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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을 미리 알려주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나무다. 천 년이 넘었다.
▲ 영국사 은행나무  큰일을 미리 알려주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나무다. 천 년이 넘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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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드문 일이었다. 천 년 넘은 은행나무의 아름드리 가지가 부러졌다. 추석 무렵에는 잎마름병이 번졌다. 가을이 가기도 전에 이파리가 말라버렸다. 절에 비상이 걸렸다. 애를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해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볼 수 없었다. 2019년 일이다.

멀리는 홍건적 난부터 임진왜란, 6·25전쟁, 가까이는 유명인의 죽음까지 은행나무가 미리 알렸다던데, 그렇다면 혹시?

천태산 영국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코로나바이러스 환란을 예고한 영국사 은행나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울음소리를 내어 국란을 알렸다는 신통력과 영험함을 지닌 신묘한 은행나무'라는 말과 함께.

영국사
 
  양산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보물과 문화재로 가득하다.
▲ 영국사  양산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보물과 문화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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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홍건적이 고려를 침범했다. 개경이 위험에 빠지자 공민왕이 피난길에 올랐다. 충북 영동 양산에 있는 국청사에 와서 나라가 편안해지기를 빌었다. 홍건적을 물리친 뒤,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바꾸라고 했다.

6월 중순인 지난 주말, 영국사를 찾았다. 양산팔경 가운데 제1경이다. 주차장에서 영국사 가는 길은 멀었다.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와 새소리가 함께 했다. 골짜기를 따라 큰 바위가 줄지어 있다. 마지막은 가파른 계단길이다. 일주문을 지나도 절은 보이지 않고, 푸른 은행나무만 보였다.

영국사는 볼거리가 많다. 그러나 다들 은행나무 주위만 서성대다가 발길을 돌린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한가롭게 구경할 수 있다. 만세루를 오르면 대웅전이고, 그 앞에 삼층석탑이 있다. 1층 몸돌에 자물쇠와 문고리 두 개가 새겨져 있다. 탑 안에 보물을 숨겼나 했더니 그 자신이 보물이다. 보물 535호다.

옆에 있는 보리수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홍단풍나무는 미리 가을을 보여주고 있었다.

왼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원각국사비가 나온다. 원각국사는 고려 시대에 영국사를 큰 절로 만든 스님이다. 그의 유골이 영국사에 모셔져 있다. 비몸은 아래가 없어진 채로 거북받침돌에 세워졌고, 비머릿돌은 반으로 깨진 채로 바닥에 놓여있다. 세월의 무게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각 주위에 석종형승탑과 원구형승탑이 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조금 위에 이름 없는 승탑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서 주위와 더 잘 어울린다. 누군가 받침돌 위에 동자승을 올려놓았다. 바람 소리가 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았다. 새소리가 나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다. 말소리가 나지만, 사람이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멈춘 곳이었다. 가장 아늑한 곳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미리 만들어 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 돌계단을 오르면 영국사 승탑이다. 원각국사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생각되는 탑이다. 흠잡을 데 없다. 몸돌 한 면에 문짝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 무늬를 넣었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처럼 그 자신이 보물이다. 보물 532호다. 소나무가 승탑 주위를 둘러싸고 바람 소리를 냈다.    

천태산
 
  우거진 나뭇잎이 정상석을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만 보였다.
▲ 천태산 정상  우거진 나뭇잎이 정상석을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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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에서 천태산(天台山) 오르는 길은 네 갈래다. 오를 때는 에이 코스 미륵길을, 내려올 때는 디 코스 남고개길을 골랐다.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미륵길은 짧지만, 바위를 타야 한다. 남고개길은 길지만, 전망이 좋다.

미륵길 들머리에 들어섰다. 쉽지 않은 산행을 미리 알려주듯 10여 분 오르니 바위 언덕이다. 오르는 길 내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밧줄로 바위에 오를 때마다 보상이라도 하듯 전망이 좋았다.

