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의 4년제 대학 수는 240개가 넘는다. 여기에 2·3년제를 더하면 이 좁은 반도에 무려 400개가 훌쩍 넘는 대학교가 있다. 이 통계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아마 "이 좁은 땅에 대학이 이렇게 많았나?"라고 놀랐을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동네마다 대학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현재 대한민국은 '대학포화상태'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전국의 수험생들은 매년 성적, 그리고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는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욱 낭만이 절실했던 유신시대에도 그랬고 1인1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현재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자살의 원인에서 성적과 진학 스트레스는 해마다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한 극히 일부의 학생들을 제외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성적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충무로에서도 <우아한 거짓말>과 <울학교 이티>, <제니, 주노>, <천하장사 마돈나>같은 영화를 통해 청소년 문제를 꾸준히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인 성적 문제를 담은 영화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 문제를 가감 없이 다루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강우석 감독의 초기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 번쯤 돌아 볼만한 작품이다.
 
 1989년에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서울에서만 15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1989년에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서울에서만 15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 황기성 사단

 
충무로 파워랭킹 9년 연속 1위 감독의 출세작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충무로 파워랭킹 1위 자리를 지켰던 강우석 감독도 연출부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성인영화 <애마부인>시리즈의 연출부와 조감독으로 활동하던 강우석 감독은 1989년 영화 <달콤한 신부들>을 통해 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하지만 최재성, 최수지 주연의 청춘 멜로물이었던 <달콤한 신부들>은 강우석 감독의 <애마부인> 조감독 이미지 때문에 개봉 당시 성인물로 오해 받기도 했다.

강 감독은 1989년 여름 신인배우 이미연과 허석(현 김보성)을 앞세운 청소년 드라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두 번째 작품으로 선보였다. 신인배우들의 풋풋한 연기와 비극적인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린 강우석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당시 단 2개관에서 개봉했음에도 서울에서만 15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크게 성공했다. 이 영화를 통해 이미연과 허석, 김민종 등이 청춘스타로 도약했다.

1990년대 들어 해마다 신작을 선보이며 부지런히 활동한 강우석 감독은 <미스터 맘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 등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작과 배급에 뛰어들면서 감독으로 활동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2002년 <공공의 적>을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2003년에는 <실미도>를 연출해 대한민국 최초의 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다.

2005년 열혈형사 강철중을 검사로 변신시킨 <공공의 적2>로 전국 390만 관객을 모은 강우석 감독은 2006년 차인표와 조재현, 강수연 등을 캐스팅한 대작 <한반도>를 선보였다. 하지만 <한반도>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맞붙으면서 참패, 강우석 감독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강우석 감독이 대표로 있는 시네마서비스에서 배급한 <아들> <황진이> <싸움>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이 나란히 흥행에 실패하는 불운도 있었다. 

강 감독은 2008년 '불패 아이템' 강철중을 재소환해 <공공의적 1-1 : 강철중>을 히트시켰지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와 <전설의 주먹>, 청각장애 야구팀의 이야기를 다룬 <글러브>가 나란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이후 <공공의 적4>, <조선 투캅스> 등을 기획했다가 무산됐고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마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공부 잘하고 착한 은주가 세상을 포기했던 이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개봉 당시 이미연은 전국 남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개봉 당시 이미연은 전국 남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 황기성 사단

 
미국 농구 대표팀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시상대에서 웃지 않았다. 농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 3위가 얼마나 대단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드림팀'이라 불리던 그들에게 금이 아닌 다른 색깔의 메달은 무의미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은주(이미연 분)도 마찬가지. 은주는 예쁜 얼굴에 착한 성격을 가진 데다가 전교 6등을 달리는 수재지만 어머니(정혜선 분)는 언제나 은주에게 더 높은 성적을 원한다.  

비록 학업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언제나 밝은 성격의 봉구(허석 분)는 은주를 남몰래 짝사랑한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언제나 무뚝뚝한 은주 때문에 마음 고생하던 봉구는 은주의 절친 소연(이미남 분)에게 접근해 은주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한다(좋아하는 사람의 친구에게 접근해 그 사람의 정보를 얻어내는 연애 방식은 1998년에 발표된 터보의 노래 < X >를 통해 반복된다).

은주는 공부에 대한 부담 때문에 봉구의 접근을 피하려 하지만 그는 은주가 다니는 성당까지 찾아와 선물과 편지를 전하며 정성을 다한다. 결국 시험이 끝나고 은주와 봉구는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은주의 성적은 떨어지고 결국 은주는 집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이에 좌절한 은주는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은주가 남긴 유서에는 "하느님, 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을 만드셨나요? 선생님, 왜 이렇게 우리를 무서운 세상에서 살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양택조 분)은 변하지 않는 교육계 현실을 대변하듯 냉정하게 수업을 진행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은주와 봉구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지만 조연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김민종이 연기한 권투소년 창수다. 특히 권투도장에서 체육교사 박길호(이덕화 분)에게 혼이 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김민종은 이덕화에게 총 7대의 따귀를 맞는데 따귀를 맞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눈빛이 점점 야수처럼 돌변하는 명연기를 선보인다.

이미연 못지 않은 청순가련 미녀 최수지 
 
 김민종(왼쪽)은 그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한 대한민국 학원물에서 반항아 역할을 도맡아 했다.

김민종(왼쪽)은 그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한 대한민국 학원물에서 반항아 역할을 도맡아 했다. ⓒ 황기성 사단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 '수지'에 대해 물으면 열에 아홉(혹은 열에 열)은 '국민 첫사랑' 배수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35세 이상은 배수지보다 <보랏빛 향기>와 <흩어진 나날들>을 불렀던 재미 교포 출신의 여성가수 강수지가 먼저 생각날 수도 있다(물론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신수지가 떠오르는 마니아층도 있겠지만). 하지만 강수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대표 수지'는 단연 배우 최수지였다.

1987년 KBS 특채 탤런트로 합격하자마자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투입된 최수지는 이어 <토지>에서 주인공 최서희 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강우석 감독의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최수지는 강우석 감독과의 인연으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도 양호 선생님 역으로 캐스팅됐다. 그 시대 양호 선생님의 이미지처럼 최수지도 친절한 성격과 아리따운 외모로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된다.

특히 봉구의 절친으로 나오는 천재(최수훈 분)는 양호 선생님을 짝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위한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양호 선생님은 체육교사와 썸을 타고 천재는 그들의 데이트 장면을 미행하다가 술에 취해 강물에 빠진다. 비록 조숙한 선생님 연기를 했지만 최수지와 학생 역을 맡은 이미연의 나이 차이는 고작 4살에 불과했다.

1990년 재미교포와 결혼한 최수지는 이혼 후 컴백해 <아그네스를 위하여>, <물위를 걷는 여자>, <남자는 외로워> 등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1997년 재혼 후 다시 연예계를 떠난 그는 2002년 귀국해 2004년 <빙점>, 2008년 <쾌도 홍길동>에 출연했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활동이 없는 최수지는 지난 2016년 KBS <여유만만>이 조사한 '다시 보고 싶은 여성 배우' 순위에서 2위에 오르며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1위는 정윤희).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강우석 감독 이미연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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