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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영평초등학교 '너나들이 광장'에 마흔세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아래부터 꼬평)이 문을 열었다. 서귀포 안덕면 덕수리에 있는 덕수초등학교에 이어 제주도 초등학교에 두 번째로 들어서는 꼬평이다.

영평초 꼬평은 남다르다. 꼬평에서 영평초로 보낸 평화 책 대부분은 꼬평 박삼선 고문이 기증했다. 아울러 올해 4학년 생각거리 '평화'에 맞춰 6·25가 있는 호국보훈의 달에 문을 열었으며, 제주 덕수초에 꼬평을 연 양정숙 교장선생님이 영평초에도 꼬평을 들어서게 했기 때문이다. 양정숙 선생은 초등학교 두 곳에 꼬평 문을 연 첫 교장 선생님이다.
  
꼬마평화도서관 개관 / 오른쪽 위 양정숙 교장, 왼쪽 위 김은희 교감 아래 오른쪽부터 학생회장 장채민과 부회장 강휘민과 강수연
▲ 꼬마평화도서관 개관 / 오른쪽 위 양정숙 교장, 왼쪽 위 김은희 교감 아래 오른쪽부터 학생회장 장채민과 부회장 강휘민과 강수연
ⓒ 영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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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일에 제주도가 코로나19 단계를 2단계로 올렸다. 그 바람에 아쉽게도 문 여는 잔치를 양정숙 교장 선생님과 김은희 교감 선생님 그리고 학생회장 장채민과 부회장 강수연, 강휘민 다섯 사람이 꼬평 이름패를 걸며 조촐하게 치렀다.

꼬평을 여는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평화 그림책 연주는 문을 연 다음 날인 6월 9일, 그동안 평화 이야기를 나눠온 4학년 네 개 반에서 줌으로 펼쳤다. 그림책 <솥 굽는 마을>을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연주하여 평화를 새겼다.

<솥 굽는 마을>은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던 제주도 설화에 대대로 솥을 빚어 구우며 살아온 덕수리 마을 살림을 곁들여 덕수초 어머니들이 빚은 그림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은 어머니들과 식구들이 둘러앉아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빚은 자수여서 더욱 뜻깊다.
  
솥 굽는 마을 / 덕수초등학교 어머니들이 빚은 평화 그림책
▲ 솥 굽는 마을 / 덕수초등학교 어머니들이 빚은 평화 그림책
ⓒ 스튜디오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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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배를 곯아 쓰러진 섬 아이를, 실수로 하늘 할망을 화나게 하고 떠나온 하늘 아이가 품에서 꺼낸 조그만 솥으로 밥을 지어 먹인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린 섬 아이는 이와 같은 솥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하늘 아이는 모두에게 먹일 수 있을 만큼 큰 솥을 빚으려면 가장 빛나는 흙과 가장 무거운 물을 찾아야 한다며 섬 아이 손잡고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솥 굽는 마을>은 '식구'란 우리말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엔 한집안 식구를 가족이라고 하지만 가족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들고 들어온 낱말로 피붙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식구는 피를 나눴던 그렇지 않던 내가 먹을 밥을 내어줄 만큼 아끼는 사이를 일컫는다.

예전에는 웬만큼 사는 집에는 사랑방이 있었다. 사랑방은 손님을 맞는 방으로 사랑방 손님에게는 잠자리와 끼니를 내어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술상도 봐주었다. 피를 나누기는커녕 태어나 처음 보는 남까지 넉넉하니 품는 곳이 사랑방이다. 사랑방은 다문화,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울리면서 서로 물들고 물들이는 마당으로, 사랑방에 든 이들은 저마다 뜻을 내놓고 얘기 바람을 일으킨다.
  
평화는 이렇게 사랑방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하하 호호 하며 서로 살리는 사이에 깃들어
▲ 평화는 이렇게 사랑방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하하 호호 하며 서로 살리는 사이에 깃들어
ⓒ 로라네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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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뽑은 올해 상반기 평화 책에는 <누가 진짜 엄마야?>란 그림책이 있다. "누가 진짜 엄마야?"는 여성과 여성이 만나 빚은 가정에 사는 아이에게 놀러 온 다른 집 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어울려 서로 살리는 사이인 식구에 담긴 참뜻을 바로 헤아리면 장애가 있든 없든 정체성이 같든 다르든 가리지 않고 어울릴 수 있다. <솥 굽는 마을>이 품은 평화는 '식구 이루기'이다.

