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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브랜드 인플레이션 시대에 도시브랜드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도시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대한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고자 <오마이시티, 오마이브랜드> 기획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인천광역시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도시브랜딩 활동의 기획·진행·평가 등을 짚어보면서 도시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천시 브랜드전략팀장이었던 박상희 경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이한기 <오마이뉴스> 기획취재 선임기자가 함께 진행한다.[편집자말]
음악을 통한 도시브랜딩은 쇠락해가는 공간, 기억에서 잊혀진 공간,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음악을 통한 도시브랜딩은 쇠락해가는 공간, 기억에서 잊혀진 공간,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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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듀런드(Peter Duelund)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경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문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화와 경제의 융합을 통한 도시재생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첫째, 문화와 예술 등 창조산업이 도시의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둘째, 시민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통해 도시의 사회적 자본이 창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문화 활동을 만들어 내는 선순환이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한다.

셋째, 토목 위주의 재생이 아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동체 도시를 지향한다. 넷째, 획일적 도시 개발에서 벗어나 문화 다양성을 추구해 도시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강화한다. 다섯째, 도시 간 경쟁을 넘어 도시의 문화 다양성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계생산이 독창적인 예술을 대신한다고 비판하면서, 독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도시를 다시금 정의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도시재생의 사례를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도시브랜딩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문화예술을 도시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삼고 있으며, 도시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국가 경쟁을 넘어 도시 경쟁의 시대가 왔다. 이에 세계의 도시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도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도시 간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대륙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문화도시' 전략이 세계적으로 부각된 계기는 유럽의 공업도시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1983년 그리스 문화부 장관인 멜리나 메르쿠리가 제안하고 프랑스의 자크 랑 문화부 장관에 의해 '유럽문화수도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시민들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이해 폭을 넓혀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은 2003년 유럽연합(EU)의 국내총생산(GDP)이 2.6% 상승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이 도시의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후 아랍문화수도(1996), 아메리카문화수도(2000), 유네스코창의도시네트워크(2004),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문화도시(2014)가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문화예술을 도시발전 전략으로 삼는 유네스코창의도시네트워크는 도시브랜딩에서 문화예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문화도시' 전략이 세계적으로 부각된 계기는 유럽의 공업도시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문화도시" 전략이 세계적으로 부각된 계기는 유럽의 공업도시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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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는 영화산업을 통한 도시브랜딩을 다뤘는데, 이번에는 음악을 통한 도시브랜딩 사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음악을 통한 도시브랜딩은 쇠락해가는 공간, 기억에서 잊혀진 공간,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전남 여수가 대표적인 해양관광 휴양도시로 지명도가 크게 올라간 건 여수 밤바다에 '낭만'이라는 스토리가 입혀졌기 때문이다. 버스커버스커가 여수 밤바다 노래를 부르고,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선을 따라 여수 도심의 야경은 낭만과 황홀함을 더했다. 음악이 도시브랜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인 사례다.

리버풀(Liverpool)은 산업혁명 시기에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영국의 주요 외항(外港)으로 성장했고,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떠올랐다. 19세기 말까지 전 세계 물류의 40%가 통과하는 무역항이 되었다. 리버풀맨체스터 운하가 완성되고, 최초의 도시 간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철도가 개통되면서 리버풀은 교통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집중 포격을 당하면서 리버풀은 2000년대 초까지 쇠락한 항구도시로 전락했다. 그 결과, 영국의 산업도시 리버풀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버린 텅빈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명이 다한 것 같았던 리버풀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어준 것은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였다. 비틀즈를 매개로 한 음악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리버풀은 머지 비트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머지 비트(Mersey Beat)'는 1960년대 초반에 생겨난 로큰롤계의 사운드로 리버풀 밴드들의 음악 스타일을 말한다. 비틀즈와 연고가 있는 영국 공업지역 리버풀의 머지강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비틀즈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들을 복원하고, 도시 곳곳에 비틀즈의 스토리를 담은 리버풀은 '비틀즈 투어'를 통해 전 세계 비틀즈 팬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 관광상품으로 연간 40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리버풀은 비틀즈 말고도 '매트 스트리트 페스티벌'로도 유명하다. 1993년에 시작돼 매년 8월에 이틀 동안 열리는 음악 축제다. 90여 개의 밴드가 참여하고,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여든다.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구조 계획을 통한 도시재생으로 낡은 도시를 문화상업 공간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2008년에는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됐다. 쇠락한 항구도시에서 매년 1500만 명이 찾는 문화도시로 거듭난 리버풀은 관광수입이 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문화예술 자원을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과 도시브랜딩을 펼치고 있다. 특히, 1900년대 후반 도시의 경제구조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급격하게 침체기에 접어든 해항(海港)도시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체코보다 유명한 '프라하의 봄'
 
비틀즈를 매개로 한 음악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리버풀은 머지 비트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체코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프라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비틀즈를 매개로 한 음악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리버풀은 머지 비트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체코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프라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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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프라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한 도시의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까지 책임지는 그야말로 세계 도시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문화예술이라는 도시의 아우라로 각인돼 있다.

