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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텃밭을 일구고 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제법 큰 밭과 대문 밖 앞집 형님네 밭에 조금. 그리고 마당에 놓은 화분들 이렇게 세 곳이다.

화분의 식물은 온전히 사람이 주는 물에 의지한다. 큰 화분이라 흙이 많아도 왕성하게 자랄 때나 지금처럼 햇볕이 뜨거울 때는 생각 외로 물이 빨리 마른다. 그러니 화분에 뭘 심어 먹으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물만큼은 늦지 않게 주겠다는 어느 정도의 각오는 꼭 필요하다.

문제는 이렇게 잘 알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 마당에 놓은 화분이니 후다닥 튀어나가 물을 주기까지 10분 남짓이면 될 것인데, 막상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퇴근해 와서 보면 시들어 있기 일쑤였다. 물을 주는 것으로 생기를 찾긴 했지만, 상태가 좋을 리 없다. 텃밭을 몇 년 일구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들로 이젠 어지간해선 죽이지 않지만 예전엔 죽이는 게 다반사였다.

관리하기 힘든데도 마당 화분에 심어 가꾸기를 끝없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라는 것을 수시로, 그리고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한다. 몇 년째, 일 년에 몇 번씩 씨앗을 뿌리는데도 씨앗을 뿌린 후에는 언제나, 한동안 설렌다. 그러다가 싹이 돋고 자라기 시작하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한밤중에, 캄캄한 속을 들여다본 적도 많다. 올해도 그렇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씨앗은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발아율이 떨어진디고 한다. 지난해 뿌리고 남은 씨앗을 뿌렸다. 뒀다 버리는 것보다 어린순으로 솎아 먹는 것도 좋겠다싶어 많이 뿌렸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씨앗은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발아율이 떨어진디고 한다. 지난해 뿌리고 남은 씨앗을 뿌렸다. 뒀다 버리는 것보다 어린순으로 솎아 먹는 것도 좋겠다싶어 많이 뿌렸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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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사각으로 된 커다란 화분 두 개에 자색방울열무를, 나머지 하나엔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올해는 잦은 비 덕분에 아직까지는 뭐든 심어 가꾸는 것이 순조롭다. 며칠 지나지 않아 흙이 갈라지며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쑥쑥 자랐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어찌나 즐겁던지 남편과 애들이 웃으며 이와 같은 농담을 던질 정도로 걸핏하면 그 앞에 쪼그려 앉곤 했다.

"좀 전에 봤잖아. 그런데 또 봐? 그동안 얼마나 컸겠어?"
"엄마는 그게 그렇게 궁금해? 밤중에까지 나가 쳐다볼 정도로? 뭐가 보인다고. 그냥 데려다 함께 자는 것은 어때?"


퇴비만 줬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어린순을 솎아 샐러드도 해 먹고 좀 더 자란 것을 뜨거운 밥에 잘라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쓱쓱 비벼 먹는 호사도 누렸다. 텃밭 8년차인데 처음으로 느낀 것이라 더욱 행복하게 와 닿았다. 그런데 이런 호사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작은 고민으로 바뀌었다. 배추흰나비가 마당을 맴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심 두고 보면 특정 식물 주변에 특정 나비가 맴돌거나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비들 저마다 좋아하는 식물이나 꽃들이 있어서다. 꿀은 가리지 않고 먹어도 알은 특정 식물에만 낳는다고 한다. 배추흰나비는 배추를 비롯하여 무, 갓 등처럼 십자화(꽃잎이 4장) 꽃이 피는 식물들의 잎에만 낳는다. 흰나비 유전자에 기억된 본능 때문이다.

그러니 마당에 배추흰나비가 맴도는 것은 열무와 얼갈이에 알을 낳고자 하는 거다. 나비가 낳은 알은 며칠 지나면 부화해 자기가 붙어있던 잎을 시작으로 먹고 자라면서 고치를 짓고 번데기로 살다 나비가 된다. 알이 워낙 작고 잎 앞은 물론 뒤에도 낳으니 찾아 없애기가 어렵다. 날아들기 시작한 며칠 후부터 애벌레를 잡아낼 수밖에 없다.

재작년까지 대문 밖 텃밭에 열무와 얼갈이를 뿌리곤 했지만 거의 먹지 못했다. 땅강아지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며 싹이 트는 것부터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싹 터 자라던 것들도 어느 순간부터 달팽이나 다른 벌레들 밥이 되었다. 동시에 배추흰나비가 날아들어 알을 낳고,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를 줄이려면 알맹이로 된 일종의 살충제를 흙에 섞은 후 심으면 된다. 텃밭을 일구는 이유 중 하나는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것을 먹고 싶어서다. 재미 삼아 조금 심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야 하나 싶어 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고 가꾸고 있다. 그러니 그동안 수확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봄비는 단비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5월 중순 어느날 어린순을 솎아 샐러드도 해먹고 비빔밥에도 올려 먹었다.
 봄비는 단비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5월 중순 어느날 어린순을 솎아 샐러드도 해먹고 비빔밥에도 올려 먹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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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마당에 놓은 사각 화분에 씨를 뿌렸다. 한편으론 싹이 트면 어린순을 먹어도 좋겠다, 소박한 바람을 가졌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자라 김치까지 담가 먹었다. 너무 크지 않은 데다가 먹기 좋게 적당히 질긴 김치맛이 너무나 좋았다. 앞으로 열무나 얼갈이는 화분에 심어 먹자, 부러 생각할 정도였다. 여하간 올해도 맛보고 싶었다.

