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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가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 각하(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한 강제징용노동자 가족의 글을 전합니다. 리화수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장의 부친은 18세였던 1940년 일본으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판결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782만여 명. 19일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대일항쟁기 시기 끌려간 강제동원 조선인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
 782만여 명.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대일항쟁기 시기 끌려간 강제동원 조선인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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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임술생인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올해 100세 '온수'가 되십니다. 가난한 깡촌에서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위로는 한학자이던 형과 아래로는 글자께나 익힌 남동생 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1991년 그 추웠던 한겨울에 돌아가셨고, 지금은 하늘에 계신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온몸에 난 징용의 흔적들로 괴로워하셨고, 알 수 없는 병증으로 평생을 고통에 사셨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병증이 더욱 심해 옷을 입지 못하고 지내셔야 했던 고통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이 못난 아들은 지금도 너무나 또렷하게 당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온 육신에 깊이 새겨진 아버지의 통한을 오늘도 풀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신께서 살아계셔서 오늘 이 꼴을 보셨으면, "야 이놈, 왜놈 앞잡이 버러지보다 못한 놈아" 하고 지게 작대기로 그놈 대갈통을 내려쳤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왜놈에게 조선인은 강제징용 등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었습니다. 초반에는 모집이라는 형태로 눈속임하여 토목공사장이나 광산 등 아주 험한 곳에서 일하게 했고, 1937년 중일전쟁부터는 아예 대놓고 조선인을 징용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했습니다. 1939년 10월부터는 조선과 타이완 등에서 '국민징용령'을 실시해 본격적인 조선인 노동력 착취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징용영장은 일본에서는 후생대신, 조선에서는 조선총독이 발급했고, 이를 받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지정된 곳에서 강제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장을 받고 응하지 않는 사람은 국가총동원령을 근거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보수·급여 등도 일본의 인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일제는 1943년 10월 '생산증강노무강화요강'에 의해 근로동원을 전면 동원체제로 바꾸고, 공장 사업장의 작업에 충당하기 위한 도내 전체 호수의 2할을 동원목표로 종래의 근로보국대를 확대했습니다. 학교근로보국대를 조직해 학생들까지도 전시 근로동원체제에 편입시켰습니다. 1944년 8월에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12~40세의 미혼) 우리 여성을 강제 동원해 일본과 한국 내 군수공장에 또는 행방도 알리지 않은 채 남방이나 중국전선으로 끌고 갔습니다.

 
 9일 오후 4시 30분 기준 23만 명을 넘어선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 청와대 국민청원'
 9일 오후 4시 30분 기준 2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10일 오전에는 청원 동의 숫자가 26만 명을 넘어섰다.
ⓒ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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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조선인이 일본 등 각지의 탄광·금속광산·수력발전·철도·도로·군수공장은 물론 군사기지 공사, 포로감독의 군요원, '위안부' 등으로 연행돼 생사거처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지옥보다 못한 가혹한 감시 밑에서 혹사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수는 780만 명이 넘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인 총인구 2636만 명의 30%에 달합니다. 제 아버지도 그 중에 한 명입니다.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기까지 조선인을 가혹하게 침탈했던 일본에 의해 노예보다 못한 처절한 생활에 시달렸던 과거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잊어선 안 됩니다. 세월이 간다고 망각할 수 없는, 너무나 참혹한 수탈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징용 출두 명령서'와 '징용 사망 통지서'가 독립기념관에 저렇게 보존되어 있는데 이것이 일제 수탈의 증명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지난 시간 일본제철(신일철주금), 미쓰비시, 닛산화학 등 일제시대 국가동원의 수혜자인 일본 대기업을 상대로 고령의 피해 어르신들의 소송이 진행됐고, 승소했습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판관 7 대 6 의견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제철이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는 판결도 확정했습니다.

그 근거는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개인청구권이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지난 7일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단 1분 만에 각하·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이 판결을 한 김양호 부장판사는 판사짓을 하기 전에 우리의 뿌리인 독립기념관부터 가서 수탈과 일제 만행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판사 이전에 인간부터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양호 부장판사는 비본질적·비법률적 근거를 들어 법관으로서의 독립과 양심도 없는 반인륜적인 판단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민사소송 원고의 권리를 인정하면 '대한민국의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말로, 역사 앞에 부끄러운 판결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소송이었는데 '일본 덕에 우리가 먹고 살았다' '미국이 싫어한다' 같은 논리와 하등 다르지 않은 미친 판결을 내렸습니다. (민사합의34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판시. - 편집자 주)

식민지배,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국내 해석이라는 일본 우익의 망발을 우리 재판부가 하고 있다는 점에 분노합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는 것에 통곡합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오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습니다.

정말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탄하고 통탄합니다. 이번 판결로,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우리 모두는 역사의 부끄러운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가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 각하(패소)‘를 결정하자 후폭풍이 일고 있다. 9일 부산 동구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김 부장판사의 탄핵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가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 각하(패소)‘를 결정하자 리화수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장이 9일 부산 동구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리 본부장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시기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였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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