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5 12:05최종 업데이트 21.06.15 12:05
  • 본문듣기

안녕하세요? 미국 대학은 봄 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을 맞았습니다. 저는 5월 초 한국에 와서 두 주 간의 격리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외출할 자유를 얻었지만, 사실 갈 곳은 별로 없습니다. 연구가 직업이니, 실내에서 읽고 쓰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까요. 그래도 이따금씩 정든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마냥 반갑고 행복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2년간 귀국하지 못했던 터라 더욱 그렇겠지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한국 방역 성공의 비결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강인규

 
지금은 기쁘게 지내고 있지만, 한국으로의 여정은 꽤나 험난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 모험은 커다란 반전을 맞았는데, 직접 체험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선진 시스템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과 더불어, 밤늦게까지 방역복을 입고 검사 샘플을 채취하는 일선의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넘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노고가 충분히 보상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별 다른 표현이 없어서 '방역 시스템'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이 용어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선에서 고단한 땀을 흘리는 실무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추상화하기 때문입니다. 방역 시스템은 사람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체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말만의 감사만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의 헌신적 노력에 걸맞은 경제적 대가와 사회적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역 담당자가 시민들의 건강을 지킬 의무가 있다면, 시민들은 방역 담당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지킬 의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이 방역을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겨울 만큼 많이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말 그런가' 의심하는 분도 있고, 잦은 칭찬에 무감각해진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백신접종이 더디게 시작됐다는 이유로 '방역 실패'를 말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가진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판단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언론이 한국의 방역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보도를 접하면서, 확진과 사망 통계를 통해 상황을 유추해보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잘 하나보다'라고 생각할 뿐, 그 이면에 어떤 구체적 노력이 있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제 한국 방문은 (14일 격리를 감수할 만큼) 값진 체험의 기회가 됐습니다.

한국으로의 험난한 여정

먼저 미국의 코로나 상황부터 살펴보지요. 현재 미국에서 백신을 일회 접종한 비율은 52% (한국은 20%),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43%에 이릅니다. 성공적인 백신보급으로 미국 내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급격히 줄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6월 11일 신규 확진자는 1만 6145명, 사망자는 421명입니다. 1월초까지 하루 확진자 40만 명, 사망자 4천 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성과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속도가 빨라지고는 있지만 접종을 완료한 비율은 5.1%로, 미국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556명, 사망자는 2명이었습니다. 미국 인구가 한국의 6.3배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의 현 상황은 한국에서 매일 확진자 2563명, 사망자 67명이 발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확진자 수는 한국의 4.6배, 사망자는 무려 34배에 이르는 것이지요.

미국이 접종자 비율은 현저히 높은데도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한국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가 높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다른 나라들도 상황이 미국과 비슷합니다. 한때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던 독일의 경우나, '방역 실패국'으로 불리다가 '접종 모범국'으로 부상한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나라도 한국보다 접종 완료 비율이 훨씬 높지만(독일 21.9%, 영국 42.4%),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는 인구비례로 봐도 훨씬 많으니까요.

이례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인만큼,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한국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이렇게 잘 통제할 수 있었을까요?
 

뉴욕의 한산한 지하철 모습입니다. 코로나로부터 심각한 타격을 입은 뉴욕시는 미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백신 접종율에도 불구하고 매우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6월 11일 현재, 인구 850만 명인 뉴욕시의 신규 확진자 수는 한국 전체보다 많은 686 명을 기록했습니다. ⓒ 강인규

 
잠시 미국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제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펜실베이니아 북부 도시에서 뉴욕의 케네디 공항까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저는 갈아탈 필요가 없는 기차를 선호하지만, 암트랙은 코로나로 승객이 줄자 주말 노선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일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장거리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차에 올라보니, 사회적 거리유지는커녕, 마스크마저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승객들이 즐비하더군요. 제 옆의 오른쪽 창가에 앉은 승객은 아예 마스크도 쓰지도 않은 채 연신 쿨룩거리며 기침을 해댔습니다.

버스가 출발했고, 저는 고개를 최대한 복도 쪽으로 꺾은 자세로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얼마 후 뒷좌석에서 폭소를 동반한 대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한 명은 스카프 같은 것으로 대충 입을 가린 상태였고, 다른 한 명은 마스크를 턱에 걸고 있었습니다. 옆으로 머리를 기울인 자세에서 다시 앞쪽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는 '3차원 포즈'를 생각해 봤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맡겼습니다.

기사가 방송으로 '마스크 제대로 쓰라'고 한 마디 해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긴, 제 옆에 앉은 승객은 마스크 없이 승차하면서도 기사에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출발 전에 백신접종을 끝냈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욱 두려운 여행이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서너 시간을 가다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대여섯 시간, 이렇게 밤새 버스를 탔습니다.

