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세트 게임 스코어 5-0으로 나달이 앞서나가자 역시 붉은 흙바닥 위에서는 나달의 질주를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3게임이나 따라붙었다. 라파엘 나달이 첫 세트를 6-3으로 가져갔지만 조코비치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대역전 드라마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노박 조코비치의 백핸드는 반짝반짝 빛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양팔을 넓게 벌리며 현역 최고의 실력자임을 맘껏 자랑했다.

세계 남자프로테니스 단식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한국 시각으로 12일(토) 오전 2시 10분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필립 샤틀리에 코트에서 벌어진 2021 롤랑 가로스(프랑스 오픈)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라이벌 라파엘 나달(스페인, 3위)을 4시간 11분만에 3-1(3-6, 6-3, 7-6, 6-2)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그리스, 5위)와 우승 트로피를 다투게 됐다.

19번째 그랜드 슬램 타이틀 노리는 '노박 조코비치'
 
 조코비치

조코비치 ⓒ AFP/연합뉴스

 
나달이 서브를 넣으며 시작한 준결승전은 첫 게임부터 9분 넘게 걸릴 정도로 양보 없는 랠리가 이어졌다. 듀스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은 물론 누구 하나가 앞서나가려고 하면 반대편 코트에 선 라이벌은 그보다 더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따라붙는 것이었다. 이 첫 고비를 넘은 라파엘 나달이 5-0까지 달아나며 첫 세트는 비교적 싱겁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6-3이라는 첫 세트 게임 스코어에 비해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1분이나 됐다. 그만큼 노박 조코비치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스트로크 싸움을 펼쳤다는 증거다. 클레이 코트의 최강자라 불리는 라파엘 나달의 수비 능력과 엄청난 회전수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빛났지만 베이스 라인 좌우 공간을 폭넓게 커버하며 그 어려운 공들을 모두 받아넘기는 조코비치의 수비력은 지켜보는 테니스 팬들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조코비치가 쓴 대역전 드라마의 시작은 두 번째 세트 두 번째 게임, 나달의 서브 게임부터였다. 조코비치의 수비력 앞에 흔들린 나달이 좀처럼 보기 힘든 언포스드 에러를 여러 차례 더해나갔다. 이 준결승 네 세트를 통틀어 라파엘 나달이 기록한 언포스드 에러가 55개나 찍혔다는 것은 뜻밖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조코비치의 그것보다 18개나 많은 것이었으니 결국 이 실수 차이가 결승 진출 주인공을 갈라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진 세 번째 세트는 타이 브레이크까지 갔고 노박 조코비치는 네트 앞으로 달려나오며 재치있는 포핸드를 찔러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트 스코어를 2-1로 뒤집고 역전 드라마의 절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세트에서 노박 조코비치는 자신의 백핸드 스트로크 기술을 다양하게 자랑하며 라파엘 나달의 걸음을 여러 차례 멈추게 했다.

여섯 번째 게임 노박 조코비치의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은 물론 일곱 번째 게임 네트를 살짝 넘어가면서 뚝 떨어지는 백핸드 앵글샷은 단연 압권이었다. 조코비치 못지 않게 클레이 코트에서 엄청난 코트 커버 능력을 자랑하던 라파엘 나달도 조코비치의 이 백핸드 기술 앞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듯 발을 멈춰야 했다.

이 대회 13회 우승 기록을 뛰어넘어 5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이루고 남자 테니스 빅 3(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중 가장 많은 그랜드 슬램 21회 우승 기록을 찍으며 한 발짝 앞서나갈 것으로 기대했던 라파엘 나달은 이로써 롤랑 가로스 100승 3패의 기록을 남기고 필립 샤틀리에 코트를 먼저 떠났다. 저 3패 중 두 번의 패배를 바로 이곳에서 노박 조코비치에 당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 노박 조코비치는 일요일 밤 자신보다 11살 어린 스테파노스 치치파스와 대회 마지막 게임을 펼치게 된다. 여기서 조코비치가 이길 경우 그랜드 슬램 우승 횟수(로저 페더러 20회, 라파엘 나달 20회, 노박 조코비치 19회)가 정말로 근접해지기 때문에 이어지는 윔블던에 더 많은 테니스 팬들의 이목이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2021 롤랑 가로스 남자단식 준결승 결과
(6월 12일 오전 2시 10분, 필립 샤틀리에 코트-파리)

노박 조코비치 3-1(3-6, 6-3, 7{7tb4}6, 6-2) 라파엘 나달

주요 기록 비교
서브 에이스 : 노박 조코비치 6개, 라파엘 나달 6개
더블 폴트 : 노박 조코비치 3개, 라파엘 나달 8개
첫 서브 성공률 : 노박 조코비치 64%(85/133), 라파엘 나달 65%(86/133)
첫 서브 성공시 득점률 : 노박 조코비치 65%(55/85), 라파엘 나달 59%(51/86)
세컨드 서브 성공시 득점률 : 노박 조코비치 50%(24/48), 라파엘 나달 40%(19/47)
네트 포인트 성공률 : 노박 조코비치 65%(20/31), 라파엘 나달 73%(11/15)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률 : 노박 조코비치 36%(8/22), 라파엘 나달 38%(6/16)
리시빙 포인트 성공률 : 노박 조코비치 47%(63/133), 라파엘 나달 41%(54/133)
위너 : 노박 조코비치 50개, 라파엘 나달 48개
언포스드 에러 : 노박 조코비치 37개, 라파엘 나달 55
서브 최고 속도 : 노박 조코비치 199km/h, 라파엘 나달 202km/h
첫 서브 평균 속도 : 노박 조코비치 185km/h, 라파엘 나달 180km/h
세컨드 서브 평균 속도 : 노박 조코비치 133km/h, 라파엘 나달 146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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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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