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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의 생얼
 산수유의 생얼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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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4일 토요일에 시작된 산수유 작업은 12월 8일 화요일에 끝이 났다. 그야말로 모든 게 너덜너덜해진 대장정이었다. 중간중간 쉰 날을 빼면 총 22일간 연구회 회원들은 기계의 리듬과 율동에 몸을 맡기고 가열차게 노동했다.

22일 동안에 과실 수확기와 산수유 제피기는 잠깐씩 오작동을 일으켰고, 그런 문제들은 기계를 잘 다루는 회원에 의해 곧바로 해결되곤 했다. 기계도 잔고장에 시달릴 정도의 기간이었는데,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계가 아닌 관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 짐작이 맞다. 자중지란(自中之亂), 사분오열(四分五裂), 이런 종류의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사태를 설명하기에 살짝 미흡하다. 마을은 갈가리 찢어진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고개 든 실용론자들

사실 마을의 구성원들이 다 함께 모여 3주가 넘도록 공동 작업을 한 경험은 이제까지 전무했다. 더구나 협동조합의 운영자금을 만들 목적으로 시작된 노동이라 더 생소한 경험이었다. 아무런 개인적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 출자금을 대신한 노동. 공동체를 만들 노동.

대의(大義)는 충분했으나 회원들 각각의 마음속에 든 소의(小義)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처음에는 명분론자들인 작업반장과 이 이사 그리고 남편이 연구회에서 활개를 치는 바람에, 실용론자들은 납작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작업반장이 문명사회 구축과는 거리가 먼 '허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남편이 한 귀촌인과 싸워서 분란을 일으키고, 이 이사가 트럭 기증을 철회하면서, 실용론자들이 슬슬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실용론자들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사화(士禍)라 할 만했다. 그것은 당쟁이 아니라,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회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한 정치경제학적 마찰이었다.

반장이 과실 수확기와 산수유 제피기는 연구회의 공동 자산이라고 역설해도, 실용론자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이 이사와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구입된 것이니, 기계들의 주인인 두 사람은 자본가이고, 그 이외의 회원들은 프롤레타리아다, 이게 실용론자들의 대변인인 우 이사의 입장이었다.

우 이사는 내천마을에서 태어나 10대 후반에 상경해서, 노동·노동·노동·결혼·노동·육아·노동·노동·귀농·노동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분이다. 그야말로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우 이사의 주도하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파업이 일어난 것은 11월 25일이었다. 마을 회관 마당에는 9시가 될 때까지 나와 남편, 반장과 이 이사 그리고 중평댁과 박 영감 아저씨 이렇게 6명이 모였다. 이미 위세가 많이 꺾인 반장이 전화를 걸어서 애원의 탈을 쓴 구걸을 했지만, 다들 풋 혹은 흥, 하고 콧방귀만 뀌었다.

9시 30분까지 회원들을 기다리던 반장이 작업 개시를 외쳤다. 전날 선별조가 가려놓은 열매를 세척하느라 손은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이제껏 코빼기도 한 번 안 내밀던 김 영감 아저씨가 어슬렁어슬렁 회관 앞 마당으로 다가오는 것 아닌가!

"내가 이거 안 된다 안 캤나. 내 이칼 줄 알았거든."

못 들은 척하고 계속해서 열매를 씻기만 했다.

"날도 추분데, 이기 다 무슨 지랄인동 모르것네. 박 영감하고 중평댁이, 너거는 요새 얼굴에 꽃이 핐네 꼬시 핐어. 연애가 좋긴 좋은 갑따. 이기 다 와 요래 됐는 줄 아나? 무산댁이가 살살 우가 놈을 꼬시가꼬 일이 이 모양이 된 기라. 너거는 몰랐재? 뭐라도 해볼라 카먼 우가 놈이 아이라, 무산댁이 그년을 조져뿌야 된다 이 말인 기라. 아이고야, 산수유 열매 조고 말라놓이까네 색깔이 우리 마누라 열여덟 때 볼따구 매로 이뿌네."

김 영감은 마을 회관 안에 있는 산수유 제피기를 슬쩍 훔쳐보다가, 반장에게 버럭 욕 한마디를 내뱉고는 '쾌지나칭칭나네'를 연발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술과 담배에 찌든 목청에서 가래처럼 튀어나온 가락이라, 시내 강변에 자갈도 많다, 캐지나칭칭나네, 살림살이는 말도 많다, 캐지나칭칭나네, 이 부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산댁은 안방에서 두 손을 바쁘게 놀리며 곶감을 접고 있었다. 반장과 육촌 정도의 관계라고 알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척 보기에도 사돈의 팔촌보다 더 소원한 사이 같았다. 무산댁은 내 앞에서도 반장에게 데면데면 푸접없이 굴었고, 반장은 헛기침만 계속 날려댔다.

