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계는 최근 레전드 유상철을 잃으며 큰 슬픔에 잠겼다.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지난 7일 별세하면서 국내외적으로 각계 각지에서 진심 어린 애도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가치를 기억하고 아름답게 떠나보내는데만 집중해야 할 시점에, 일각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마저도 왜곡하여 악플의 배설구로 삼으려는 빗나간 행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유상철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직후 축구계를 비롯하여 각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고인의 빈소를 방문하여 조문을 하거나 SNS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조의를 표했다. 이천수-황선홍-안정환-최용수-홍명보-김병지 등 유상철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를 함께했던 주역들도 대부분 빈소를 찾았다. 하지만 개인사정상 부득이하게 조문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이 이를 꼬투리 잡아 악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악플러들에게 유난히 집중적인 타깃이 된 인물은 바로 박지성이었다. 유상철 감독과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팀동료이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유명세와 상징성이 큰 박지성의 모습이 빈소에서 보이지 않자 일부 누리꾼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도를 지나친 악플러들은 박지성의 아내 김민지 전 아나운서의 개인 유튜브에까지 몰려가 고인에 대한 예의와 의리 등을 거론하며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박지성·김민지 부부는 현재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프로축구 전북현대의 어드바이저로 위촉된 박지성은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박지성이 귀국한다고 해도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지침상 해외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의무 때문에 당장 빈소를 조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부 악플러들은 추모 메시지조차 없다는 이유로 박지성 부부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기도 했다. 언론 노출을 즐기지 않는 박지성은 별도의 공개적인 개인 SNS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직접 나서서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아나운서는 9일 개인 유튜브 채널에 장문의 글을 게재하며 "유감이지만 저는 인증을 위한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남편이 어떤 활동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법적 도의적 윤리적 문제가 없는 개인의 영역을 누군지도 모르는 그분들에게 보고해야 할 이유가 저에게나 남편에게 도무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슬픔을 증명하라? 조의를 기사로 내서 인증하라? 조화의 인증샷을 찍으라고?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계신건가. 제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시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전 아나운서의 입장문이 올라오고 관련 내용들이 여러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현재 박지성을 비방하던 댓글들은 상당수 삭제된 상태다. 많은 누리꾼들도 동참하여 악플러들에게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익명의 악플들이 휩쓸고 지난 흔적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고인에 대한 추모를 빙자하여 조문을 인증하고 평가받고 강요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믿는 이 광기어린 착각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이 진심으로 망자를 위하는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쩌면 대상이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의  상식을 벗어난 요구와 비난까지 일일이 해명하거나 사과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가장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오랜 동료를 떠나보내는 것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많은 축구인들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겉으로는 선의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은 그저 혐오에 가깝다. 고인을 향한 진심 어린 추모가 핵심이 되어야 할 시간에 제3자가 조문객이 누가 오고, 왜 안왔는지 따진다거나, 그 속사정까지 멋대로 재단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불순하고 주객이 전도된 장면이다.

물론 팬들의 열정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축구와 축구인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유명인들의 삶과 생각, 인간관계 등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까지 대중들이 함부로 재단하거나 침해할 권리까지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추모와 애도는 저마다의 진심에 달린 것일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지성을 비난하기 위하여 고인에 대한 추모를 핑계로 앞세우던 수많은 악플러들은, 과연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먼저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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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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