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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위기다. 지방이 소멸된다고 한다. 역대 정부가 소리 높이 외친 '국가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은 레토릭에 불과했나. 혹세무민이었나. 아니면 국가정책이 없었으면 지방은 이미 폭망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는가. 각 지자체가 인구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데 모든 기초지자체의 장기발전계획은 인구 증가를 목표로 수립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기초지자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초지자체에서 언감생심 불가능한 목표다. 특히 농어촌 시군 지자체는 존립이 위태롭다.

얼마 전 전남 모 군청의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참여하는 '지방소멸대응 학습모임'에 초청받아 강연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지방은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지방이 소멸되면 대한민국이 소멸된다. 지방소멸이 아니라 행정의 통합으로 지자체가 소멸될 뿐이다"고 하였다.

'일촌일품운동'(1979년 시작)으로 '지방시대'를 연 히라마쓰 모리히코(平松守彦) 전 오이타현 지사(9선 후 은퇴)는 "인구의 과소화는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마음의 과소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이타현의 절대 인구가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이타현에 살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개발사업과 귀촌・귀농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가 줄면 예산과 행정기구가 축소되어 공무원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는다. 중요한 것은 인구의 절대 수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싶은 사람의 수이다. 어떤 사람들이 농촌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가. 누가 미래 농촌지역의 주인이 될 것인가. 농촌지역에서 자신의 주체적・농촌적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아야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농촌에 들어와야 한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자치

참여정부 이후 이른바 상향식 농촌개발이 추진되어 왔다. '중앙정부·행정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욕구와 참여에 바탕을 둔 '지자체·주민 주도'의 지역개발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무늬만 '상향식'일 뿐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개발은 아니었다.

중앙정부가 농촌개발사업 메뉴를 제시하면 지자체는 컨설팅업체를 선정하여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멋지게 예비계획을 수립한다.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 지자체는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사업을 관리·감독한다. 보조금 확보를 위한 지방정부, 컨설팅업체, 지역유지 연합이 주도하고 주민들의 '민의'는 동원된다. 주민은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농촌주민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농촌주민이 필요한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농촌에는 그런 주체 역량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늬만 상향식 개발을 계속할 수는 없다. 역량은 경험의 과정을 통해 학습되어지는 것(learning by doing)이다. 이미 주민 스스로 문제 해결 역량이 있음을 보이는 농촌지역이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주도하여 마을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민자치회는 2020년 10월 주민총회를 통해 '죽곡면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치계획의 수립 과정이 흥미롭다. 우선 2019년 12월 자치계획단을 구성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2020년 1월부터 지역조사에 착수하였다. 죽곡면 28개 마을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주민의견조사를 하여 죽곡면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주민자치'(5개 사업), '관광소득사업'(3개 사업), '환경보전'(2개 사업), '지역활성화'(5개 사업), '마을복지'(6개 사업) 등 5개 분야 21개 사업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5단계로 나누어 실시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21개 의제 가운데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하여 2021년에는 죽곡 토란도란 마을축제(죽곡면은 토란의 주산지), 찾아가는 주민자치 프로그램, 죽곡마을 119, 죽곡문화 출간 등 4개 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과 시행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전 주민이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고 있으나, 65세 이상이 주민의 43%를 차지한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에 길들여진 주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뭘 줄 거냐고 물어본다. 의견조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주민자치회의 생각이나 기본계획을 설명하고 이해를 넓혀 가며 참여를 유도하였다.

또한 기존의 각종 주민단체(청년회, 이장단 회의, 부녀회, 노인회, 의용소방대 등)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진정성 있게 일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높아지고, 이들 단체와의 의견 불일치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을 주도한 주민자치회 박진숙 자치분권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가 자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자치위원과 주민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역할이다. 자치계획에 21개 의제를 다 넣을 필요는 없었고 현안 4-5개 사업만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면 되었는데, 주민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죽곡면 주민자치회가 하고 싶은 것

박 위원장은 "마을 교육력을 높이고 역량을 키워 관계 중심의 마을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다"고 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삶과 교육이 통할 수 있는 마을교육을, 어른들에게는 주민자치회와 연계하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동아리 형태의 서로 배움 자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래샘, 요리샘, 농사샘, 생태놀이샘, 예술인생샘, 국선도샘, 목공샘, 바느질샘, 영어샘, 수학샘 등 지역의 어른들이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배움과 돌봄을 이어가는 죽곡함께마을학교는 온 마을이 서로 돌보며 성장하여 마을 교육자치를 실현하는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추구한다."

