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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이제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다. 공원에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심한 갈증이 느껴진다. 갈증이 한창 절정에 달해있을 때 먹는 수박 맛은 일품이다. 수박하면 떠오르는 군대에서의 추억이 있다.

훈련병들은 4인 1그릇, 간부는 1인 1그릇
 
수박 화채
 수박 화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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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4일,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 안 그래도 무더운 여름에, 훈련까지 받으려니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7~8월 삼복더위에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다는 건, 그야말로 불지옥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한창 훈련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훈련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각개전투'를 하는 날이었다. 장마도 끝나고 정말 무더위가 극도에 달했던 때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르는 터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그날 마침 새로 부임한 육군참모총장이 훈련소로 시찰을 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대기하느라 정신적·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각개전투 와중에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스테인리스 생수통에 수박화채가 가득 담겨서 나오는 게 아닌가. 먹기 좋게 썰어놓은 수박 조각들이 둥둥 떠있는 화채를 보니까 정말 먹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서 통째로 입에 들이붓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목이 마르든 말든 간부들은 자기들끼리만 국자로 화채를 퍼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신나게 먹었다. 참 치사하고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훈련병들에게도 화채를 배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떡볶이 담는 작은 스티로폼 그릇 하나에 담아 3, 4명이 한 조가 되어 나눠먹게 했다. 간부 및 조교들은 1인 1그릇이었다.

그까짓 수박, 간부들은 일과 끝나고 퇴근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고생하는 훈련병들을 위해 좀 더 마음껏 먹으라고 양보할 수는 없었을까. 간부는 주적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밖에 나가면 수박화채부터 실컷 먹을 거라고. 그래서인지 지금 내 기억엔 없지만, 부모님께서 훈련소 수료식 때 수박을 싸오셨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훈련소에 있을 때 편지로 부모님께 먹고 싶은 음식들 목록을 적어보냈던 것 같은데, 그때 아마 수박을 적어서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먹는 것 가지고 서러움 느끼지 않도록

지금도 여름철에 수박을 먹을 때면 가끔씩 훈련소에서 먹었던 수박화채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도저히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때 먹은 수박만큼 세상 시원하고 달달한 맛은 없었다. 전역하고 나면 군대에서 먹던 뽀글이(라면) 맛을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싶다.

요즘 들어 군대 부실 급식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도 군필자지만 SNS에 장병들이 찍어서 올린 급식 사진들을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걸 보면서 우리들 앞에서 양껏 수박화채를 먹던 간부들이 떠올랐다.

제발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 말자. 안 그래도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끌려와 꽃다운 청춘을 군대에서 보내는 이들이다. 임오군란도 결국 먹는 것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먹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국군 장병들이 서러움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개선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gabeci/222404519674)에도 게재합니다.


태그:#군대, #훈련소, #논산훈련소, #수박화채, #부실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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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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