'알 낳기 전에 뽑아 된장국을 끓여 먹을까?'
'아직 어리니 물김치처럼 자박자박 담가볼까?'
'(알을) 얼마나 낳겠어. 그냥 애벌레 잡아내며 좀 더 키워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열흘 정도만 더 키우면 김치로 담그기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해와 달리 채 자라기도 전에 배추흰나비가 날아든 것이다. 예상대로 나비를 처음 발견한 그 며칠 후부터 애벌레가 보이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눈을 박곤 한 끝에 이미 잎을 갉아 먹을 만큼 갉아먹어 초록빛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를 잡아내곤 했다. 그렇게 보름째, 이런 내 고민을 알 리 없는 흰나비는 계속 날아들고 있다.

올해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나비로 자라기까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유백색이었던 알은 노랗게 변한다. 그러다가 부화해 잎을 갉아 먹으며 자라는데, 뿌리 쪽부터 위로 옮겨오며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라야 발견하기 쉽다.

매일 새벽마다 들여다보곤 하다 보니 어디쯤 벌레 먹은 잎이 있는지 어느 정도 기억했는데, 어느 날부터 심각할 정도로 갉아 먹힌 잎들이 느는데 애벌레는 도무지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런 와중 문득 알게 된 것은 최근 며칠 마당에 날아드는 새들이 많아졌다는 것. 아마도 열무나 배추가 자라면 애벌레가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이미 알고 있는 새들이 날아들어 잡아먹기 때문이 아닐까?

여하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새에게 먹혔거나, 무사히 번데기가 되었거나. 그러고 보니 배추흰나비가 날아들기 시작하자 개미나 노린재, 무당벌레 같은 곤충들이 눈에 띌 정도로 열무가 자라는 화분이나 열무 잎에 많아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조심스럽게 지레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나비가 낳은 알을 먹고자 들락날락할지도 모른다고.

이제야 생각나는데, 지난해 이즈음 마당 화분에서 키운 열무에는 달팽이가 있었다. 혹시 달팽이에게 먹힐 것 같아 알 낳는 것을 지레 포기, 다른 곳 열무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지레짐작하거나 느끼며 가꾸는 재미가 오늘은 새삼 더 행복하게 와 닿는다.
   
알을 낳으러 왔던 배추흰나비가 자신이 낳을 알의 위기를 느꼈을까? 앉자마자 본능적으로 산란관을 내리더니 접는다. 나비가 사라진 후 보니 알을 낳지 않았다.
 알을 낳으러 왔던 배추흰나비가 자신이 낳을 알의 위기를 느꼈을까? 앉자마자 본능적으로 산란관을 내리더니 접는다. 나비가 사라진 후 보니 알을 낳지 않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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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찌나 집요하게 그리고 자주 날아들던지 배추흰나비가 앉지 못하도록 며칠만이라도 그물망을 쳐볼까? 망설였었다. 그런데 그처럼 차단하고 싶기도 했던 흰나비 덕분에 쉽게 볼 수 없는 생명의 치열한 생존 전략과 경이로움, 그 순환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 지레짐작했던 배추흰나비의 한살이에 대해 찾아 읽으며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되었고(배추흰나비 한살이는 대략 알로 5~7일, 애벌레로 15~20일, 번데기로 7~10일, 성충으로 24~28일이다).

여전히 애벌레들을 잡아내고 있다. '나비로 볼까? 김치를 담글까?' 며칠째 이처럼 고민하면서 말이다. 올해는 주변에 열무밭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해보다 더 집요하게 왔었나 보다 싶어서다.

그러나 이 고민은 16일 아침에 끝났다. 앞집 형님의 "일부러 나비를 키우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살충제를 더 많이 쳐야 하잖아! 작년 가을에 벌레 잡는다고 좀 고생했어!" 이 말 때문이다. 형님은 해마다 50~60포기 정도의 김장배추와 무를 심는다. 자식들과 나눠 먹는 것들인데도 두세 번 정도 살충제를 뿌려야 할 정도로 배추와 무 농사는 힘들다. 배추흰나비 때문이다. 흰나비가 이미 뽑아놓은 열무 주변을 맴돌았다. 그게 짠하긴 했다.

태그:#배추흰나비, #도시농부, #텃밭, #열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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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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