주민자치회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오늘은 빵요일' 행사
 "오늘은 빵요일" 행사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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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전체 주민이 주민자치회원으로 가입하고, 마을 어른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주체가 되어 어른들과 함께 기획하고 참여한다. 토란작목반 농부가 죽곡초 어린이와 함께 토란농사를 지어 토란도란 마을축제에 기증하고,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도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하고, '오늘은 빵 요일'에는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빵을 만들고, '달려라 손 큰 부엌'에서는 동네의 손 맛 좋은 할매가 선생님이 되어 젊은 아짐과 아이들이 맛난 음식을 배우고 나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지혜를 나눔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고, 아이들은 지역과 마을살이를 배워간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2018년), <토란 밭에서 뭐가 자라게>(2020년)를 출간하고, <노래가 된 시 음반>(2019년을 제작하였다.
 
우리동네 손맛 좋은 할매가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젊은 아짐들과 아이들이 함께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
 우리동네 손맛 좋은 할매가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젊은 아짐들과 아이들이 함께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
ⓒ 죽곡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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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생활상의 필요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 죽곡면은 28개 마을로 이뤄졌는데, 면의 면적이 넓고 고령인구가 절대 다수이고, 교통이 불편하여 면 소재지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면 소재지에서만 진행되는 자치프로그램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을 찾아가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 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 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 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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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스스로 해결한다.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의 모든 강사는 지역민이다. 마을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의 모든 기관이 참여하여 죽곡마을교육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최근에는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수지침 강사, 독립영화 감독, 전문 MC, 고등학교 교사, 도자기 공예가, 목공, 농민회장, 예술기획가, 어린이집 원장, 심리상담사, 미용실 원장, 지역아동센터 교사, 퇴직 음악 교사, 도서관 관장 등이다. 지역의 교육, 문화, 예술,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18명이 참여하여 주민자치회의 운영과 마을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 조성된 100세대의 강빛 마을의 은퇴자들이 전문 역량을 보태고 있다.

넷째,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해 지역의 생태환경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지역의 생태와 환경, 먹거리, 다양한 문화체험과 교육문화 활동을 통해 농촌자원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자존감을 높이며,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교사, 장학사, 곡성군 미래교육재단이 함께해 '곡성학교생태텃밭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2강의 교육과정에 20명을 예상하였으나, 68명이 지원하여 현재 60명(교장, 교사, 어린이집 교사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사양성과정과 함께 죽곡초와 한울고(공립대안고)에 학교생태텃밭정원을 조성하여 마을교사와 학교가 협력하여 시범운영하고 있다.
 
죽곡초 생태 텃밭 만들기
 죽곡초 생태 텃밭 만들기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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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2천 명의 마을에는 반드시 자치역량이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이나 구상이 인구 2천 명이 안 되는 작은 동네가 감당하기 벅찰 듯해서 "그럴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박 위원장의 답이다.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일 할 사람'이 일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에게 권한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기회를 주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키워가도록 해야 한다. 보조사업의 한계를 너무 많이 느끼고 있어서 자치력을 향상해 결국에는 교육자치가 되어야 하고 마을자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을마다 다 알고 있다. 마을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활동가들이 있고, 그분들을 추동해내고 교육을 통해 조금 더 성장시키면 된다.

다만 믿음과 신뢰가 부족해서 그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농산어촌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보면 곡성군뿐 아니라 전국에 그러한 활동가들이 있다. 특히 농촌지역은 더 심각하게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같이 인터뷰에 참여한 귀농 3년 차인 주민자치회 임춘성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판이 안 깔아져서 그렇지, 어느 농촌지역이나 반드시 일 할 사람이 있다. 내가 곡성군에서 하는 10회 주민자치활동가 양성과정을 들었는데, 다른 면에서 오신 분들을 보고 놀랐다. 곡성군에 이런 분들이 있구나. 이런 분들과 연대하면 다른 면에도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인구 1천에서 2천 정도의 동네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5명만 있어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필자(맨 왼쪽)와 인터뷰 중인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 박진숙 위원장(가운데)과 임춘성 사무국장(오른쪽)
 필자(맨 왼쪽)와 인터뷰 중인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 박진숙 위원장(가운데)과 임춘성 사무국장(오른쪽)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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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는 이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주민자치회는 곡성군 주민참여예산, 전남 교육청의 마을학교 예산, 전남도의 마을공동체 예산 등을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총액이 1억 1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공모를 해서 예산을 따야 하는 사업이 많아 괴롭다. 이게 싫어서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자존심도 상한다.

더욱이 정부의 마을사업은 사업비를 주지만 인건비는 주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월급 받고 일하면서 마을활동가들에게는 알아서 열정으로 해결하라고 하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곡성군에 주민자치회가 죽곡면에 하나밖에 없고, 군의 관심이 부족한 것도 걸림돌이다.

"더 많은 주민자치회가 설립된다면 함께 노력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나 자치단체장의 인식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주민자치회 설립이 법제화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을 준다면 더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다."(박 위원장)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경험학습의 산물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주민자치를 위한 주민들의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다.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한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작은 도서관 운동이다. 2004년 죽곡면 농민회 문예부는 지역의 문화 활동을 위해 4평짜리 죽곡농민도서관을 개설하였다. 당시 죽곡면 농민회는 전성기였다. 서울에 집회를 가면 버스 7-8대가 갈 정도였다. 그 힘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7년 작은도서관 사업에 공모하여 1억 3천만 원으로 지금의 도서관을 건립하였다. 지역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죽곡농민열린도서관으로 개명하였다.

