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이에게 과거의 뛰어난 작품들을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고(故) 김광석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뮤지컬 '그날들'을 보며 또 다른 감동에 빠질 것이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심취한 사람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해석에 힘입어 과거의 대작들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거나, 아예 180도 변형시켜 내놓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재탄생한 작품들은 원작의 작품성과 비교되며 평가받곤 한다. 다수의 작품이 원작의 아성을 넘지 못하지만, 원작과는 완전 다른 파격적인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과 엠마 스톤 주연의 <크루엘라>는 단연 후자에 속한다. 원작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크루엘라'의 탄생 서사에만 집중한 영화<크루엘라>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따뜻함과 포근함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에 압도되게 함으로써 크루엘라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케 한다. <크루엘라>는 인물과 서사, 그리고 음악 등에서 익숙함을 주는 동시에 그것을 완전히 깨뜨림으로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우리가 기억하는 크루엘라는 괴팍한 악역의 대명사이다. 달마시안의 가죽을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크루엘라이기 전에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 디자이너 '에스텔라'였다. 고아, 도둑, 화장실 청소부 등 기구한 삶을 살다 우연히 유명 디자이너의 눈에 띄어 기회를 얻게 된 에스텔라는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지만, 자신의 상사 바르네즈와 관련된 진실을 목도한 후 야수 같은 디자이너 '크루엘라'로 변신한다. 이후 펼쳐지는 바르네즈와의 대결구도에서 관객들은 에스텔라의 삶에 공감하는 동시에 크루엘라의 파격적인 행보에 통쾌함을 느낀다. 바르네즈를 무너뜨리기 위해 크루엘라가 선택한 더 훌륭한 패션들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영화 <크루엘라>에서 주목할 것은, 원작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서사에 관객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이름을 빌려오는 것 말고는 원작과 전혀 상관이 없다. 원작의 등장인물들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은 완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조해보는 즐거움 또한 얻을 수 있다. 지금껏 디즈니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원작 실사화 영화에서 보기 드문 방법이기도 한데, 기존 실사화 영화에서는 원작의 인물을 얼마나 똑같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관심을 끄는 방법이었다면, 크루엘라는 이름만 차용하는 방식으로 익숙함을 주고 모든 서사를 뒤틂으로써 익숙함 가운데 새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익숙함과 공존하는 새로움, <크루엘라>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한가지다.
 
또한 <크루엘라>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디즈니답게 디즈니스러운 방식으로 관객들을 익숙함에서 탈피시킨다. 등장인물 중 아니타가 원작과 달리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캐스팅 된 점과 바르네즈의 작업실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함께 등장하고, 크루엘라가 성소수자를 암시하는 듯한 개성 넘치는 아티와 함께 일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디즈니는 이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창조해냈고, 이는 크루엘라에서도 단연 통했다.
 
마지막으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크루엘라를 관람한 관객은 영화 곳곳 등장하는 OST를 듣고 "이 노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Doris Day 의 < Perhaps, Perhaps, Perhaps >를 비롯해 Queen의 < Stone Cold Craz y> 등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의 올드 팝을 통해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국내 자동차 회사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익숙한 Nina Simone의 < Feeling Good > 등의 음악을 통해 긴박하게 전개되는 내용 가운데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는 1970년대 영국 런던의 풍경을 주 배경으로 하며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장면과 찰떡궁합인 음악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이렇게 디즈니는 크루엘라라는 인물을 파격적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 역사에 또 하나의 큰 업적을 남겼다. 디즈니는 크루엘라 이후로도 <피터팬과 웬디>, <인어공주>, <헤라클레스>, <피노키오> 등 전세계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할 작품들을 실사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중 상당수 작품들은 촬영이 시작되었거나, 캐스팅이 완료됐다. 크루엘라 뒤를 이을 작품이 어떤 것이 되든지간에, 크루엘라 만큼의 재미를 보장한다면 무엇이든 환영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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