 특별한 것은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인문학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오래된 고민이자, 다양한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러한 고민 속에 살고 있다.

클라라가 아무리 영특한 로봇이라 한들, 클라라가 조시의 말투, 몸짓을 잘 배울 수 있다 한들, 결코 조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조시를 정말 조시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이 소설의 마지막 야적장에 버려진 클라라의 말에서 짐작해볼 수도 있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낡은 클라라는 야적장에 놓여있다. 그때 클라라가 전시되어있던 백화점의 매니저가 클라라를 알아본다. 두 사람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한다. 클라라는 매니저에게 말한다. '조시의 마음'을 배우는 일에 대해.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카팔디(조시의 복제로봇을 만들던 과학자)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 442p
 
 
결국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맺은 관계와 나눈 사랑이라는 걸까. 진부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에게, 뭔가 신박한 대답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진부함이 진리인지도 모른다.

영원할 것 같았던 AI 클라라가 야적장에서 옛일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결국 AI도, 사람도 유한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이 유한한 생명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뜨면 반드시 지고, 다음날 또 다시 떠오르듯.

참! 조시의 아빠가 클라라에게 했던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냐'는 질문. 당신이라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민음사(2021)


태그:#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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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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