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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특히 복숭아 농사는 약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19년째 유기재배로 복숭아와 쌈채소를 기르는 농부가 있다. 작물도 자라고 풀도 자라고 사람도 먹고 벌레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현강자연애농원의 김정순·송기봉 농부다.

두 사람은 자신이 기른 농산물을 직접 팔기 위해 격주 토요일마다 양수리에서 열리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장터, 두물:뭍농부시장으로 간다. 아침 일찍 서둘러 농산물을 챙겨 장터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리는 일정이지만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일이 생태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두 농부는 복숭아 솎는 시기에 맞춰 두물:뭍농부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복숭아 솎기 농활을 제안했다. "복숭아 솎는 일은 갈등의 연속이에요. 어느 것을 남겨야 크고 좋은 복숭아를 얻을까 매 순간 고민하죠. 그래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만들었다. 농활에는 일곱 살, 여덟 살, 열 살 어린이도 함께 했다. 19년의 세월이 녹아있는 유기농장의 풍경 속에서 지난 4일, 김정순·송기봉 농부와 만났다.

- 어떻게 농부가 되었나요.

김정순 : "어릴 적 제 아버지는 한옥 목수였고 어른이 되어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어요. 농사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죠. 남편 송기봉 농부도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인데 어쩐 일인지 무척이나 농사를 짓고 싶어 했어요. 주말농장을 시작해 네 해 동안 이것저것 심어보더니 방송통신대학 농학과에 편입해서 농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인연으로 지금의 농장터를 샀어요. 저는 교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송기봉님은 농장을 꾸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서 주말부부로 농부의 삶을 시작했지요. 벌써 19년 전의 일이에요."
 
유기 과일 농사는 특히 어렵다.
▲ 이제 막 몸집을 키우기 시작한 복숭아 유기 과일 농사는 특히 어렵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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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작물로 농사를 시작했나요.

송기봉 : "처음부터 복숭아로 시작했어요. 꿈도 야무지게 여름 한 철만 고생하면 여유로운 삶이 기다릴 줄 알았죠. 하하하. 두 사람이 3000평 너른 농장에서 쉴 사이 없이 일해도 자립이 어려워요. 한 철 농사는 멋모르는 환상에 불과했지요. 젊은 시절 캠핑을 즐기고 전국을 걸으며 누구 못지않게 잘 놀던 사람인데 땅에 붙박이가 되어 버렸어요. 농사도 농사지만 돌봐야 할 동물들이 있어서 더 매인 몸이 되었지요. 워낙 개를 좋아해 기르는 여섯 마리의 개와 날마다 알주는 닭들이 있어서 이제는 하룻밤 외박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어요."

- 다른 농장과 달리 풀이 많은데 이유가 있나요.

김정순 : "남편은 풀을 아끼는 농부예요. 풀을 적으로 여기지 않아요. 복숭아나무 아래 풀은 베는 법이 없어요. 초성재배라고 하죠. 풀도 벌레도 복숭아나무도 서로 어울려 함께 사는 자연스러운 농장이에요. 풀이 있어서 벌레들이 풀에서 놀아야 복숭아나무를 덜 괴롭힌다는 거죠. 저는 사실 손쉬운 방법으로 풀을 뽑고 싶지만 남편은, '풀은 뽑는 게 아니고 베어내는 거야'라고 말해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약을 치지 않으니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산다.
▲ 복숭아 밭에서 깨어난 새끼 거미들 약을 치지 않으니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산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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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 인증을 받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요.

송기봉 : "일 년에 한 번, 7월이면 유기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신청합니다. 인증을 위해서 다음 카페에 날마다 영농일지를 쓰고 있어요. 농산물 판매를 위해 유기인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유기인증 심사를 통해 우리의 농산물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까다로운 절차지만 매년 진행하고 있어요. 참 깐깐하죠. 지하수도 매년 수질검사를 해서 확인받아야 마음을 놓았어요. 그러다가 까다로운 수질검사 절차 대신 요즘은 수돗물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천시 친환경회장을 지냈고 유기농협회 이사이기도 해요."
 
건강한 작물을 보니 농부가 쏟은 정성이 보이는 듯하다.
▲ 싱그러운 양배추 건강한 작물을 보니 농부가 쏟은 정성이 보이는 듯하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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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재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김정순 :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이죠. 19년이란 긴 시간 농사를 지었지만 여전히 농사는 어려워요. 그 가운데 진딧물이 가장 골칫거리예요. 효과 좋은 약 한두 번이면 다 잡히겠지만 우리는 타협하지 않았어요. 목초액, 식초, 소주, 설탕, 막걸리...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진딧물로부터 복숭아나무를 지키고 있습니다."

- 도시를 떠나 농사를 지으며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김정순 : "건강해졌어요.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던 젊은 시절과 달라요. 지금은 아무리 고단하게 일한 날에도 자고 일어나면 끝이에요. 다시 새로운 하루가 기다리죠. 날마다 탁 트인 하늘의 바람 맞고 흙 만지며 사는 삶이 저를 강하게 했어요. 내가 농사지은 농산물 위주로 먹고 한살림 같은 곳에서 산 것으로 부족분을 채우는 식단도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두물:뭍농부시장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복숭아를 솎아주기 위해 방문했다. 솎아낸 풋복숭아는 각자 가져가 청을 담는다.
▲ 복숭아 솎기 농활  두물:뭍농부시장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복숭아를 솎아주기 위해 방문했다. 솎아낸 풋복숭아는 각자 가져가 청을 담는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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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물:뭍농부시장에 나가는 이유가 궁금해요.

송기봉 : "단일품종으로 대량 재배를 해야 그나마 돈이 되는데 자급을 위해 이것저것 심다보니 돈과는 더 거리가 멀어요. 둘 다 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인연을 맺은 곳이 직거래 장터 두물:뭍농부시장이에요. 농사지으며 고즈넉이 사는 삶이 우리 두 사람에게 안성맞춤이지만 농사일에 치여 농장 안에서만 맴도는 삶이다보니 사람이 아쉽지요. 벅차게 일하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만나러 가는 하루는 우리에게는 휴가와 같아요."

- 직거래 장터에 나가는 일이 힘들지 않나요.

김정순 : "농부시장에 나가서 얼마 벌지 못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우리가 직거래 장터를 일부러 찾아 나가는 것은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채소를 건네고 돈을 받고 마는 그런 장사가 아니에요. 짧게 또는 길게 소비자와 이야기를 나누어요. 내가 들려주는 농사이야기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반색하는 사람도 만나고 내 농산물을 먹은 느낌을 들려주는 사람도 만나요. 뿌듯한 순간입니다."
  
두물:뭍농부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농활. 새참시간은 언제나 달고 즐겁다.
▲ 새참시간 두물:뭍농부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농활. 새참시간은 언제나 달고 즐겁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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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계획이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김정순 : "돈 안 되고 몸 고된 농사일이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갈 겁니다. 농약이나 과도한 거름으로부터 농지를 지키고 우리의 땅을 건강하게 보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어떤 가치보다 값지다고 여기니까요. 농산물을 대하는 소비자의 마음에도 둘레의 생명과 지구환경을 돌아보는 마음이 꽃피기를 바라봅니다."

태그:#복숭아, #유기농, #농부시장, #친환경,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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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에게 지속가능한 삶터를 물려주기 위한 작은 실천들을 고집하며 사는 두 아이의 엄마다. 몇 해 전 도시를 탈출해 두물머리 언저리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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