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로 기억한다. 정우성‧김태희 주연의 영화 <중천> 언론시사가 열린 한 극장에 특정 매체, 특정 기자의 출입을 금한다는 공지가 나붙었다. 영화계가 특정 기자의 언론시사 참석을 막고 나선 것은 말 그대로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 매체는 당시만 해도 신생이던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였고, 특정 기자는 현재 유튜버로 활동 중인 김용호씨였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만 내는 현실이 문제다. 나야말로 투철한 기자다. 그분의 주옥같은 말씀들이다. 모든 매체와 배우 인터뷰를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개별 인터뷰 요청을 들어주지 못할 경우 그분의 기자정신이 발동한다. 한번 조지면 끝까지 조진다면서. 온라인에도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후발 인터넷 뉴스 업체 중 몇몇은 그분의 기자정신에 감화받아 준비하라고 선전포고하는 데까지 있다."

2007년 초 영화주간지 <씨네21>(585호)이 전한 '그분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그래서 올해가 끔찍하다는 마케터 C씨(<[이주의 영화인] 찌라시로 불릴 가치도 없는 기사라...> 기사 중)의 일침이다.

"나야말로 투철한 기자"라는 자부심(?)이 눈에 콕 들어와 박힌다. 해당 기사에서 또 다른 영화제작자는 김씨의 활약(?)을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괴물이 태어난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건은 이랬다.

15년 전
 
당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계 9개 단체는 <뉴시스는 진정 언론인가?>란 공개서한을 통해 영화 <중천>과 배우 김태희와 관련한 김씨의 기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사과 및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김씨는 <중천>과 김태희의 연기력을 혹평하는 공개 기사를 수차례에 걸쳐 출고했다. 보다 못한 영화계가 김씨와 해당 매체에 공개서한을 보내는 동시에 언론시사 참석을 배제했다. 또 향후 단체들이 내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해당 매체의 취재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영화인들은 이번 공개항의가 단지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악의적인 보도의 지속성을 감안할 때, 이는 선정적인 기사를 내세워 자사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뉴시스>의 치졸한 보도행태에 기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인들은 김용호 기자가 배우 인터뷰와 기자로서의 도를 넘어서는 요구들이 거절당했을 경우, 연기자와 영화사 및 홍보마케팅 관계자들에게 협박성 전화를 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김용호 기자는 "다소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기사를 쓴 것은 인정하지만, 기자로서의 도를 넘어서는 요구를 한 적은 없다. 아무런 근거없이 기사 외적인 내용으로 공개서한을 배포한 것은 명예훼손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 <씨네21> 560호, <"언론의 자유인가", "언론의 만행인가">
 
당시 사건의 촉발은 배우 인터뷰와 관련된 논란이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김씨가 배우 김태희와의 라운드 인터뷰 제안을 거절한 이후 도 넘은 인신공격성 기사를 수차례 게제했고, 이에 대해 영화계가 유례없는 강경 대응으로 맞선 것이었다.

여러 문제가 맞물려 있었다. 영화 홍보사를 대상으로 한 매체 기자의 갑질 논란부터 인터넷 매체가 여럿 생기면서 발생한 매체 간 알력, 기자 개인의 자질문제까지 불거졌고, 김씨는 영화계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악명을 날리게 됐다. 사건은 뚜렷한 타개책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일단락됐다.

이게 벌써 15년여 전 일이다.

15년 후
 
 배우 한예슬씨가 9일 유튜브 '한예슬is'에 올린 <다 얘기 해드릴께요~!! | Let me tell you EVERYTHING>의 한 장면

배우 한예슬씨가 9일 유튜브 '한예슬is'에 올린 <다 얘기 해드릴께요~!! | Let me tell you EVERYTHING>의 한 장면 ⓒ 한예슬is

 
이후 김씨는 여러 매체를 옮겨가며 예의 그 악명을 떨쳐갔고, 그러는 사이 <디스패치>의 탄생과 함께 연예인 사생활 보도가 나름 정착(?)을 하기도 했다. 이후엔 아시다시피 '유튜브의 시대'가 도래했다. 김씨는 유튜브로 자리를 옮겨 <가로세로연구소>와(<가세연>) <김용호의 연예부장>이란 채널을 운영 중이다. 구독자만 각각 67만 명, 56만 명이다.

그리고 9일, 배우 한예슬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김씨의 명예훼손성 폭로에 대해 정면으로 반격하고 나섰다. 이날 오전 한예슬이 본인 유튜브 채널 '한예슬is'에 게시한 <다 얘기 해드릴께요~!! Let me tell you EVERYTHING>란 영상은 게시 7시간 만에 조회 수 65만 회를 돌파했다.

"버닝썬(사건)의 마약, 이거와 저를 연결 짓는 것은 진짜 법정 대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죠. 왜? 고소를 하려면 증거 수집을 해야 하잖아요. 그냥 명예훼손은 처벌 별로 안 나오거든요. 연예인 공인, 명예훼손 만날 당하는 거? 또 악플러들(에 대한) 증거 수집도 해야 했고. 이렇게 악플러를 선동해서 사람들에게 허위 사실과 말도 안 되는 가십과 루머들로 상처주고.

