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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강에서 막 깨어난 꼬마물떼새 유조를 엄마가 품어주고 있다.
 최근 금강에서 막 깨어난 꼬마물떼새 유조를 엄마가 품어주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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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수문 개방 후 금강을 걷다 보면 늘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강변 자갈밭이나 모래톱에 살아가는 작고 여린 새인데요. 세계적으로도 보호하는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 깜짝 도요새, 할미새 등 물가에 살아가는 새들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모래 위나 자갈밭에 알을 낳기 때문에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준설로 인해 강변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다행히 금강의 3개의 보 수문이 전면 개방되면서 물길이 낮아지고 드러난 모래톱에 이들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봄에 우리나라를 찾아 번식해 새끼를 키운 뒤에 찬 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따뜻한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름 철새입니다.

'삑, 삑, 삑, 삑~'

짧고 간결하게 울어대는 물떼새 소리입니다. 이렇듯 톡톡 끓어서 소리를 낼 때면 "나 여기 있어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반갑다는 뜻이겠죠. 그럴 때마다 꼬마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3~4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푸드덕 날아올라 멋진 비행을 뽐내기도 합니다. 때론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내면서 쫑알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소리만 내는 것은 아닙니다.

'삑삑~삑삑~'

귀에 거슬릴 정도로 연속으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있습니다. 이때는 저와 5~6m 정도의 거리를 둡니다. 자신만을 봐달라는 것처럼 더 요란한 몸짓으로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합니다. 날개가 다친 것처럼 푸듯 거리기도 하고 주변을 뱅뱅 돌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참이나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끈 후에야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어미새의 '헐리우드 액션' 
 
물떼새는 강변 자갈밭이나 모래톱에 알을 낳는다.
 물떼새는 강변 자갈밭이나 모래톱에 알을 낳는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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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십중팔구 주변에 자신이 낳은 알이 있거나 새끼 유조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침입자를 경계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모성애일 겁니다.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는 그 친구만 따라다니느라 속사정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새의 할리우드 액션 같은 '의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아이와 만났던 지점부터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는 곳마다 바닥을 살피며 확인했습니다. 모래 한 줌을 퍼낸 것 같은 작은 둥지에 동그란 자갈같이 생긴 탐스러운 3~4개의 새알이 다소곳하게 햇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둥지 바닥엔 수백 개의 좁쌀만 한 돌이 깔려 있습니다. 작은 부리로 한 개씩 날라다 만든 집입니다. 메추리알 크기의 꼬마물떼새 알입니다. 적의 침입에 위협하듯 제 주변을 낮게 비행하며 위협했습니다.
 
태어난 지 보름쯤 지난 물떼새로 천적을 보면 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
 태어난 지 보름쯤 지난 물떼새로 천적을 보면 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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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5월 말까지 금강을 모니터링하면서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가 알을 낳아 놓은 18곳을 확인했습니다. 그중 14곳은 꼬마물떼새가 56개의 알을 낳았고 55마리의 어린 꼬마들이 태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개의 알은 부화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흰목물떼새는 4곳에 16개의 알을 낳았고 16마리 모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지금쯤 교육을 받고 성장해서 엄마·아빠처럼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1차 산란이 끝나고 6월 초부터 다시 2차 산란이 시작되었습니다. 3개의 알과 4개의 알을 낳아 놓은 것을 육안으로 확인했습니다. 강변에 풀들도 무성하게 자라고 장마와 겹치면서 많이 힘들 겁니다. 지난해 불어난 강물에 잠기고 떠내려가는 알들도 있었으니까요.

침입자들
 
4대강 수문이 개방되면서 생겨난 모래톱에 사륜 오토바이까지 들어오면서 물떼새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4대강 수문이 개방되면서 생겨난 모래톱에 사륜 오토바이까지 들어오면서 물떼새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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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마만 걱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변 모래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텐트를 치고 조용히 다녀가는 가족도 있지만, 강변 모래톱에서 골프를 치거나 사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골프공은 어디로 파고들지 모르는 흉기입니다. 오토바이 또한 거칠게 강변 모래톱을 짓이겨 놓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주보 주변에 생겨난 모래톱을 걷다가 사륜 오토바이 바퀴에 짓이겨 깨진 물떼새알을 보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어린 새끼로 보이는 물떼새가 죽어있는 사체도 발견되었습니다. 야생동물의 습격으로 죽은 것인지 질병으로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체 주변 멀리 모래톱을 휘젓고 다니는 사륜 오토바이가 보였습니다. 굉음을 내면서 뱅글뱅글 돌면서 뽀얀 모래 먼지를 일으키는 오토바이는 강변 모래톱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3대의 오토바이가 내뿜는 소음은 요란했습니다. 바퀴가 돌면서 튀어 오르는 모래와 자갈은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했습니다.

