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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은평구의 풀뿌리 언론인 은평시민신문이 은평구청에 항의에 1면 백지 발행을 단행하는 등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은평시민신문은 행정이 지역신문의 알권리를 탄압하고 사업비 지급을 미루는 등 보복행정을 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은평구청은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당한 권리행사로 은평시민신문의 보도가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관련한 의견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은평구청
 은평구청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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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처절한 목소리를 흐느꼈을 때,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몇이나 될까.

거리에서 "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쳐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목소리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힘없는 약자의 이야기는 종이 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뉴스를 선택하고 대중들에게 내보이는 것은 권력이 선택하는 영역이다. 유력 정치인은 자신의 SNS에 사소한 말장난을 하더라도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연예인의 일상에는 기자들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 어떤 힘을 가지 못한 사람이 죽음 앞에 놓였을 때도,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퍼져 나가지 못한다.

죽음 뒤에도 그렇다. 어떤 사자는 그의 성격과 취향까지 기사에 오르는 반면, 죽음 자체가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다. 하루에 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어도 그들의 죽음은 다뤄지지 않는다.

언론 권력은 그렇게 뉴스를 만들지만 풀뿌리 언론은 다르다. 파급력은 중앙언론에 비할 바가 아니나, 지역 주민 누구나 그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다. 자신이 겪은 부조리도 될 수 있고 평범한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지도에 올려놨을 때 너무나 작을 수도 있는 그 이야기를 지역 언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것, 그것이 지역 언론이 가지는 의미다.

지역 언론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중앙언론이 다루지 않는 지역의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중앙언론이 다루는 지역 뉴스의 99%는 보도자료다. 이는 언론이 지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간혹 나오는 지역 뉴스는 지역 행정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시민단체가 발표한 것이 태반이다.

지역 언론은 제도권 언론이 비추지 못하는, 일상 가까이 산재해 있는 지역 정치를 다룬다. 필자가 시민기자로 있는 <은평시민신문>이 그렇다. 지자체의 예산 운용을 감시하고, 구의회가 어떤 의제를 다루는지 감시한다. 예산을 부적절하게 운용한다면 이에 대해 보도하는 것이 은평시민신문의 사명이자 의무다.

은평구청이 은평시민신문에게 벌이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알다시피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은평시민신문은 그렇지 않고, 그러지 못한다.

기자 2명이 48만 은평주민을 지배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지금 은평구청이 하고 있는 일은 은평시민신문의 의무를 방기하라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이를 방기한다면 은평시민신문은 은평구청의 소식지, 구청장 동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지역 언론은 존재 의미 자체가 없으며, 시민들도 이런 신문에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은평구청은 은평시민신문에게 '구청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출했다. 필자도 하나의 의구심을 표하겠다. 은평구청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권력이 갖는 강제력은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은평구청이 은평시민신문의 통장을 가압류한 것, 광고를 미집행한 것, 마을기업 지원사업 예산 집행을 보류한 것처럼 말이다. 중앙언론이 은평시민신문과 같은 보도를 했다면, 이러한 처분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할 수도 없다. 은평구청은 은평시민신문에 강제력을 행사할 권력을 가졌지만 중앙언론에게는 그렇게 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2019년 필자는 한 대학의 학보사에서 일하며 총장 앞에서 제대로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회에게 '자치의 자격'을 물은 바 있다. 오늘 구청에 다시 '자치의 자격'을 묻는다. 지역 언론이 의무를 방기하기를 강제하고 권력이 무엇인지에 몰이해한 지자체가 민주주의를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은평구청은 모른다.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수많은 언론이 받아 적고, SNS에 글을 올리면 수천 명이 읽고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기 때문에. 본인을 응원한다는 댓글이 끊임없이 달리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특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지역 언론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리가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응원하고 '좋아요'만 눌러줄 언론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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