밧줄 구간은 네 곳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맛보기다. 밧줄 없이도 오를 수 있다. 세 번째는 몇 개의 밧줄이 줄줄이 나온다. 보통이다. 네 번째가 문제다. 밧줄로 75m 바위를 타야 한다. 천태산의 상징이다. 위험하다는 경고와 함께 '안전 등산로'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밑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돌계단이 있다. 밧줄도 나온다. 그러나 긴장하지 않고 오를 수 있을 정도다.
 
  밧줄로 75m 바위를 타야 한다. 천태산의 상징이다. 밑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 암벽 코스  밧줄로 75m 바위를 타야 한다. 천태산의 상징이다. 밑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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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올랐다. 해발 714.7m다. 영국사에서 1시간 남짓 걸렸다. 전망은 별로였다. 우거진 나뭇잎이 정상석을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만 보였다. 100대 명산 인증 사진을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쉬웠다.
 
  공룡의 머리와 등과 꼬리가 기다랗게 뻗어 있다. 공룡의 눈은 어디일까요? 뒤로 산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천태산 최고의 전망대다.
▲ 공룡바위  공룡의 머리와 등과 꼬리가 기다랗게 뻗어 있다. 공룡의 눈은 어디일까요? 뒤로 산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천태산 최고의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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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쉼터 안내판이 있다.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 전망바위  잠시쉼터 안내판이 있다.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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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을 지나고, 공룡바위가 나왔다. 공룡의 머리와 등과 꼬리가 기다랗게 뻗어 있다. 천태산 최고의 전망대다. 크고 작은 산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공민왕이 머물렀다는 마니산과 옥새를 숨겼다는 옥새봉도 보였다. 얼마 뒤 전망바위도 나왔다. '잠시쉼터' 안내판이 있다.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잠시 쉬고 난 뒤, 지루한 흙길을 걸었다. 영국사 삼거리를 거쳐 망탑봉으로 갔다.

망탑봉
 
  바위를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려놓았다.
▲ 망탑봉 삼층석탑  바위를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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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12경 가운데 다섯 곳이 망탑봉(望塔峯)에 있다. 전망이 좋다. 공민왕이 신하들과 윷놀이했다는 곳이다. 윷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판판한 바위가 있다. 동쪽으로 트인 벼랑 끝 바위에 윷판이 새겨져 있다.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다. 지름이 약 42cm이다.

그러나 피난 중에 윷놀이를 했을 까닭이 없다. 억지로 지어낸 듯하다. 찾아보니, 윷판형 바위그림이다.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도는 모습을 나타냈다. 전국적으로 30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농사에 얽힌 계절의 달라짐을 생각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태산 망탑봉에 있다. 상어가 헤엄치며 바닷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다. 흔들바위라고 하는데,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 상어바위  천태산 망탑봉에 있다. 상어가 헤엄치며 바닷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다. 흔들바위라고 하는데,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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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은 삼층석탑이다. 바위를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려놓았다. 큰바람이 불면 넘어질 듯한데도 천여 년을 버텼다. 신기했다. 탑 옆으로 거북바위와 연화석과 상어바위가 나란히 있다. 그 가운데 상어바위가 가장 돋보였다. 상어가 헤엄치며 바닷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다. 흔들바위라고 하는데,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망탑봉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진주폭포가 있다. 폭포 위 바위에 쇠줄이 걸려 있다.
▲ 진주폭포  망탑봉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진주폭포가 있다. 폭포 위 바위에 쇠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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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진주폭포가 있다. 폭포 위 바위에 쇠줄이 걸려 있다. 쇠줄을 잡고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나 보다. 아래쪽에 폭포로 가는 길이 열려있다. 물소리가 반가웠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시원했다.

집에 오는 길에 송호관광지에 들러 강선대까지 걸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는 여전히 멋졌다. 정자에 앉았다. 천태산에서 쌓인 피로가 금강 물줄기를 따라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태그:#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 #망탑봉, #상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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