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행동으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있다. 당연한 틀을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편집자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가로세로가 1미터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의자 하나 겨우 꽉 들어차는 이 작은 공간에서 국가정보원 여성 직원에게만 적용되던 43세 정년 규정이 위법하다는 2019년 대법원 판결이 만들어졌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청주방송에서 쫓겨났던 고 이재학 PD, 어떤 사회적 안전 장치도 없이 성희롱 등 가해에 노출되어 있는 요양보호사들, 그리고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안내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소장' 역시 이 안에서 만들어졌다.

그 외 숱한 '균열'의 기록이 좌우 책장에 빽빽했다. 그런 책장 사이에 놓여 있는 책상과 의자, 윤지영(44세) 변호사가 일하는 공간은 참 소담했다. 그리고 더웠다. 바깥 온도가 30도를 넘나들던 17일 오후,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전기를 아끼기도 하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 가급적 참고 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가급적 참고 사는 공간을 또 조각조각 나눠서 오밀조밀 일하는 변호사와 간사들이 모두 13명.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 이 곳에서 접점을 이룬 균열들이 세상 밖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선글라스 끼고 노래 부르는 변호사의 유튜브 영상
 
수임료를 따진다면 소송은 엄두도 못 낼 사건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금액이 적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근로자임을 확인 받고, 차별과 보복 조치에 책임을 묻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중략)... 그래서 의뢰인들께 수임료를 받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공감은 모든 사건에서 수임료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공감의 기부자님들이 그 수임료를 대신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맙습니다. (4월 7일 공감 뉴스레터, 윤지영 변호사)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수임료를 따진다면 소송은 엄두도 못 낼 사건"은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인데도 또한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문제에 대한 공감을 높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공감'은 돋보인다. 결국, 누군가 용기를 내 일으킨 균열을 이어가는 것, 2004년 설립된 공감이 오랫동안 한 일이다. 

윤 변호사 또한 공감에서 오래 일했다. 햇수로 11년 째, 그가 뉴스레터에 쓴 글에는 공감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직장 갑질에 대처하는 '팁'을 전달하려고 제작한 영상, '뻘∼건' 옷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해 허리춤에서 마이크를 척 뽑아들고 "어디다 대고 이런 갑질이냐, 너라면 이런 회사 다니겠냐"며 노래를 뽑는 그 모습(https://youtu.be/qKlASm9psPA)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초반부터 우리는 월급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유튜브 - [공감통톡 코너 속의 코너 공감 뮤비] 직장갑질 말아주라.
 [공감통톡 코너 속의 코너 공감 뮤비] 직장갑질 말아주라.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유튜브

관련사진보기

 
- 앞서 큰 로펌에서 일한 것으로 안다. 월급이 많이 줄었을 거 같다. 

"거기서 워낙 돈을 많이 줘서 여기로 오니 1/3 수준이 됐다(웃음). 애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기존 로펌에서는 내 양심에 반하는 경우가 있더라. 여기서는 하는 일 자체도 너무 좋고, 고정적으로 월급까지 나오니 만족스럽다. 내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돈에 대한 개념도 원래 별로 없다(웃음). 사실 공감을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는데, 어느 단체 가서 상근 활동가처럼 일해볼까, 무보수로 사건을 수임해볼까 그런 생각도 한 적 있다. 그래도 여기 있으니 뜻 깊은 일하며 월급도 받는 거다.(웃음)"  

그런 생각을 윤 변호사는 이미 일부 실행에 옮긴 상태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직장갑질119'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시 무보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공감과 통하는 점이 역시 있는 단체다.

- 의미 있는 균열이 변화로 이어지려면 공감이 중요한 거 같다.

"기본적으로 균열은 사람이 내는 거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말이다. 최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안내데스크 노동자 손해배상청구사건을 시작했다. 이 분들이 20여 년 동안 안내데스크 지키느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일했는데 급여 인상이 거의 없어 처음으로 임금을 월 10만 원 올려달라고 얘기했다. '안 된다'는 답을 받았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더니 '나가라'고 통보했다. 이 분들은 비정규직 철폐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 분들이 얼마나 절실한지 듣는 게 우리 공감의 작업이다. 공감해야 더 많은 걸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결국 균열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기존 질서 자체가 소위 말하는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 중심으로 짜여 있지 않나. 그 질서를 깨기 위한 하나의 모멘텀(동력)으로서의 균열은 너무 바람직한 거 같다."

"가장 악질적인 1890만원 짜리 차용증"

- 취약 노동과 여성 인권과의 관계는?

