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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예전에 방송됐던 다큐멘터리 영상 하나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주인공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100년 된 집과 450년 된 은행나무였다. 집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람들 이야기에 공감하며 빠져들었다. 

1923년, 미국에서 온 테일러 부부는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이는 언덕 위에 자라난 은행나무에 반한다. 그래서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짓고 이름을 '딜쿠샤'라고 지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탄생한 딜쿠샤는 테일러 가족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며 갈 곳 없는 사람들을 품어주었다. 

100년 된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흔들렸다. 딜쿠샤와 은행나무를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 현재 이 집은 '딜쿠샤 전시관(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딜쿠샤를 잊지 못하고 훗날 다시 찾은 테일러의 후손이 테일러 일가의 유물을 기증하고 서울시가 복원공사를 거치면서 2021년 3월 다시 문을 열었다. 나는 절차에 따라 사전예약을 하고 딜쿠샤를 만나러 갔다. 
 
 딜쿠샤 전시관?
 딜쿠샤 전시관?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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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해 있다. 나도 예전에 잠시 살았던 동네라 딜쿠샤의 발견이 남달랐다. '은행나무골'이란 뜻의 행촌동 지명도 450년 된 은행나무 노거수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테일러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은행나무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 집터에 남아있던 나무다. 450년 된 나무라고 하기엔 여전히 수세(나무가 자라나는 기세나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은행나무에 반했던 테일러 가족도, 딜쿠샤가 품었던 무수한 사람들도 이젠 그곳에 없다. 그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래된 집과 노거수는 그렇게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으로 그들 삶의 일부가 되고 각자의 우주를 이뤘을 것이다. 딜쿠샤 전시관에 비치된 테일러 집안의 유물과 흔적들이 그걸 확인 시켜 준다. 세월을 거슬러 흐르는 깊은 인연과 숨결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문득 어릴 적 살던 옛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멋을 즐기는 인왕산 사용법 

딜쿠샤가 있는 곳은 인왕산 자락과도 연결되는데,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인왕산은 조선 시대 600년간 한양 도읍을 지키던 한양도성이 지나는 길이다. 그 자체로 수도 서울의 흔적과 문화가 어린 현장이다. 딜쿠샤와 은행나무의 감흥을 이어 인왕산이 품고 있는 여행지를 찾아본다. 취향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왕산 사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전경.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전경.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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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여행이 유행하는 요즘은, 서울 근교로 등산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여럿이 모이자니 불안하고, 혼자서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등산이 야외활동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다. 물 한 병 챙겨 혼자서 다녀올 만한 산행 거리와 난이도, 편리한 접근성까지, 수도권 시민들에게 인왕산은 괜찮은 선택지다. 게다가 한양도성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까지 가는 코스는 역사의 깊은 숨결도 맛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매바위, 치마바위를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도 있다. 인왕산 정상에 서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시간 남짓 올라 이렇게 가슴 뻥 뚫리는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니 가성비 최고의 산이 아닐까 한다. 최근엔 SNS에 올리는 인증사진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20대 청년들의 산행성지로도 꼽히고 있다. 

인왕산 자락이 끝나는 청운동 부근에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학교의 공동 전신)에 다닐 때 종로구 누상동에 잠시 살았던 인연으로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윤동주의 시 세계와 빼어난 건축미가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주는 곳이다. 문학관 건물은 청운아파트 상수도 가압장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윤동주 시에 등장하는 '우물'을 공간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압장 물탱크 공간을 활용해 윤동주의 생애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전시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시인의 시 세계와 비극적 최후, 어둡고 답답한 공간이 응축되어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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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을 나와 옥상 쪽에 이어진 시인의 언덕에서 잠시 기분 전환을 해본다. <서시>가 적힌 시비가 세워져 있는 이 작고 아담한 언덕은 뒤로는 인왕산이, 앞에는 서울 시내가 펼쳐져 더없이 평화로운 곳이다.

윤동주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을 둘러본 다음은 인왕산자락길을 이어서 걷는 것도 괜찮다. 편안한 숲길 코스로 길도 여러 갈래라 원하는 만큼 골라 걸으면 된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출발해 인왕산 초소책방, 무무대를 거쳐 수성동계곡이나 서촌 골목으로 여행을 이어가면 나만의 쏠쏠한 여행코스가 완성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정지인 님은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6월호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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