I♥NY, I amsterdam, be Berlin, all ways INCHEON 등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위해 도시브랜드 슬로건을 개발한 사례다. 프라하는 도시브랜드 슬로건을 개발하고 디자인한 것과는 달리,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둔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을 통해 암흑의 시대를 이기고 새로운 희망을 추구하는 도시이미지를 브랜딩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1968년 자유화운동을 뜻한다. 프라하의 봄은 1968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의 총리가 된 두브체크가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선포하며 시작됐지만 같은해 8월 프라하로 진군한 소련군 발포 명령과 진압으로 프라하 시민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좌절됐다. 1988년 옛 소련의 약화된 지배력, 다시 시작된 프라하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바츨라브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프라하는 1989년 진정한 봄을 맞았다. 

다른 하나는 매년 5, 6월 열리는 음악축제를 뜻한다. 1968년 체코의 자유주의정권시대를 이 축제에 빗대 쓴 신문 기사에 힘입어서다. 프라하는 '프라하의 봄'을 도시브랜드 이미지로 살리기 위해 음악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가 세상을 떠난 날인 5월 12일부터 4주 동안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이 축제는 항상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해 베토벤의 '합창'으로 끝난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인 음악도시라는 브랜드를 구축한 도시가 두 곳이나 된다. 모차르트(Mozart)가 태어나고 자란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비엔나다. 모차르트의 도시인 잘츠부르크의 대표적인 축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 Festival)'. 매년 7월 말에서 8월 말까지 열리는 세계 최고의 음악축제 가운데 하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의 공연을 개막작으로 처음 시작했다. 이후 브루노 발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같은 세기의 지휘자들이 축제를 주도하면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밖에도 1월 국제 모차르트 주간, 3월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 8월 헬브룬 축제, 10월 잘츠부르크 문화의 날과 잘츠부르크 가을 재즈축제, 12월 자츠부르크 대림절 음악제가 열리는 등 일년 내내 음악이 울려퍼지는 도시다.

코첼라(Coachella)의 정식 명칭은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이다. 캘리포니아 주 인디오의 사막지대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코첼라 밸리에서 봄에 열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다. 매년 가장 핫한 팝스타와 영향력 있는 뮤지션의 참여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록, 인디, 힙합,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코첼라 페스티벌은 1999년 폴 톨렛(Paul Tollett)과 릭 밴 샌튼(Rick Van Santen)에 의해 시작됐다. 초대 헤드라이너(Head Liner, 행사나 공연 따위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주목받는 출연자)는 벡, 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었다. 매끄러운 진행과 사막축제라는 차별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라인 업과 비주얼 아트, 패션 등으로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텍사스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는 매년 3월초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음악축제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north by northwest(1960년)'에서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SXSW는 1987년 오스틴의 지역 음악축제로 시작된 이후 점점 규모가 커져 지금은 90여 개의 공연장에서 50여 개 나라의 뮤지션 2000여 팀과 2만여 명의 음악관계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테크기업이 총출동하는 북미 최대의 융복합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에는 23만 명이 이 축제를 찾았다. 오스틴은 이 축제로 3억5000만 달러 이상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얻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아리랑'을 아십니까?
 
우리나라의 관문인 해항도시 인천은 개항의 정서가 담긴 '인천아리랑'도 있고, 외국의 다양한 대중음악이 유입돼 국내 대중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음악 역사의 산증인이다.
 우리나라의 관문인 해항도시 인천은 개항의 정서가 담긴 "인천아리랑"도 있고, 외국의 다양한 대중음악이 유입돼 국내 대중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음악 역사의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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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놈들 등살에 못살겠네 / 에구 대구 흥 단 둘이만 사자구나 에구 대구 흥 성화로다 / 산도 싫고 물도나 싫고 누굴 바라고 나 여기 왔나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어얼쑤 아라이야~"