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그 사람의 커리어를 짓밟고. 그런 행위들이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학폭이랑 뭐가 다르냐. '사회(적) 폭행'이 아닌가 싶어요. 무차별 공격,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이런 무차별 폭행이 과연 살인 미수와 뭐가 달라요?"

 
이날 한예슬은 22분여의 해당 동영상에서 지난 2주간 김씨와 가세연이 폭로한 사생활 관련 의혹 하나하나에 O, X로 답했다. 연예인 본인이, 그것도 여성 연예인이 자신을 향한 무차별 폭로에 사실 관계를 하나하나 짚으며 반박에 나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고, 1만 여개의 댓글은 응원 일색이었다. '좋아요' 또한 3만8천여 개가 달렸다.

사생활 폭로에 대한 반박만이 아니었다. 한예슬은 김씨와 가세연의 근거 없거나 과장‧왜곡된 폭로가 연예인 개인을 향한 살인 미수와 같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악플 또한 그러한 폭력의 동참일 수 있다는 사실을 피해자 입장에서 경고하고 있었다.

응원이 쏟아질 만 했다. 마치 한예슬이 연기한 <환상의 커플> 속 '안나조'가 김씨와 <가세연>, 그리고 악플러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드라마 속 장면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인정할 건 인정했고, 당당할 건 당당했다.

한예슬은 사생활이라 할지라도 해명하거나 짚고 넘어갈 사안들에 대해선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그간 여타 폭로전에서 소속사 차원의 보도자료로 일관하던 연예인들의 일반적인 대응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가세연>도, 김씨도 한예슬의 정면 대응에 대한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한예슬의 맞대응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폭로전으로 수익을 올리고 지명도를 올려온 김씨와 <가세연>이, 또 이들 영상의 구독자들과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의 행위가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태어난 괴물들
 
 유튜버 김용호씨가 출연중인 <가로세로연구소> 5월 21일 방송 중 한 장면

유튜버 김용호씨가 출연중인 <가로세로연구소> 5월 21일 방송 중 한 장면 ⓒ 가로세로연구소

 
기자들도 고민이 깊어졌다. 가세연이 폭로하는 연예인 사생활 수위가 지나치다고 판단돼도,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연예인 역시 공식 입장을 내놓으니, 기사를 안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가세연 발 이슈'가 포털을 뒤덮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가세연이 화제몰이를 하고 언론이 받아쓰면서 가세연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 8일 <미디어오늘>, <가세연 폭로→제보 무더기… 연예부 기자는 괴롭다> 기사 중

실제 그랬다. <가세연>과 김씨의 폭로가 포털을 뒤덮고 이슈화 된 것이 이번 건만은 아니었다. 최근 수년 간 유명 가수도, 유명 개그맨도 이들의 폭로전에 휩싸였다. 송사로 이어지거나 폭로 당사자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씨와 <가세연>발 기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고, 이를 외면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매체는 드물었다. 무엇보다 <가세연>발 폭로가 전부 사실로 확인된 것도 아니었다. 
 
딜레마는 가세연이나 디스패치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니 연예인들도 무대응하기 어렵고, 다른 매체들도 가세연이나 디스패치 보도를 받으면서 발언권을 더 키워주고 있다. 연예지가 가세연 이슈를 받더라도 자체 취재를 더하고, 덜 자극적으로 쓰는 부분을 고민하며 장기적으로 차별성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 해당 <미디어오늘> 기사 중 '연예 분야를 취재하는 C 기자'

맞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15년여 전 영화계가 김씨의 인신공격성 기사에 맞대응하던 시대는 도리어 어떤 '낭만'마저 느껴지는 '그때 그 시절'이라 할만 하다. <디스패치>가 연예인 사생활 보도의 영역을 열어젖혔고, 이후 '취재'나 '검증' 따위는 아랑곳없이 유튜브 채널들이 폭로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 중간에서 연예매체들이나 기성 언론들은 '울며 겨자 먹기' 혹은 '먼 산 바라보기'식 받아쓰기 보도를 통해 '클릭 장사'에 나서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예슬처럼 유명 연예인 본인이 '팩트 체크'란 명목으로 맞대응을 하고 나섰을까.

폭로 당사자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일은 요원할 걸로 보인다. 최근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에서 보듯, 이른바 '사이버 렉카'들은 수익을 위해 오늘도 연예인 관련 이슈를 포함한 각종 사건사고에 달려들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기성 매체가 훨씬 더 냉정해져야 한다. 이들 <가세연>이나 김씨의 폭로전과 관련한 보도를 최소화하거나 보도하더라도 '클릭 장사'를 위한 중계보도가 아닌, 사안을 좀 더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최소한의 언론 윤리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15년 전이나 현재나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태어난 괴물'들이 먹고 사는 것은 '대중의 관심'일 테니 말이다. 

이른바 '유튜브의 시대', <가세연>과 같이 무차별적인 폭로로 수익을 추구하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기존 매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 이들을 등에 업은 채로 클릭 장사로 일관한다? 그런 매체일수록 언젠가 신뢰를 잃고 '유튜브보다 못한 매체'로 추락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한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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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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