불안함 속에서도, 귀국을 앞둔 이방인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기차의 단축 운행으로 뉴욕시까지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유지와 마스크 착용 등의 기본적 방역수칙을 잘 지켜지 않은 까닭에, 미국은 코로나 확산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 강인규

 
한국에 도착하다

아시아나 승무원들이 유니폼 위에 방역 가운을 걸친 채 승객들을 맞았습니다. 저는 창가 좌석을 예약했는데, 옆 두 자리는 모두 비워둔 채 사람을 앉히지 않았습니다. 버스와 달리,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승객들만이 탑승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승무원과 승객 모두 완벽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방역에 성공한 이유를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깨달을 수 있었지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륙 후 기내식이 나오기도 전에, 승무원들이 돌며 입국 관련 서류를 나눠줬는데, 여기에는 '모바일 자가진단 앱'과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 설치 요령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외 입국자들은 도착 후 코로나 검사를 받고 두 주간 격리에 들어가는데,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체온과 증상 유무를 앱을 통해 보고해야 합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시에 따라 전화기에 앱을 설치하고 신상정보, 거주지 주소, 연락처를 입력했습니다. 체류 주소와 연락처가 확인되지 않으면 입국이 제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직원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입국 심사대로 갈 수 있었지요.
 

해외 입국자들은 격리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일반인과 접촉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입국자용 매표소까지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 강인규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해외 입국자들은 별도로 정해진 교통편으로 이동하게 돼 있었습니다.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은 버스로 광명시까지 가서, 그곳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탄 뒤에 지자체 보건소가 마련한 절차에 따라 격리장소까지 가야 합니다. 전용 통로, 전용 버스, 전용 매표소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과 접촉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케이티엑스 기차칸마저 따로 준비돼 있었습니다.

광명역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자, 제 목적지의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매우 정중하게 '기차역에서 내리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것을 타고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으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중앙 보건당국과 지자체간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력이 놀라웠습니다. 역에서 내리니 정말 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 제 옷과 가방에 소독약을 뿌리더군요(순간, 내가 외계 행성에서 온 듯한 코믹한 기분이 들어 마스크 뒤로 살짝 웃었습니다).

이어 버스는 보건소 인근 임시진료소로 향했습니다. 밤 8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의료진이 방역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정말 고맙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공공서비스를 받아보지 못한 저는 고개가 땅에 닿게 절을 했습니다. 버스는 각 사람을 격리장소까지 데려다 줬는데, 이것은 다른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입국자가 버스, 택시,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서 확산을 원초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요. '세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나왔습니다.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검체채취를 하고 있습니다. 공중보건과 같이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충분히 보상하는 것은 한국사회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인규

 
버스가 출발한 지 5분쯤 지나자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속한 지역의 보건소 직원으로, 제가 격리 중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소상히 알려줬습니다. 저를 담당한 이 분은 통화 도중 마른기침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통화량이 많아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전화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더군요.

'케이(K) 방역' 넘어 '케이 복지국가로'

이른바 '케이방역' 신화는 결코 과장도 아니고, 운이 좋아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도 아닙니다. 촘촘하게 짜인 시스템 위에서 담당자와 시민들 모두가 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던,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저는 격리 기간 내내 '케이 방역'의 성공을 다른 영역으로 확산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경제, 정치, 복지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나라들 다수가 심화하는 불평등, 고용불안, 저임금, 빈곤의 문제를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모든 나라가 길을 잃었을 때, 한국 고유의 방역 모델은 전 세계에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같은 방식으로 한국 사회가 세계화하는 부의 불평등, 임금격차, 독점적 플랫폼 기업으로 인한 노동환경 악화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를 희망합니다.

예컨대 한국은 플랫폼 노동에 관해 다른 나라들이 하지 못한 선진적 조치를 취했는데, 그것은 전 세계적 독과점 업체 우버를 규제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 특히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아둔한 지식인들이 '갈라파고스' 어쩌고 하며 허가를 종용했지만, 규제가 옳은 결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교통, 유통, 숙박업 등에 진출해 있는 플랫폼 기업들 대다수는 지속 가능한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변변한 수익모델도 없이 적자를 늘려가며 몸집을 키우다가 (이 과정에서 영세업체와 지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주가를 높여 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돈을 법니다.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플랫폼 배달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아주고, 인건비를 아끼려고 2인1조 원칙을 무시하는 업체에는 형사 처분 외에 인건비 수백 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해야 합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대우해줘서 망할 회사가 있다면, 그런 회사는 최대한 빨리 망하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최저임금 역시 파격적으로 인상해 임금격차를 줄이되, 그 부담이 영세업자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국가가 보조해야 합니다. 공중보건처럼 사회적 기여가 큰 노동자에 넉넉히 보상하는 것은, 그 분들이 더 즐겁게 일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그 분야에 일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낳습니다.

저는 격리 기간 중에 시사주간지로부터 '바이든 100일 성과'에 대한 기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바이러스 확산의 성공적 통제와 백신접종,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그를 위한 부유층 증세, 무상교육 확대, 그리고 연방 최저임금의 두 배 인상을 최대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에서 '취임 100일'은 가시적 성과보다 시민들에게 구체적 약속을 제시하는 상징적 기간일 뿐이며, 실제 성과는 '퇴임 100일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썼습니다.

저는 한국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00일 이상 남았습니다. 시민사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롤모델'이었던 나라가 찾지 못하고 있는 그 길을 말입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