'인천아리랑'은 진도·밀양·정선 아리랑과 견줘볼 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겨레아리랑협회 이사인 김연갑이 쓴 <팔도아리랑 기행1>(1994년)을 보면 1882년 조·미통상조약 당시 '인천 아리랑'을 연주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는 달리 개항도시 인천의 아리랑은 특별한 정서가 묻어난다. '왜놈'이라는 다른 나라에 대한 언급이 직접 나오는 대목과 개항지 인천에 품을 팔러온 전국 각지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다. 항일 민요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인 인천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1950~60년대 인천은 부평미군부대 애스컴(ASCOM, United States Army Support Command City, 미국수지원사령부)을 거점으로 미군부대 안팎에 여러 음악클럽이 있었다. 이 음악클럽들은 팝, 록크롤, 재즈, 스윙,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퍼뜨리는 전초기지였다. 국내 대중음악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부평 애스컴시티는 대중음악의 소비공간이었다면 부평 신촌은 애스컴시티와 더불어 22개의 음악클럽이 밀집한 대중음악의 또다른 유통기지였다. 부평 삼릉은 밴드 연주자들이 모여 살았던 대중음악 연주자들의 레지던스 역할을 담당했다. 부평은 음악이 창작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시스템이 마련된 공간이었다. 이처럼 부평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인천 부평의 미군전용클럽 '드림보트'는 2020년에 철거됐다. 인천의 음악도시 비전 선포와 부평의 문화도시 지정은 반가운 일이나, 한국 대중음악사의 현장이 이렇게 사라지는 일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반면, 경기 파주의 미군전용클럽 '라스트 찬스'는 경기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곳은 '가왕(歌王)' 조용필이 무명시절 밴드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흐르는 물(1988)', '버텀라인(1983)', '탄트라(1979)'는 인천 신포동 음악클럽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부평 애스컴과 함께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굵은 획을 그은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숭의동에 자리한 다국적군은 고국의 음악을 듣기 위해 신포동을 찾았고, 이곳에서는 재즈, 블루스, 컨트리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신포동 음악클럽에서 가수의 꿈을 키운 송창식, 우리나라 1세대밴드 김홍탁, 데블스 김명길 등 인천 출신 뮤지션들이 탄생했다.

음악도 인천이 우리나라의 관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2006년에 시작된 인천시 주최 음악축제다. 펜타포트는 '다섯'을 뜻하는 '펜타(Penta-)'와 '포트(port)'의 합성어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2006년에 시작된 인천시 주최 음악축제다. 펜타포트는 "다섯"을 뜻하는 "펜타(Penta-)"와 "포트(port)"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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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2006년에 시작된 인천시 주최 음악축제다. 펜타포트는 '다섯'을 뜻하는 '펜타(Penta-)'와 '포트(port)'의 합성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천시가 보유한 공항(Airport), 항만(Seaport), 정보통신기지(Teleport)의 트라이포트(Tri-Port)에 비즈니스(Business-port)와 레저(Leisure-port)를 더한 도시 전략을 뜻한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시발점은 1999년에 열린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다. 딥 퍼플(Deep Purple)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등 세계적 밴드들이 참여했으나 폭우로 공연이 중단된 뒤 폐지됐다.

그 맥을 이어 2006년 7월 송도시민공원에서 제1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 이후 인천시의 지원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함께 참가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락 페스티벌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매년 7, 8월 중에 사흘 동안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유튜브와 클룩 등 6개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연 실황이 생중계됐다. 

2016년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주섬주섬 음악회'는 168개의 섬을 가진 인천의 섬 음악축제다. 인천관광 5대 거점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섬을 홍보하고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주섬주섬 음악회는 재즈밴드, 복고밴드, 이디엠(EDM, Electronic Dance Music​, 전자음악의 총칭)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과 덕적도 지역민이 운영하는 푸드존, 캠프파이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이 음악회는 덕적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섬으로 향하는 바다 위에 뜬 배에서 라이브 재즈와 탭댄스 등 선상음악회가 열린다. 규모는 작지만 지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인천만의 특색있는 음악회다.

우리나라의 관문인 해항도시 인천은 개항의 정서가 담긴 '인천아리랑'도 있고, 외국의 다양한 대중음악이 유입돼 국내 대중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음악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금도 대규모 음악축제와 지역 음악축제가 공존하고 있다. 송도의 펜타포트 락 페스트벌, 영종 파라다이스시티의 EDM, INK(Incheon K-Pop) 콘서트, 옹진의 주섬주섬음악회 등이 매년 열린다.

인천시 옛 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과 부평 캠프마켓에는 음악창작소 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 예술도시의 첫 걸음으로 송도국제도시에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을 개관했고, 2025년 아트센터 인천 2단계 사업인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될 예정이다.

일상에서 함께하는 음악, 음악산업 생태계 조성, 음악자원 가치확산 및 음악연계 도시재생이라는 세 가지 전략을 바탕으로 인천은 음악도시로의 부상을 꿈꾼다. 그러나 음악도시로서 가져야 할 축제의 지향점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비틀즈의 리버풀,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 텍사스의 SXSW, 프라하의 봄은 명쾌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으로 형성된 문화 자본이 경제 자본으로 이동하는 도시들이다. '상반된 매력, 공존의 도시' 인천은 음악이라는 문화 자산을 어떻게 도시브랜드의 핵심 축으로 세울 것인지 또다른 숙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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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도시 및 국가 등 장소브랜드 관련 글을 기고합니다.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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