연주를 마친 아이들에게 평화를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빛깔, 사랑, 나무, 무지개, 지구, 태양계, 비빔밥, 집밥, 밥심, 먹는 것, 기쁨, 여유, 안전, 친구, 동생, 침대, 이불, 멍때림, 조용한 지금 따위가 줄을 잇는다.

빛깔이나 무지개를 얘기하는 아이는 여러 빛깔이 어울리니 평화롭다고 하고, 비빔밥이라는 아이도 두루 섞여 맛을 이루어 그렇다고 한다. 아름드리나무도 떡잎부터 생겼듯이 평화는 그렇게 싹을 틔우고 키워가야 한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행성들이 해를 따라 돌듯이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 잡혀야 평화로울 수 있다는 아이도 있고, 서로 살리는 것이라고 말한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평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이 늘보는 '나'에 'ㅁ'을 받친 '남'은 나를 받쳐주고 아우르는 이라고 받아들여야 평화로워질 수 있다며 입을 연다.

입고 있는 옷이며 쓰고 있는 안경, 아침에 먹은 밥, 교과서와 공책, 우리가 살아가며 쓰는 것들 대부분 보도듣도 못한 남이 만들었다. 또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나무와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사람은 서로 남이다. 교실에서 우리를 아우르고 받쳐주는 선생님, 서로 북돋우며 노는 동무, 모두 나를 살리는 남으로, 나 또한 다른 이에게는 받쳐주고 아울러 살리는 남이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고 받아들이는 그 자리에 어울림이 깃들며 어울려 살림이 곧 평화다. 삶과 죽음이 맞서듯이 '살림'은 죽임에 맞서는 말로 어느 말보다 뜻이 깊다.

평화를 엉뚱하게 말할수록 좋다고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도 나왔다. '청소기' 또는 '전쟁'이나 '승리'가 평화라고 한 아이도 있다. '평화는 청소기'라고 한 아이는 먼지가 쌓이면 전쟁터 같은데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깨끗해지기 때문이란다. 전쟁이나 승리를 떠올린 아이들은 안보를 지켜야 평화가 온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싸워서 이기면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진 쪽은 어떠할까? 또 부모 형제를 잃고 이긴 전쟁은 평화를 가져다줄까?' 싶은 늘보는 군대를 없애고 영세중립국이 되어 평화로워진 코스타리카 이야기를 꺼낸다.

군대를 없애고 그 돈으로 학교를 세워 누구나 고르게 배울 수 있도록 하고, 병원도 세워 아픈 사람을 보듬은 나라 코스타리카에는 철조망이 없는 교도소가 있다. 사람끼리만이 아닌 자연하고도 평화로우려고 30%가 넘는 나라 땅을 숲으로 만들었다. 동물을 학대하지 않으려고 2025년까지 동물원도 없애기로 했다. 세계 평화대학이 있고 평화기구가 남달리 많은 코스타리카 아이들은 평화를 인권·민주주의·생태를 두루 아울러서 말한다.
  
평화는 OO이다 / '송곳니 작은'이란 별명을 쓰는 아라는 "한국인은 밥심"이라면서 '평화는 밥'이라고 했다
▲ 평화는 OO이다 / "송곳니 작은"이란 별명을 쓰는 아라는 "한국인은 밥심"이라면서 "평화는 밥"이라고 했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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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에서 저토록 여러 갈래로 나오는 만큼 평화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평화, 말하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영 가져오기 힘들까? 그렇지는 않다. 동생은 아무리 밉게 굴어도 사랑스럽기에 '평화는 동생'이라는 아이가 한 말에 열쇠가 있다.

평화,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이 가만가만 살살 다가서서 깊이 지피지기, 너를 깊이 알고 나를 깊이 알다 보면 꼬평을 품은 영평초등학교 '너나들이 광장'처럼 너와 나를 가로막는 담을 허물어 서로를 마음속에 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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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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