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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에메랄드 빛 바라데로
 
바라데로의 노을
 바라데로의 노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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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를 나와 우리는 바라데로로 향했다. 쿠바 관광객의 1/3이 찾는다는, 쿠바 최고의 휴양지 바라데로는 아바나로부터 140km 떨어진 곳으로서, 북쪽 플로리다를 향해 20km 정도 길게 뻗은 폭이 좁은 반도였다. 쿠바의 대표적인 리조트 타운으로서 Playa Azul(Blue Beach)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바다색이 아름답다고 했다.

산타클라라를 벗어났을까? 몇 분 전만 해도 잡아먹을 듯이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런 야속한 날씨 같으니. 아까 체 게바라 동상 앞에 서 있었을 때 그치면 좋았을 것을. 날씨 예보를 보니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던데 설마 바라데로의 그 에메랄드 빛 바다색을 못 보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바라데로에 도착했음은 차창 밖의 달라진 풍경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전만 하더라도 쿠바의 여느 시골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었는데, 이곳에는 부자들만 살 것 같은 별장과 최고급 호텔, 리조트만이 보였다. 바라데로 전체 해변이 외국인 전용이라고 하더니 지역의 겉모습 자체가 이전 쿠바에서 보던 것들과 비교 불가였다.

우리가 이틀 묵을 숙소는 멜리아 마리나 바라데로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바라데로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은 곳으로서, 우리가 지불한 숙박비는 올인크루시브, 즉 해변의 썬베드뿐만 아니라 식사와 주류와 칵테일을 무제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있던 일행들은 벌써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헤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또 어떻게 찐하게 한 잔 할 수 있을까.
 
바라데로 해변에서의 결혼식
 바라데로 해변에서의 결혼식
ⓒ 고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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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해변으로 뛰어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 해변의 에메랄드 바다색을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바다는 제주도 우도 해변이었는데 이곳은 과연 어떤 색을 하고 있을지.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각이었는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철수하고 해변은 썰렁했다. 바다는 이미 노을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해변에서 결혼식을 올렸는지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곳이 외국인 전용해변이라고 했으니 이 먼 곳까지 와서 결혼식을 올릴 만큼 바라데로가 유명하다는 뜻이리라.

에메랄드 색 바다는 내일로 기약하고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 뒤 다시 모여 뜨거운 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밤은 단 하루. 어느새 우리는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바라데로에 남은 미국의 흔적
 
바라데로 해변
 바라데로 해변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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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데로에서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아침을 먹은 뒤 또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비록 트리니다드에서 안경을 잃어버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바라데로는 아름다웠다. 미국인들이 쿠바와의 단교 이후 이 아름다운 카리브 해를 잊지 못해 멕시코에 바라데로와 똑같은 칸쿤을 만들었다고 하더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모히토와 다이끼리를 끝도 없이 마셔가며 즐기는 하얀색 모래와 에메랄드 바다색의 바라데로 해변.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왜 한때 바라데로가 미국인의 최고 휴양지였으며, 지금은 캐나다나 유럽인들의 최고 휴양지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최근 뉴스를 보면 북한도 최근 원산 지역을 관광특구로 개발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런 쿠바 바라데로가 모델은 아니었는지.

점심 식사 뒤, 고재열 기자의 주선으로 쿠바 현지인들과 모래사장에서 축구를 하고나니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비가 꽤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에메랄드 색 바다는 검푸르게 변해버렸고, 세찬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바라데로 해변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는 대신 2층 관광버스를 타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바라데로가 20세기 초 미국인들의 워낙 유명한 휴양지였던 터라 관련된 유적들이 꽤 남아 있다고 했다. 
 
바라데로의 듀폰 저택
 바라데로의 듀폰 저택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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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라데로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바라데로 골프 클럽이었다. 쿠바의 골프장 중 유일하게 18홀 코스를 가지고 있는 그곳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등을 산하에 두고 있는 미국의 재벌 듀폰 가문이 1959년 쿠바 혁명 전까지 소유했던 곳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 위 다리를 건너자 아름다운 바라데로 해변을 배경으로 작은 언덕 위에 하얀 3층 저택이 나타났다. 이름은 '듀폰 하우스'. 지금은 호텔 및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건물은 20세기 초 지어져 100년이 다 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풍스럽고 멋있었다.

아바나의 헤밍웨이 저택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지만, 쿠바 혁명 이후 이런 멋있는 저택과 풍경을 놔두고 쫓겨놔야 했던 미국의 부자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미국의 앞마당에서 이 조그만 나라가 공산주의를 외치며 반미를 외치다니. 미국이 그동안 쿠바를 유독 미워한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을 것이다.

우리는 듀폰 하우스를 나와 20세기 초 미국을 대표하는 부호이자 범죄자 중 하나인 알 카포네 저택으로 향했다.

바라데로의 알 카포네 별장 
 
바라데로 알 카포네의 저택
 바라데로 알 카포네의 저택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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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알 카포네. 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20세기 초 미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미국은 1919년 금주법을 실시한다. 처음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곡물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었지만,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의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산업자본가들까지 찬성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어디 사람들의 음주를 막는 게 쉬운 일이던가. 많은 이들이 몰래 술을 만들어 마셨으며, 밀주는 당시 범죄조직들에게 가장 수익률 좋은 사업수단이 된다. 알 카포네는 바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범죄자로서 술을 만들어 유통시킴으로써 돈을 벌었고, 쿠바는 그런 그의 밀주 유통망에 있어서 중요한 기지 역할을 했다. 미국과 가장 가깝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던 곳이 바로 혁명 이전의 쿠바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혹자들은 바라데로에 있는 알 카포네의 저택을 밀주 유통의 근거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흔히 그의 별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바라데로는 쿠바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서 술을 유통하기에 최적의 위치인 만큼 밀주 유통 기지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0세기 초 마피아 알 카포네의 저택
 20세기 초 마피아 알 카포네의 저택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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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지식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둘러본 알 카포네의 저택은 단순히 별장 느낌이 아니었다. 음침하고 어두운 것이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범죄자들이 모여서 사건을 공모하는 공간인 듯했다. 물론 우중충한 날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바라데로의 알 카포네 저택은 그 존재만으로도 미국이 어떻게 쿠바를 이용했는지, 쿠바가 어떻게 미국에게 착취를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알 카포네 저택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 저녁을 먹은 뒤 우리 일행은 늦은 밤까지 술과 함께 아쉬움을 달랬다. 자, 이젠 다시 한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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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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