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리시 보건소에서 나온 자원봉사 의료진이 9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서 생활 중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구리시 보건소에서 나온 자원봉사 의료진이 9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서 생활 중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선생님들께. 드디어 광클(광속 클릭)의 세상에 접속 성공했어요. 잔여백신 예약됐어요. 바로 옆 H내과니까 얼른 다녀올게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75세를 넘긴 친정엄마는 뉴스로 나오는 부작용만 보시고 접종을 거부하셨다. 혹시나 당신에게 부작용이 생겼을 때, 혈관주사 하나 꽂기도 힘들다고 미리 겁을 먹었다. 다음 두 번째 기회에 맞겠다고, 젊은 너희들은 사회활동을 많이 하니까 꼭 맞으라고 말씀하셨다.

내 나이는 50대이니, 7월 접종이 가능했다. 그러나 접종 가능자들의 노쇼(No-Show)가 많아지자 정부는 잔여백신 예약 서비스 정책을 발표했다. 접종 초기에는 사람들 사이에 백신에도 등급을 매겨서 A가 좋다더라, B는 부작용이 있다더라 등의 숱한 말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잔여백신 예약이 발표되자, 움직임이 많은 중장년층들이 예약을 선호했고 그 결과 백신 접종률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로 클릭해도 '0'... 내 휴대전화를 의심했다 

2주 전쯤, 학원을 운영하는 내게 한 선생님이 잔여백신 신청했는지를 내게 물었다. 잔여백신 예약이란 말을 알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하냐고 묻자, 예약 신청하기가 로또 복권 당첨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요즘 예약 당첨된 사람들은 정말 행운이래요'라는 말에 갑자기 나도 신청하고 싶어졌다. 디지털에 문외한인 사람처럼, 휴대전화로 신청하는 법을 배웠다.

네이버로 사전 예약법을 검색하고, 내가 사는 동에서 가까운 병원 중 백신 주사를 놓는 병원 5곳을 클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잔여백신을 맞는 것이 그렇게까지 '광클' 필요한 일인지 몰랐다. 예약 신청한 다음 날, 텃밭에서 일을 하고 나오는데 휴대전화에 네이버 문자 알림 표시가 있었다. 이게 뭔가 하고 눌러보니, 모 병원에서 보낸 잔여백신 신청 가능 문자였다.

알림 문자가 온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 있어서, 백신 주사 이름 옆에 수량을 뜻하는 숫자 0이 뜰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다. 그런데 곧이어 또 하나의 알림 문자가 떴다. 자세히 읽어보며 "아스트라제네카로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숫자가 다시 0으로 되었다.

무슨 상황인지를 몰라서 하단에 있는 '예약 신청'이란 초록색 표시를 눌러도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그건 벌써 다른 사람이 예약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문자를 읽을 시간이 없이 무조건 클릭을 해도 예약이 될까 말까 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네이버 알림 문자와 속도 전쟁을 펼쳤다. 내 딴엔 알림이 뜨면 바로 클릭한다고 했는데도, 예약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이번 주만 해도 매일매일 사무실의 주요 대화 주제 중 하나가 잔여백신 알림 문자에 대한 것이었다.

"샘, 내 핸드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알림 오면 나도 바로 누르는데 1초도 안 걸려. 1초 사이에 사람들이 동시에 한다고? 사람들이 휴대전화만 보고 사나?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아니에요. 할 일이 많으니까 빨리 접종받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림 뜨면 0.1초 내에 클릭해야 돼요. 아마 0.0001초보다 빠를걸요."


학원 선생님들은 말했다.

'좋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도 한다면 한다는 사람이다. 나에게 반드시 잔여백신 접종의 기회가 올 것이다.' 무슨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리니 남편이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잔여백신을 희망하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능하면 빨리 접종해서 학원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나의 솔선수범이 코로나 백신 주사에 대한 불신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랐다. 또 하나는 다음 달 남편의 뇌질환 예후 검진에 보호자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오라는데, 이왕이면 백신 주사를 맞는 게 낫지 싶었다.

전쟁 같던 '광클', 감격의 백신 접종 

어제(17일), 남편이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학생들의 차량을 운전하기로 했다. 학생을 기다리는데 잔여백신 예약을 알리는 신호가 왔다. 화면을 보는 순간 수량이 3명분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바로 클릭해도 또다시 0명이 됐다. 퇴짜를 맞은 것이다. '정말 귀신같이 빠르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10여 분 뒤 다른 병원에서 알림이 떴다. '아스트라제네카 7명, 얀센 1명'.

내 손가락 터치는 귀신보다, 광속보다 더 빨라졌다. '박향숙 님, 잔여백신 당일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오늘 17:00까지입니다.' 확인 안내를 받았다. "오예~"라고 환호를 불렀다. 이렇게 예약되는구나. 혹시나 몰라 병원에 전화를 해서 확인까지 했다. '7명이 다 채워졌나요?'라고 물으니, '1~2초 내에 예약이 끝나요'라고 간호사가 답했다. 정말 광클(광속 클릭)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구나 싶었다.
 
드디어 잔여백신 예약에 성공했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것이 더 신기하네.
▲ 잔여백신예약성공문자 드디어 잔여백신 예약에 성공했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것이 더 신기하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학원 선생님들에게 예약 성공의 메시지를 보내고, 병원에 갔다. 근거리에 있는 병원이어서 10분 내로 도착했는데, 신기하게도 예약에 성공한 7명 중 5명이 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는지도 궁금했고, 예약 당첨이 복권 당첨보다 어렵다는 말 때문인지, 무슨 훈장을 찬 듯한 발걸음에 속으로 웃음만 났다.

간호사의 사전 설명과, 의사의 주의사항도 들었다. 예약자들 사이에선 비장함이 감돌았다. "뉴스에서 들리는 백신 접종 부작용에 대한 불행한 얘기는 극히 소수의 사례지만, 만에 하나라도 있을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 말씀드려요. 주사 후 오늘과 내일 사이 설명서에 적혀있는 증상이 있으면 꼭 병원으로 오세요. 하지만 별일 없을 겁니다. 편안하게 주사 맞으시면 됩니다"라고 의사는 덧붙였다.

나는 광클만큼이나 빠르게 주사를 맞았고, 20여 분 안정된 자세로 병원에서 기다렸다. 타이레놀이 집에 없어,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받았다. 약국을 나서는 순간 남편과 아이들, 친정엄마와 가족들에게 백신 주사 접종을 알렸다. 학원 가족들에게도 밴드를 통해서 공지했다.
 
접종후 10분도 안되어 2차접종안내를 해주는 정부의 전산시스템에 감탄했다.
▲ 접종후 날라온 정부의 문자안내 접종후 10분도 안되어 2차접종안내를 해주는 정부의 전산시스템에 감탄했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저녁에 있는 고등부 수업을 오늘 하루만 쉬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학부모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학생들 역시 당연히 쉬셔야 된다고 답장이 왔다. 주사 맞는 일이 이렇게 축하받을 일이었다니, 난감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코로나가 지배하던 어둠의 시간이 물러가고, 새 세상이 올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반드시 그럴 거라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약간의 미열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열마저 고맙다. 백신을 맞은 뚜렷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담이 그려진다. 그 뒤에 펼쳐져 있는 푸른 초원에서, 올해의 하반기에도 열심히 뛰어다닐 나를 미리 격려해본다. 

태그:#잔여백신접종, #아스트라제네카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