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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맡았다. 단 2년을 제외하고 우리 반에는 스무 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 보통 스물넷과 스물다섯. 나는 그 숫자를 당연하게 여겼다. 특히 신규 교사 무렵에는 내가 학교에 다녔던 1990년대 초중반과 비교하여 보다 나은 환경이라고 안심했다. 이만하면 됐지, 뭐. 하지만 학생이 아닌 교사가 되어보니 과거의 콩나물시루 학급이 얼마나 비교육적인 환경이었는지 절감했다.

과밀학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과거보다 개선된 건 맞지만, 궁극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는 더 줄어야 한다. 어느덧 그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 수가 적으면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동일한 양의 자원이라면 학급의 학생 수가 적을수록 교육의 효과는 높아진다. 예컨대 스물다섯 명의 수행평가를 피드백하는 것과 열다섯 명의 수행평가를 피드백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생당 소통, 피드백 빈도는 높아진다. 단체 교습보다 1:1 피아노 레슨이 좋은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무작정 학급당 학생 수를 10명으로 줄일 수는 없다. 우선 교원 수급이 당장 불가능하고, 학교 시설도 제한이 있으며, 재정도 충분치 않다. 내가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학생 수는 스무 명이다. 네 명씩 다섯 모둠이 나오는 규모. 이상적으로는 열여섯이 더 낫지만, 수도권과 대도시에 있는 수많은 과밀학급 수를 계산하면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교육 질이 높아진다 
 
 코로나19 발생 전 열 아홉 명이 지내던 교실
 코로나19 발생 전 열 아홉 명이 지내던 교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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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간 과밀학급이 아닌 학급의 담임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전입과 전출이 몇 번 있기는 하였으나 한 반에 열다섯, 열여섯 명 정도를 유지했다. 나는 학급 당 학생 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2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업 방식의 다변화다. 

대규모 학급에서는 실행하기 힘든 협력학습, 문제기반 학습 등 다양한 수업 방식을 과감히 도입했다. 아이들이 많은 경우에도 시도해보긴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늘 아쉬웠다. 가령 모둠 학습 결과를 공유하고 질의응답을 하려 해도 문제다. 

4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모든 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자연히 말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열여섯은 다르다. 확실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최대 스물여덟 명을 맡아 시간에 허덕일 때 입에 붙어있던 말이 있다. '와, 지친다. 한 스무 명만 돼도 할 만할 것 같은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사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안 그래도 편해 보이는 교사들이 더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시는 분도 있다. 특히 과거에 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납득을 못 하신다. 한 반에 육십 명도 넘게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그래도 배울 거 배우고 다들 졸업 잘했다. 배가 부르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자주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러나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의향이 전혀 없다. 후진국 대열에 끼어있던 1960, 1970년대 대한민국과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춘 2021년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그럼 학교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강의식 수업 방법과 체벌, 엄한 규율에 기반한 군대식 학급 살이를 오늘날에도 적용하려는 시선은 곤란하다. 

1m 이상 간격 유지를 지킬 수 없는 이유
  
 최대한 떨어져 앉지만 앞뒤 간격은 역부족이다
 최대한 떨어져 앉지만 앞뒤 간격은 역부족이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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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할 게 있는데, 우리 반은 방역 수칙 중 중요한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20년부터 쭉 우리 교실은 66.116m2(20평) 남짓이다. 그래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1m 이상 띄워 앉으라는 지침을 수행할 수 없다. 아무리 짐을 줄이고 사물함을 벽에 바짝 붙여봐도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간격을 유지할 뿐이다. 상당수의 과밀 학급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조심하며 지내야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면서. 
  
2020년에 내가 유심히 읽은 기사가 있다. 코로나의 공포가 극에 치달을 무렵, 수도권의 많은 학교가 1/3 등교를 했다. 같은 시기 서울과학고와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등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 이하인 일부 학교는 전교생 정상 등교를 했다는 기사였다. 해당 학교의 학생 1인당 교실 내 사용면적이 4.298m2(1.3평)으로 일반 학교와 최대 2배 이상 차이가 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소 충격을 받았다. 같은 재난 상황 속에서도 여건에 따라 학생들은 다른 교육을 받은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강원도 삼척시의 사정만 봐도 그렇다. 삼척시는 두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초등학교가 전면 등교 중이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이다. 

전교생이 60명이 안 되는 학교도 많고, 통폐합을 고려 중인 곳도 있다. 심한 곳은 여러 학년이 한 학급에 소속된 복식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반면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도심 학교는 학급 당 학생 수가 스무 명을 훌쩍 넘는다. 그래서 격주 등교를 했다. 

학급 당 학생 수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학급 당 학생 수는 실질적인 교육 여건을 반영하는 지표다. 저출산으로 전체적인 학생 수가 줄어도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급의 학생 수가 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법으로 학급 당 학생 수 상한을 묶어두고자 하는 이유다. 

학생 수는 교육 여건 반영하는 지표

여기서 속 사정을 모르시는 분들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소는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문제다. 2020년의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4.2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굳이 원론적인 문제를 법까지 건드려가며 고치려 드나. 

얼핏 보면 합당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수치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교육기본통계'에는 2020년 기준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4.2명이 맞다. 상당히 낮은 수치로 보인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통계가 하나 더 있다. 학급당 학생 수는 21.8명이다. 같은 해에 집계된 수치지만 7명이 넘게 차이 난다. 어째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 

원인은 교원의 정의 방식에 있다. 교육기본통계상 교사의 범위에는 휴직 및 기간제가 모두 포함된다. 육아 휴직에 들어간 교사를 대체하기 위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면 이를 교사 2명으로 계산한다. 더 큰 구멍도 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계산할 때 교장과 교감, 보건, 영양, 사서 교사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계산 방식을 도입해도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자연스러운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원 수 감축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의 편차가 크다. 학급당 학생 수 상한을 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학령인구가 감소한다고 한들 대도시의 과밀 학급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9월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제한하는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나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형태의 전염병이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학급에 소속된 학생 수가 문제시되어 어떤 학교는 문이 열려 있고, 어떤 학교는 못 가는 상황이 옳은 걸까. 학급당 학생 수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다. 코로나로부터 배운 교훈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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