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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정치 뉴스, 나와 상관없는 얘기 같진 않나요? 그러나 정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구의원에 도전했던 두 청년 정치인이 '우리 동네' 정치 소식을 전합니다.[편집자말]
 서울 창포원에서 바라본 도봉산역과 도봉산 전경
 서울 창포원에서 바라본 도봉산역과 도봉산 전경
ⓒ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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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740m 도봉산이 있는 인구 32만의 도시. 내가 22년째 살고 있는 도봉구이다. 동대문구에서 태어나 중랑구를 거쳐 지금 도봉구에 드디어 부모님 명의의 우리 집이 생겨 1999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잦은 이사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역이 모두 다르다. 대학교 다닐 때는 스쿨버스로 왕복 2시간을 통학했고, 첫 직장은 송파구 석촌에 있어서 매일 출퇴근으로 지하철에서 2시간을 보냈다.

이 시절 내게 '우리 동네'는 아침과 밤의 풍경만 보고 '잠만 자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기 바쁘고, 긴 지하철 여행에 지쳐서 돌아오는 공간.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리면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청량한 공기에 그제서야 숨이 트였다.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15분 남짓 되는 길이 나의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힐링 시간이었다.

매일이 비슷한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다가 2017년 3월 다양한 영역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청년 문제를 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해결보자고 미래당을 창당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정치는 싫어했던 내가 무려 창당 멤버가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다양한 청년 문제를 외치고, 시민들의 권리를 강조하고, 통일 한국의 비전을 이야기했지만, 가끔씩 먼 메아리 같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문득 이웃이 궁금해졌다

어느 날처럼 지하철 막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대부분 불이 꺼진 집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 지역 이슈는 뭐지?' '우리 동네 이웃들은 잘 지내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무심하면서 풀뿌리 정치를 말하는 것이 모순임을 느꼈다. 내 주변부터 변화하는 정치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 도봉구의원으로 당차게 출마했다(관련 기사: 어차피 떨어질 선거 왜 나와? 또 나가는 이유는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도봉구 가선거구(창1,4,5동)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8.22%(3,463표)를 득표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도봉구 가선거구(창1,4,5동)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8.22%(3,463표)를 득표했다
ⓒ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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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가 놓치고 있던 많은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당선 이상의 값진 것들을 얻었다. 전쟁 당시 아픔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시는, 경로당에서 만난 할아버지. 아이들 등굣길을 보내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학부모님들. 그리고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막차에서 내리는 직장인, 학생들. 그러면서 이곳이 잠만 자는 공간이었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잠을 청하기 바쁜 사람들에겐 '우리 동네'가 아닌 집이 있는 '베드타운'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치를 어떻게 닿게할 수 있을까. 크고 투박한 국회 정치의 틈을 꼼꼼하고 섬세하게 채워주고 싶었다. 어렵고 복잡한 여의도 정치를 우리 동네에 맞게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특히 세대에 맞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청소년, 20대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느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기초의회 정치의 필요성을 나도 출마를 통해 비로소 느낀 것이다.  

최근 도봉구가 내가 산 이래로 가장 뜨거운 '핫플'이 됐다. 1년 사이에 서울 자치구 중에서 평당 매매가격이 41.3%로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임대차법 이후 심해진 전세난 등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던 외곽 지역에 수요자들이 몰리는 이유도 있지만 도봉구의 대규모 개발 소식도 큰 요인이 됐다. 창동 일대에 '창동·상계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이 진행되는데 2만 석 규모의 서울 아레나공연장이 건립되고 창업·문화 복합단지, 로봇박물관, 서울사진미술관 등 문화예술과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신경제 중심지가 조성된다.

또 창동역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C노선 정차역이 될 예정이다. 이런 큰 개발 호재로 건립 중에 공사가 중단돼 11년 넘게  흉물로 방치됐던 창동민자역사도 공사가 재개됐다. 조선시대 양곡 창고가 있던 것에 유래해 '창동(倉洞)'이라 불리게된 창동은 이제 서울 문화예술의 창으로 거듭날 준비로 들썩이고 있다.
      
 서울아레나 조감도
 서울아레나 조감도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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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도봉구 이웃들은? 

아무도 겪어 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비대면생활이 일상이 돼 가고 있다. 코로나로 취업난이 길어지자 생활고에 시달려 청년 고독사가 크게 늘고 있고,  교육 현장도 화상수업으로 대체하면서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방영된 YTN '탐사보고서, 기록' 취재에 따르면 사교육 영향이 큰 중학교의 경우 강남구에서는 성적 최상위 등급 비율이 크게 늘었고, 고등학교의 경우 도봉구에서 성적 최하위 등급 비율이 폭증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역별 교육 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집값을 올려주고 있는 대규모 개발이 4년 뒤 창동을 새롭게 바꾸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삶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라는 질문도 스친다. 그리고 이 화려한 청사진 뒤에 사라질 풍경들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다시 아주 가까운 곳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틈을 채우고 있는 우리 동네 작은 변화와 활동을 담아보려고 한다.

최근 창동으로 독립을 준비 중이다. 부동산에 매물을 보러 갈 때마다 '2년 뒤, 4년 뒤에도 난 계속 우리 동네에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아주 가까운 곳의 틈을 채우면서 창동역 앞 토스트 가게들도, 포장마차촌도, 3대째 살고 있다는 어느 사장님도 계속 함께하고 있는 우리 동네 풍경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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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시작하고, 내 주변부터 변화하는 따뜻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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