"공교롭게도 내가 맡은 소송 의뢰인들이 두 분 빼고 다 여성이다. 아이러니하다. 소위 말하는 비정규직에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다. 지위에서 발생하는 차별, 인권 침해 문제에 있어서 피해 당사자가 거의 여성이다. 그 중에는 캐디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한 끝에 자살했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이 있다. 프리랜서라고 노동법 적용을 안 받는다. 학교에서 시간제 돌봄을 전담하는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도 복지후생비를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다 여성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들도 정부가 급여를 책정해주는데, 법정수당을 못 받았다. 정부 위탁을 받은 기관은 '임금포기각서'를 지원사분들에게 쓰게 했다. 정부에서 돈을 적게 줘서 노동자에게 줄 돈이 없다는 논리다. 활동지원사분들은 '돈 받으려면 각서 써야 한다'고 하니 사인했다더라. 이 포기각서가 효력이 없다는 임금 청구 소송을 하고 있다. 파견직 사무보조를 했던 한 여성분은 입사 첫날 '원래 룸살롱 여자 뽑으려고 했는데 네가 예뻐 뽑았다'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당했다. 회사 대표에게 얘기했더니 해고됐다. 지금 말한 사건 모두 여성이 피해자이면서 소송 당사자인 사건들이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가장 화가 나는 사건, 가장 악질적인 사건은?

"휴대폰 대리점에서 판매 업무를 했던 20대 초반 여성 점원이 있다. 그런데 이 점원을 통해 거래했던 고객이 요금을 안 내거나 불만을 접수하면 이 점원이 그 책임을 다 졌다. 이 사례가 가장 화가 난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분이었다. 일 시작하고 6개월 후 회사에서 고객 클레임 처리, 구매자 요금 체불 등으로 발생한 비용을 그 분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제대로 일할 수 있었겠는가. 회사 측 요구가 발생한 후 3개월 동안 그 분이 할당량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받은 임금은 '0원'이었다. 앞서 회사에서 책임질 것을 요구한 돈에다가 가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겹치다보니 이 분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1890만원까지 불어났다. 회사에서는 차용증까지 쓰게 했다. 그걸 갚고 퇴사를 했는데도 회사는 이 분을 또 괴롭혔다. 퇴사 후에도 추가 손해가 발생했다며 이 분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일하다가 중간에 회사와 체결한 이른바 '무한책임 계약서'를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직원 분이 한 번은 내게 울면서 전화를 했더라.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아 의뢰인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가 가봤더니 그날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응급실로 곧장 이송돼서 큰일은 없었지만... 

이런 거 보면 너무 슬퍼진다. 왜 일을 했는데 죽음을 고민해야 하나. 통신사나 대리점이 아니라 판매 직원이 무한책임을 지는 구조다. 통신사는 고객 불만이 접수되어도 자기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이걸 대리점에 책임지라고 전가하고 또 대리점은 판매직원에 전가해버리는 거다. 표면적으로 가장 악질인 건 대리점 회사다. 여러 곳에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 합치면 매출만 240억 원에 달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런 사슬 가장 위에 있는 것은 통신사다."

"우리 모두 개미처럼 균열...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의뢰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도 되느냐고 했다. 

"사실 나는 대리인일 뿐이다. 법률 활동가라고 생각하는데, 이 활동 자체가 나 혼자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인공은 의뢰인들이고 그분들을 법률적으로 돕는 거 뿐이다. 그런데도 내 얘기를 막 한다는 게 부끄럽더라. 위험을 감수하고, 고통을 겪는 건 모두 의뢰인이다.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의뢰인이다. 소송은 굉장히 오래 간다. 그 싸움을 각오하고 가겠다고 결심한, 용기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의뢰인들이 주인공이라는 거다.

MBC 방송 작가들이 당사자인 소송을 새로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근무하시던 분들이 2020년 해고당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 아니고 직원'이라고 판정했다. MBC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행정 소송이 시작됐다. 나와 강은희 변호사가 방송작가를 대리해서 소송을 맡게 됐는데, 방송작가유니온이 주도적으로 이 싸움을 끌고 가고 있다. 앞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때도 방송작가유니온에서 1인 시위도 하고 피케팅도 하면서 외부에서 이슈화 시켰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이 없으면 나와 같은 활동은 매우 어려워진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활동가분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나는 변호사는 법에 대해 아는 기술자라고 생각한다. 종합적인 해결을 위해 사건 전체를 끌고 갈 힘이, 최소한 나에게는 없다. 의뢰인들은 사건 당사자일 뿐 아니라 보상을 바라지 않고 활동하는 활동가 같기도 하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저도 일할 수 있는 거다. 주제 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변호사여서 다행이다. 내가 변호사니까 법에 대해 뭐라도 이야기 할 게 있는 거니까. 훌륭하고 용기 있고 혜안 있는 분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뉴스레터에 썼던 말은 모두 진심이다. 기부해주시는 회원들이 있기에 활동이 가능하다. 소송하고 소장 내는 일, 기부자들도 그 일을 같이 해주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다. 다 같이 균열을 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의뢰인, 활동가, 공감 기부 회원들, 우리 모두가 개미처럼 균열을 내고 있다. 안 보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정말 많다. 그래서 이 일이 재미있다. 굉장히 큰 재미다."

독립편집부 = 이주연·이정환 기자 facebook.com/ohmyeum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