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1년 애국주회 실시 장면
 2021년 애국주회 실시 장면
ⓒ 온라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전라남도 내 84.2%의 초등학교에서 '애국주회'라는 이름으로 일제 식민 잔재 의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전남 도내 430개의 초등학교 중 374개교의 애국주회 실시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경상북도, 충청남도, 광주광역시 등에 아직도 '애국조회'를 실시하는 학교가 남아있으나 전라남도처럼 도 단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다. 익숙한 애국조회 대신 '애국주회'라는 명칭을 두루 사용하는 것 역시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는 교육기본법의 기본 방향이자 교육 분야 국정 핵심 지표인 민주시민교육과도 거리가 먼 것이어서 학생들의 시민성 훼손과 민주시민교육 왜곡이 우려된다. 전라남도교육청(교육감 장석웅)은 지난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에 나서 최종보고회까지 마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5월 말~6월 초에 걸쳐 전라남도교육청과 도내 22개 지역 교육지원청에 2017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전남 도내 모든 초등학교의 애국주회 실시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6월 중순까지 자료를 제출한 학교는 전체 430개(전남교육청 2020년 공시자료 기준) 초등학교 중 374개(87%)였다.

이 가운데 82.4%에 해당하는 308개교에서 '애국주회'를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애국주회를 실시한 적 없다고 밝힌 학교들은 83개교였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일부 확인한 결과 이들 중 17개 학교는 거짓 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애국주회를 실시했으나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이다.

특히 고흥교육지원청 소속 초등학교들이 심각했다. 고흥교육지원청 소속 17개 초등학교 가운데 자료를 제출한 곳은 단 한 학교인데 이마저도 실시 횟수를 축소했다. 나머지 학교들 중 일부는 해당 기간 애국주회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했다. 이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 애국주회 실시현황을 공개하고 있으면서도 정보공개 청구에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제출한 것이다. 이들 학교의 자료를 수합하여 제출한 고흥교육지원청 김아무개 장학사는 "교감 선생님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애국주회를 실시한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애국심 강요하던 용어 '애국 훈화' 지금도 사용
 
연도별 애국주회 실시 현황을 학교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고 있으면서도 법률에 근거한 정보공개청구에는 애국주회를 실시한 적이 없다고 거짓으로 응답한 학교들이 많았다.
 연도별 애국주회 실시 현황을 학교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고 있으면서도 법률에 근거한 정보공개청구에는 애국주회를 실시한 적이 없다고 거짓으로 응답한 학교들이 많았다.
ⓒ 온라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전남 도내 374개 초등학교에서 '애국주회'를 실시하는 까닭은 기존의 애국조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학생 시상, 학교장 훈화 등의 의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으며, 애국주회 실시 목적으로 밝힌 가장 많은 내용은 '애국심 함양'이었다.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애국심 함양, 애국정신 함양, 애국심-애교심 함양, 애교-애향-애국심 함양, 애국심 고취, 향토 및 애국심 고취, 나라사랑교육, 애국 애족 정신 기르기, 나라 사랑하는 마음 키우기, 정기 나라 사랑 모임, 나라 사랑-학교 사랑, 애국 교육, 국가 상징 익히기, 국가 상징 교육 및 나라 사랑 지도, 나라 사랑 계기 교육, 애국 관련 계기 교육 등과 같은 이름으로 '애국주회를 통한 애국심 교육'을 하고 있었다.

애국주회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으로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 가장 많았다. '학교장 말씀, 학교장 훈화, 학교장 훈화 말씀, 애국 훈화'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목적은 '전체 학생 만남'인데 활동 내용은 '교장 선생님 말씀'인 목포 ㅇ초, '민주시민교육'이 목적인데 활동 내용은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인 신안 ㅈ초, '전교학생회 주관 애국주회'라고 명명하여 애국주회가 학생들이 주도하는 민주적인 학생자치 활동인 것처럼 꾸민 신안 ㅎ초 등도 있었다.