초기에는 인문학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외지에서 청강생이 올 만큼 제법 유명세를 탔지만, 귀촌자 중심의 활동으로 마을 주민의 참여가 저조하였다. 2014년 도서관 운영위원을 농민회원 중심에서 지역단체장(면장, 노인회, 새마을지도자회, 청년회, 부녀회, 농민회)과 학교운영위원 및 학부모회 대표 등으로 개편하고, 학부모 독서회를 구성하고, 문화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마을 주민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죽곡농민열린도서관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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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는 도서관 활동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죽곡함께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교육생태계를 복원하는 공동체교육운동이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학교의 힘만으로는 삶에 기반한 교육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마을의 힘을 빌려 교육을 혁신하려는 사람들과 교육의 힘으로 쇠락해가는 마을공동체를 키워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곡마을교육공동체를 꾸려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학생이고 선생이 되어, 주민이 원하고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한다.

3단계는 2020년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되어 주민자치와 마을교육이 결합하여 죽곡면 지역활성화 10년 로드맵을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업이 잘 되는 곳에는 어디에나 훌륭한 리더가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박진숙 위원장이 그런 사람이다. 박 위원장은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주에서 여고와 대학을 나왔다. 광주에서 여성센터와 대안교육공동체에서 일하다가, 주체적인 배움과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2012년 죽곡면으로 귀농하였다.

귀농 후 50여 종의 토종생태농사를 하면서 2014년부터 죽곡열린농민도서관장을 맡아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리면서 죽곡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을 거쳐 주민자치분과위원장과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곡성군 교육참여위원회 소위원장, 곡성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 출신의 남편은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이장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 외에도 죽곡면 주민자치회에는 손경수 회장을 비롯해 두 명의 부회장과 5명의 분과위원장 그리고 간사와 사무국장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18명으로 출범한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마을을 함께 이끌고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의 활동에도 죽곡면의 미래가 반드시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죽곡면 인구는 2005년 2249명에서 2021년 4월에 1924명으로 줄었다. 0세에서 8세의 어린이는 124명에 지나지 않는다. 죽곡면 유일의 초등학교인 죽곡초의 학생 수도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할 때 6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3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올해 귀농 등으로 초등학교 입학생이 11명이 늘어 전교생을 30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죽곡면의 사람들이 재미나게 살아가면 미래가 열릴 것이다."(임 국장)

주민자치와 농어촌주민 수당

죽곡면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면 좋을 것인가.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이 죽곡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임 국장)
"죽곡면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돈이 덜 들어왔고, 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큰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박 위원장)
"불행 중 다행이다."(임 국장)
"아무 준비 없이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주민자치회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기획을 해서 각종 사업이 같이 묶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 위원장)


지역 의정보고에 의하면 현재 죽곡면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조사업들의 예산이 대황강변 관광개발사업비 180억 원을 비롯해 400억 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죽곡면 인구(1924명) 일인당 2000만 원이 넘고, 월 30만 원씩 모든 주민에게 직접 수당으로 나누어준다 해도, 6년 가까이 줄 수 있는 돈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이웃 석곡면의 실태는 어떨까.

"석곡면에는 많은 개발사업이 들어와 땅값이 오르고,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여 사람들이 땅과 집을 내놓지 않아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임 국장)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개발사업을 추진하면 죽곡면의 미래가 열릴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않을까. 주민자치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 답은 교수님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담하는 것을 들었는데, 기본소득 개념으로 농촌주민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수당을 지불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임 국장)
"농촌에 농촌주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은 농촌지역이 너무 피폐해 개발에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직접 지원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박 위원장)


내가 구상한 농어촌주민(면지역)을 대상으로 한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농촌을 지키고 있는 만큼 농촌에 사는 사람에게 주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설명했더니 100% 찬성이란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 모인 아이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 모인 아이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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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개발'은 틀린 말이다. 농촌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책무는 그곳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외부 자본과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 농촌을 파괴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농촌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농촌에 투입하지만, 농촌주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도로 등 SOC 포함)은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에게 떡고물을 남기고, 도시인이 운영하는 각종 업체를 통해 돈이 도시로 되돌아간다. 지역에 남는 것은 주민 갈등과 운영비 먹는 하마인 각종 시설과 텅 빈 도로뿐이다.

농촌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될 때가 되었다. 그 방안은 농촌정책을 재정비하여 보조금 사업을 대폭 줄이는 대신에 첫째, 농어촌주민에게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을 지급하고, 둘째, 농어촌주민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며, 셋째, 농어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농어촌주민이 직접 기획해서 집행하도록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다.

나도 같은 잘못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오를 시인하고 발상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태그:#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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