"여기는 새들이 알을 낳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들은 나를 무시한 채 더 빠른 속도로 내달렸습니다. 몇 차례나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행동이 거슬렸는지 "별 ××놈 다 보겠네"라며 오히려 큰소리로 타박을 해왔습니다. ××놈 소리를 듣더라도 막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변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래톱에서 살아가는 물떼새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강변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래톱에서 살아가는 물떼새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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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를 휘두르는 사람과 만났습니다. 연신 골프공을 날리던 그에게 또다시 물떼새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들이 알을 낳고 있다고. 그러나 돌아오는 목소리는 날카로웠습니다. "강변에서 골프 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왜 못 치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사람만 찾는 곳이 아니라 새들도 살고 있다고 다시 정중하게 말씀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습니다.

골프를 치거나 사륜 오토바이를 탄다고 해서 제가 제재할 권한도 없습니다. 법으로도 마땅히 규제할 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번 욕을 먹으면서도 사정만 해야 하는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만 살아가는 공간이 아닙니다. 새들과 야생동물, 물고기와 풀벌레까지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므로 배려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다행히 이런 사정을 알고 환경부 산하 금강유역환경청 정종선 청장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난 물떼새 1차 산란 때도 사람의 출입이 잦은 강변 모래톱으로 내려가는 길목마다 '이곳은 아기 물떼새들의 보금자리'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 주셨습니다. 환경지킴이인 '금강 지킴이'를 동원하여 계도해주신 덕분에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무탈하게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25일에도 개인 SNS를 보고 청장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현재 법으로는 미미한 사항들이 있어서 법적 보완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로 현장 활동으로 출입이 잦은 곳에 현수막을 걸고 지킴이를 통해 계도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자체에 협조 요청도 하고 장기적으로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전동바이크를 타거나 골프 연습을 하는 행위 등을 규제할 방법도 찾고 있다."

그러면서 현장에 내걸 현수막 문구를 함께 보내왔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쉼터이자 동식물의 삶의 터전입니다.'
'전동바이크를 이용한 레저행위, 골프연습, 쓰레기 투기 등은 금강을 오염시키고 동식물을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금강을 위한 배려와 실천, 자랑스러운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들과 공존하며 살고 싶습니다 
 
막 깨어난 멸종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막 깨어난 멸종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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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려고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이 '줄'이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이 '탁'입니다. 물떼새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새가 부리로 껍질을 벗기어 줘야 하고 세상에 나올 녀석도 안쪽에서 연약한 부리로 쪼아대야 합니다.

이렇듯 어렵게 세상에 나오더라도 살아가는 위해서는 녹록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꽃뱀이나 유혈목이, 물뱀들이 산란이 임박한 물떼새알을 덮쳐서 모두 먹어 치우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또 연약한 새끼를 까치가 공격해 모두 먹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1차 산란에 실패할 경우에 2차 산란을 하는 것으로 생존 확률도 더 낮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자연의 섭리에 관여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지만 지켜만 봤습니다. 이렇듯 물떼새들은 천적에 취약한 약한 종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겪는 것은 사람에 의한 것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이 나의 작은 행동이 저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마 때론 천둥 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기온이 오르기도 합니다. 뙤약볕에 달궈진 모래알은 더 뜨겁습니다. 물떼새 어미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 깃털에 강물을 적셔와 알을 식혀줍니다. 바람이 통하도록 깃털과 알의 공간을 1~2cm 정도 띄워서 서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도 경계해야 합니다.

1차 산란을 무사히 마친 물떼새들처럼 이 아이들도 건강하게 태어나 자랐으면 합니다. 별 탈 없이 자란다면 내년에는 고향을 잊지 않고 금강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같이 공존하며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태그:#4대강 사업, #물떼새, #골프 연습, #사륜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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