금연 서약식, 고운말 서약식, 학폭 없는 학교 만들기 선서식, 규칙 준수 서약식 등 학생들에게 온갖 서약을 강제하는 애국주회를 실시한 학교들도 있었다. 모두 민주시민교육의 지향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천황)에 대한 애국심을 강요하던 용어인 '애국 훈화'를 지금도 사용하는 학교들이 많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함평, 장흥, 보성, 무안, 목포, 구례, 영암 등 지역 20여 개 이상의 학교에서 '애국 훈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인성 훈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학교도 있었다. 애국주회를 '인성주회, 감사주회, 성장주회, 사랑주회'로 이름을 바꾸어 실시한 학교들도 있었으나 전교생을 모으고 집단의식을 치르는 애국주회의 기본적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국주회는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현재 진행 중
  
월간교육일정과 요일별 활동 내용에 명시한 애국주회
 월간교육일정과 요일별 활동 내용에 명시한 애국주회
ⓒ 온라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또 하나 주목할 것은 2021년 들어 애국주회 실시 횟수가 2020년보다 더 증가했다는 점이다. 2020년 98개교에서 600회의 애국주회를 실시한 반면, 2021년에는 104개교에서 333회를 실시했다. 2020년은 1년치 횟수이고 2021년은 3개월(3월~5월)치 횟수임을 고려하면 이미 2020년의 절반 이상 애국주회를 실시한 셈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에는 잠시 애국주회가 줄어들다가 2021년 들어서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실제로 코로나19 때문에 애국주회를 실시하지 못했다고 밝힌 학교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혁신학교(무지개학교)로 지정된 곳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2017년(374교에서 총 2843회)보다는 줄었으나 여전히 전남 도내 많은 초등학교에서 애국주회는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이번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애국심이 학교 교육의 최고 가치로 미화된 것은 1~2차 세계대전 시절이었다. 애국조회의 배후에는 애국심이 최고의 가치로 버티고 있었다. 지난 세기의 폭력적 의식이 21세기까지 초등교육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조회(朝會)'는 일제강점기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 가장 강조한 집단의식이었다. 당시 학교 단위로 전교생이 치르는 기념행사나 의식이 매우 빈번했다. 이런 집단훈련은 반복되었고 주로 운동장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후 박정희 정권에서 국민교육헌장 선포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면서 '애국조회'로 굳어졌다. 애국 애족과 국가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하며 애국 충성을 다짐하는 장으로서 학생들에게 강제되었다.

전남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이러한 의식이 아직까지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유지되고, 심지어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왜곡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전남교육청과 학교에서는 "학교가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학교들은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거나 위험한 것"이라고 했던 미국의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 교수의 말을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취재 후기] 정보공개 청구 처리 절차에 대한 무지와 횡포
 
전남교육청은 정보공개청구법률을 이행하지 않고 임의대로 업무를 종결지었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법률 제정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전남교육청은 정보공개청구법률을 이행하지 않고 임의대로 업무를 종결지었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법률 제정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 온라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정보공개 청구 과정에서 전남교육청의 부적절한 대응이 있었다. 전국 단위 학교는 정보공개 청구의 대상인 공공기관이지만 현재 정보공개포털을 통한 정보공개 청구 시 신청기관으로 직접 선택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단위 학교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려면 교육청으로 신청 후 교육청에서 해당기관(각급 학교)으로 이송하는 것이 법률에 따른 절차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 11조 4항에 "공공기관은 다른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의 공개 청구를 받았을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소관 기관으로 이송하여야 하며, 이송한 후에는 지체없이 소관 기관 및 이송 사유 등을 분명히 밝혀 청구인에게 문서로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전남교육청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임의대로 '부존재'로 답변하고 업무를 종결지었다. 업무 담당자인 전남교육청 유초등교육과 김아무개 장학사에게 법률을 설명하고 정보공개청구서를 단위 학교에 이송할 것을 요청하는 2차 정보공개 청구를 했으나 이 역시 '부존재'로 답변하고 종결지어 버렸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법률 제정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전남 도내 22개 지역교육지원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자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동일한 일이 반복되었다. 일부 지역교육지원청에서는 (관내 학교로 정보공개 청구를 이송하면) 번거롭다는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전남 도내 교육지원청 장학사들은 이와 관련하여 5월 27일 협의회에서 "정보 부존재 답변하기로" 짬짜미까지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장학사가 직접 확인해 준 내용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그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교육청이 정보공개 청구를 학교로 이송하지 않고 임의대로 부존재 처리하면 단위 학교로 정보공개 청구하기는 원천 차단된다. 교육청이 위법을 조장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 침해하는 것이다. 단위 학교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절차와 과정이 법률의 취지에 맞도록 개선되어야 하며, 시도 교육청의 위법한 훼방 놓기가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태그:#애국조회, #애국주회, #전남교육청, #민주시민교육, #장석웅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