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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처벌 불가', '촉법소년 폐지 여론 확산', '촉법소년은 구속을 면했다', '촉법소년 제외 가해자 전원 구속', '미성년자 범죄 부추기는 촉법소년의 덫'

최근 포털에 올라온 촉법소년 관련 뉴스 제목들의 일부이다. 2017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촉법소년들의 잔인한 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해서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친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나 소년법 폐지 등 엄벌주의는 범죄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낙인효과로 인해 오히려 재범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진단한다. 범죄에 대한 응보와 사회방위를 위해 소년법을 개정하자는 엄벌주의와, 보호처분을 통한 가해 소년의 재사회화 과정 및 피해자 회복을 위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회복적 사법주의가 팽팽히 맞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촉법소년 연령 조정 등에 관한 소년법 개정안 중 지금까지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소년법에 따른 재사회화 과정의 내실화 문제도 심도있게 논의된 적 없고, 소년사건의 심리에 피해자가 참여해 진심 어린 사과를 받도록 배려하고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자명하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촉법소년' 뉴스는 때가 되면 포털에 올라온다. 팍팍한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반대로 가는 소년범들에게 분노를 터트린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분노를 부추긴다. 사건은 계속 터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대안 제시도, 사회적 성찰에서 나오는 소년범죄에 대한 기성세대와 사회의 책임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촉법소년 뉴스는 인터넷 댓글창에서 대중이 분노를 터트리는 정당한 방편으로 소비될 뿐이다.

"구치소가 너무 편해요"
 
위탁소년들이 직접 리모델링한 소년분류심사원 교실
 위탁소년들이 직접 리모델링한 소년분류심사원 교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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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분노를 다스리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연령을 한두살 낮추자는 것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도 형사처벌해서 교도소로 보내자는 것이다. 또한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춰서 한 명이라도 더 형사처벌하자는 엄벌주의는 소년사법의 형사사법화를 초래하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전반적인 처벌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면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돼야 할 소년들 상당수가 형사재판을 받게 된다.

현재 형사재판을 받는 소년범들은 구치소에 성인들과 함께 수용된다. 이러한 수용환경은 범죄 학습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형사법정에 서는 소년범이 늘어나면,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소년구치소와 소년교도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 하지만 수용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님비현상과 집값 문제 때문에 구치소와 교도소 증설은 추진 자체가 힘들다. 

그렇다면 기존의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소년범들을 성인범들과 같은 공간에 수용해야 할 것인데, 이는 소년범의 교화와 재사회화를 포기한다는 전제에서 실행될 수밖에 없다. 구치소 생활을 해본 소년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너무 편해요. 방에서 성인범들이 영치금으로 산 햄이나 닭고기 같은 간식 실컷 먹고, 하루종일 TV 시청하고, 잡담하고, 운동도 시켜주고."

오히려 재범률을 높인 엄벌주의

1990년대 미국은 '형사 이송 제도'를 확대했다. 강력 범죄를 저질렀거나 재범 위험성이 높은 소년범은 소년 법원이 아닌 형사 법원으로 보냈다. 나이가 어려도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처벌하는 제도였다. 이를 통해 수많은 소년범들이 형사법원을 거쳐 중범죄자가 됐고, 성인교도소에 수감되는 소년범의 수도 증가했다.

그러나 소년범의 범죄감소 및 재범억제 효과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도 도입 후 범죄를 저지른 19세 미만 소년들의 재범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데 걸린 시간도 짧아졌다. 교도소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전과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범죄 학습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2004년 형사 처벌 기준 연령을 높이는 등 형사 이송 제도를 축소했다. 덴마크에서도 형사 처벌 기준 연령을 15세에서 14세로 낮췄다가 재범률 증가 등 부작용으로 상향 조정한 사례가 있다.

반대로 범죄에 대한 응보가 아닌 갱생과 재사회화에 초점을 맞춘 노르웨이의 개방형 교도소는 호텔급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강력범들이 햇살이 쏟아지는 쾌적한 원룸에 거주하면서 악기 연주 등의 취미 활동까지 한다. 교도소는 도서관, 식료품점, 교회 등의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노르웨이는 중범죄자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투자해서 재사회화의 기회를 부여했고, 실제로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노르웨이 개방형 교도소의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교도소 출소자의 재범률은 80% 정도라고 한다.

더군다나 소년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으로 소년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재사회화하는 교육기관이다. 노르웨이 교도소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인권친화적인 환경의 중요성

지난 기사(관련 기사 : 죄질 나쁜 소년범? 이들을 교화하는 마지노선이 있다 http://omn.kr/1t9j1)에서 소년범을 교화하는 마지노선이 소년원 학교라고 했다.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소년원 학교의 역할과 기능은 교육을 통한 재사회화가 아니라, 소년범을 일시적으로 사회와 격리하는 수용시설에 머물게 된다. 이는 소년범이 성인범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교정시설 유지를 위한 막대한 비용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소년원에서 생활관 호실과 학과장 교실의 시설과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소년원은 가정과 학교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니, 소년들이 생활하는 방은 집 같아야 하고, 교실은 학교 같아야 한다.
 
몇 년 전 필자가 소년원에서 담임을 맡았을때 우리 반 학생들이 생활하던 소년원 호실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소년원에서 담임을 맡았을때 우리 반 학생들이 생활하던 소년원 호실이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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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년원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호실을 리모델링했다. 인권친화적인 수용환경을 조성해서 소년들의 정서를 순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제는 '동심'으로 정했다. 그래서 '헬로키티'를 주요 테마로 해서 벽지를 붙이고 인형과 가구를 모두 헬로키티로 배치했다. 아이들이 색종이로 접은 장미꽃도 곳곳에 장식했다. 공기정화 식물을 하나씩 키우도록 했고, 헬로키티 카세트도 들여놓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주말에 하루 종일 TV 앞에 붙어있던 소년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몸에 용문신을 새긴 덩치 큰 소년이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고참문화나 수용악습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사진에 있는 소년분류심사원의 교실과 상담실도 같은 목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리모델링했다. 일종의 실험적인 시도라 사비로 하였으니, 국민 세금을 축냈다는 비난은 사양하겠다.

소년범이 성인범이 되지 않는 길

소년원 재원생의 약 30%가 정신질환으로 약을 먹는다. 수용환경은 적게는 4명, 많게는 10명 이상이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한다. 결손가정과 가정의 해체, 학교 부적응으로 거리를 떠돌던 소년들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진 소년들에게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책상과 침대가 있는 1인 1실의 인권친화적인 공간을 제공하자. 소년들은 책을 읽고 피해자에게 사과의 편지를 쓸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비행을 반성하며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살 것인지 꿈과 계획을 노트에 옮겨 적을 것이다.

보호소년들이 소년원에서 범죄를 학습하고 비행친구를 새로 사귀어서 사회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성인범이 되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 교정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인간처럼 대하면 그들은 인간이 될 것이다."

태그:#소년원, #소년법, #촉법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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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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