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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스승의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학생이 스승의날 편지쓰기 활동에서 방과후수업 선생님에게 감사 편지를 썼는데, 그걸 보고 다른 선생님이 '방과후수업을 하는 분은 선생님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에게 감사 편지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부정적인 반응들과 함께 공유됐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을 막아섰다는 일이 상식적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방과후수업을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가?', '그렇다면 교사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부각시켜서였다.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2020년 교대를 졸업했지만 임용고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올해 1교실 2교사제를 실시하는 학교에서 협력교사로 일하고 있다. 제도권 학교에 매일 출근하여 학생들을 만나 교육활동을 펼친다. 그 대가로 급여를 받고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은 교직에 입문한 것일까?
 
 교사의 위치에서 본 교실의 풍경은 같지만 고용형태에 따라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교사의 위치에서 본 교실의 풍경은 같지만 고용형태에 따라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 이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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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초등도 적체가 심해서 임용고시에 합격한다고 해서 바로 발령이 나지 않는다. 초등의 경우 행정적으로 임용합격자격의 유효기간(지역에 따라 2년 또는 3년)을 거의 다 채우고 나서, 합격이 취소되기 직전에야 발령이 난다. 대부분의 임용고시 합격자들은 그 기간 동안 구직활동을 한다.

대부분이 발령 나고 소수의 임용고시 합격자만이 구직활동을 하던 과거에는, 언제 발령이 날지 모르니 기간제교사(짧은 기간 동안 정규직 교사를 대체하는 비정규직 교사) 일자리를 주로 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발령 대기 기간이 길어져서 1년 이상의 장기계약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지인처럼 협력교사나 상담교사로 혹은 과학실무원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봤다. 이런 근무경력들은 나중에 호봉산정에서도 인정된다. 이들은 교직에 입문한 것인가? 혹, 이들은 교사인가?

달라진 '교사'의 의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한다고 하면, "그럼 학교 선생님이에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은 제도권 학교의 정규직 전일제 교사인가를 묻는 것이다. 만약 방과후 수업을 한다던가, 스포츠 강사라고 설명하면 "그럼 선생님은 아닌 거네"란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교사는 '가르치는 것을 직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덧붙여 특정한 고용형태를 포함한 말이 되어 버렸다.

그냥 나의 생각이 아니다. 영양교사와 영양사, 사서교사와 전담사서, 상담교사와 상담사. 하는 일이 같고 학생들과 함께 교육활동을 해나가지만 고용 형태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그 사람 교사야?" "아니, 전담사서야." 이런 대화가 오가게 되는 것이다.

고용형태라는 필터는 지금의 학교에서 마치 공기처럼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특히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구조로 토론될 때, 학생에 의한 교사의 권리 침해 사례가 인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인용되는 사례는 대부분 남성학생 대 여성교사, 그리고 교사가 기간제(비정규직) 교사인 경우다. 남성학생 대 여성교사의 경우 젠더권력의 비대칭이 그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교사는 왜 그럴까?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가지는 권력의 비대칭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서 발생한다. 학교로 따지면 교장과 비정규직 교사 간의 관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학생과의 관계, 즉 교사의 본질적 업무에 이르기까지 고용형태가 만들어내는 취약성이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결국 학교의 구조와 문화 전반에서 고용형태가 하나의 질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이 교육서비스의 소비자적 위치를 가지게 되면서 학생이 비정규직 교사에게 '갑'의 위치를 가지게 된 거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 주장이 맞다면 전체 교사들과 학생 간의 권력 관계가 변해야 한다.

소비자는 서비스의 제공자의 고용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소비자적 위치가 되면 서비스의 질 외에 다른 문제들로부터 개입할 권리가 사라진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물건의 질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물건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전체 교사가 아니라 비정규직 교사들이 갈등을 더 경험한다는 것, 비정규직 교사들이 능력 시비에 더 휘말린다는 것은 지금의 학교가 차별적이라는 걸 보여줄 뿐이다.

고용조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학교를 원한다

학교는 더이상 정규직 전일제 교사만의 공간이 아니다. 전체 교직원 중 비규정규직 비율을 따지면 거의 모든 학교가 50%를 넘긴다. 교사만으로 범위를 좁혀도 도지역, 특히 사립학교에는 비정규직 교사 비율이 50%가 넘는 학교가 드물지 않다. 그런데도 학교는 으레 정규직 전일제 교사들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고용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고용된 노동자이지만 급여를 얼마 받는지조차 제대로 안내되지 않고 자신의 급여명세서에 적힌 수당이 무슨 수당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모든 일터에 의무화된 취업규칙이 학교에는 존재하지 않고, 취업규칙이라는 말조차 대부분의 교직원은 알지 못한다.

'교사인데 어련히 좋은 대우를 받겠지' 하며 권리를 이야기하고 질문하는 것 자체를 외면한다. 업무가 과중하게 특정한 누군가에게 집중됐을 때도 학교에서는 그 일의 부당함보다는 개인사정을 이야기하며 사적인 배려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조정된다. 일과 고용에 대해 공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공간이 학교인 것이다.
 
학교의 복도 급식을 위한 이동차와 장애인을 위한 손잡이와 소방안전 장치가 함께 있는 학교의 복도만 봐도 학교가 다양한 사람들의 일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학교의 복도 급식을 위한 이동차와 장애인을 위한 손잡이와 소방안전 장치가 함께 있는 학교의 복도만 봐도 학교가 다양한 사람들의 일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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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하는 일에 따라 고용의 형태와 대우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차이가 존재하는 것과 이러한 차이를 말하고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립 학교의 교사는 국가직 공무원이지만 행정실의 직원들은 지방직 공무원이다.

다 정규직 공무원이지만 연가, 수당 등에 있어 국가직과 지방직은 처우가 다르다. 1일 2시간 이내로 사용할 수 있는 육아시간도 국가직 공무원부터 먼저 도입되어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데도 차이가 있다. 지금은 지방직 공무원에게도 육아시간은 모두 보장된다. 제도의 확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제도의 확대는 당연하게도 요구의 목소리들 때문에 이루어졌다. 학교는 일터이고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고용된 노동자이다. 일과 노동에 대해, 고용조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교권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

교권, 주로 교사의 권리로 이야기되는 교권은 대체 무엇일까. 2021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시작된 '#교권이_아니다' 연재에서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은 '스승의 날을 자축하는 것', ' 학생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 '반말과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것', '휴대폰 강제수거', '이성교제 금지', '교사만의 공간', '징계권'은 교권이 아니라고 말했다.

교사는 교육활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교육활동은 명령에 복종하게 하고 타인의 물건을 빼앗거나 사생활 침해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그것을 교사의 일로 여겨 강요하지도, 교사의 권리로 여겨 주장하지도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연재였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교권이란 무엇인가? 정규직 교사의 교권인가? 그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권한이라면 우리는 교권의 강화보다 가르친다는 것, 교육이라는 것의 의미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교사의 권리로서 교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권한이다.

또한 교권은 교육활동에 근거해 한계지어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올바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민주주의다. 민주적으로 제한되는 교권, 교육활동에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권리를 모든 가르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권을 다시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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