"아, 형수. 손님이 왔으면, 물이라도 한잔 내와야 하는 거 아니오."
"요새는 어델 가도 물은 셀픈 기라."


야멸찬 대꾸에 반장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방문만 쳐다봤고, 무산댁의 눈은 곶감의 연한 가장자리를 조몰락대는 자신의 손가락에만 머물러 있었다. 내가 검지로 반장의 다리를 쿡쿡 찔렀지만, 무산댁의 '선빵'에 멘붕이 와버린 반장은 통각마저도 잃어버린 듯했다.

"저기, 아줌마. 산수유 작업한다고 힘드셨죠? 우리가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일을···."
"됐고. 내가 어델 가도 하루에 8만 원은 받는 몸인 기라. 협동조합인동 뭔동 다 좋다꼬. 그캐도 내 품값은 줘야 될 꺼 아이가."
"하루에 8만 원. 일단 말린 산수유 열매랑 산수유 식초, 팔고 나면."
"내가 또 8만 원 이놈을 다 달라 카는 거또 아이라. 절반은 운영자금인동 뭐시긴동 고걸로 빼놓고, 절반은 영감할마시들 품삯으로 줘뿌야 되는 기 하늘의 이치가 아인가 싶다."


맞는 말이었다. 하늘의 이치를 잘 모른다고 해도, 노동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는 건, 악덕 업주를 빼고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우 이사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반장은 말 한마디 없이 내내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반장 자신을 향한 것임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열정 페이' 같은 속임수로 임금을 떼먹을 궁리만 하는 악덕 업주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우 이사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따뜻한 오미자차는 셀프가 아니라 우 이사가 직접 손수 우리 앞으로 가져다줬다. 반장과 나는 말없이 차만 마셨는데, 무산댁이 우리의 언어 능력을 자신의 품삯으로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반장과 이사장한테는 정말 미안하네. 암만 생각해도, 아무리 좋은 의도라지만, 임금 없이 노동을 하라는 건 말이 안 되거든. 더구나 무산댁이나 소평댁 아주머니 같은 분들도 이런 식으로는 더는 못하겠다고 내게 털어놓기도 했고. 아무튼 자네들이 내 입장을 좀 알아주면 좋겠네."
"알죠, 형님. 저희가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습니다."
"좀 짧았던 게 아니라 많이 짧았네, 동생."


파업이 한차례 휩쓸고 간 후

파업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 명분론자들은 임금에 대한 모든 것을 쟁의대책공동위원장인 무산댁과 우 이사에게 백지 위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한 분의 아저씨와 한 분의 아주머니가 우리 연구회를 떠났다.

18명에서 출발한 지리산의식주연구회는 협동조합이 설립되기도 전에 인원이 15명으로 줄어들었다. 남편 탓에 한 분이 떠나고, 명분론자들 때문에 두 분이 탈퇴하고. 어쨌거나 세 사람의 탈퇴에는 직간접적으로 모두 남편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 인간은 정말 답이 없는 존재고, 이 방면의 일관성 하나 만큼은 우주최강이라 할 수 있다.

파업이 작업장을 한차례 휩쓸고 간 후, 오히려 작업의 분위기는 훨씬 좋아졌다. 마른 산수유와 산수유 식초를 생산해서 얼마만큼의 소득을 올릴지 알 수 없지만, 노동의 대가로 품삯을 배당받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들 신이 난 듯했다.

흥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들썩 흔들며 제일 신나게 작업한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남편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이라면, 와이프라도 시장에 내놓을 것처럼 굴더니, 쟁의대책공동위원장인 무산댁과 우 이사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이렇게 나불거렸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야근 수당이나 잔업 수당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남편의 이런 돌변한 태도에 반장과 이 이사 같은 명분론자들은 극도의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작업장의 대세는 실용론자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므로, 남편에게 분노를 터트릴 만한 명분이 없었다. 반장과 이 이사는 산수유 제피기 앞에서 까불거리는 남편을 그저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팰 뿐이었다. 
 
 계체량을 통과한 마른 산수유
  계체량을 통과한 마른 산수유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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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동안의 대장정 기간에 우리 연구회는 마른 산수유 200봉지와 산수유 식초 200L를 담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비슷한 제품의 가격으로 환산해봤다. 투입된 노동량을 따지면 이건 생산이라는 단어를 갖다붙이기도 생산에게 미안한 수준이었다. 호랑이나 코끼리처럼 먹었는데, 나온 건 토끼똥이나 염소똥이라니.

더 비극적이며 희극적인 건 마른 산수유 200봉지의 지인 판매였다. 어차피 산수유 식초는 6개월이 지나야 판매가 가능한 식품이라, 마른 산수유부터 일단 회원들이 지인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2주 정도가 지난 뒤 알게 된 건, 우리 회원들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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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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