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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더 연결되고 싶은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성애의 두번째 편지: 연결되고픈 당신께

'하... 내가 내 돈 내고 이 고생을 꼭 해야 되나?'

매주 수요일마다 하는 생각입니다. 한숨 내쉬며, 끝에는 눈물눈물 이모티콘을 붙여서요. 저는 요새 운동하는 페미니스트, 그러니까 건강한 성평등추진러거든요.
 
 매주 수요일마다 재활 전문 PT를 받고 있습니다(스쿼트 자세).
 매주 수요일마다 재활 전문 PT를 받고 있습니다(스쿼트 자세).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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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10여 년 전 사고 후유증으로 오른 발목이 잘 굽혀지질 않아서, 3월부터 총 20회 재활PT를 받고 있는데요. 갈 때마다 온 몸 근육이 고통받다 보니 가기 전 심리적 저항이 너무 커요. 겨우겨우 정시에 도착하곤 합니다...(이제 4번만 더 가면 돼요T_T).

저는 운동 빼고는 거의 집에 있어요. 본격 코로나 시대, 외출과 만남은 줄고 '집콕'이 당연해진 요즘, 당신의 저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녹색당 마포구위원장,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세밧사) 상근근무자, 독서모임 진행자... 제가 아는 혜미씨 직책만 세 개인데, 그에 맞게 바쁠까요, 아니면 다 축소됐으려나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세상은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년 말 결혼 뒤 자주 깨닫는 건, 저와는 1도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결혼으로 생겨났다는 거였네요. 가끔은 참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자기 안으로 향하게 돼 있지 않나요. 그걸 억지로 깨야 하다니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두렵고 낯선 타인과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상대에게 '선 넘을 권리'를 허락하면서 나는 배우고 성장해온 게 아닐까 하고요. 이런 자극 자체가 줄어든 셈이니 코로나 시대는 또 어렵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이건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재택근무자의 한가한 소리 같기도 해요. 의료원에서 일하시는 제 엄마처럼, 호텔 노동자인 제 친구처럼, 대면출근이 필수인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코로나 시대, 당신은 어디 연결돼 있나요

요즘 길에서 보면 다들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못 떼더라고요. 걸으면서, 계단에서도, 심지어는 자전거 위에서도(!) 아슬아슬 휴대폰을 봅니다. 코로나 탓이겠지요. 5월 말에 저는 강원도 영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었는데요, 돌아오는 밤기차 안 창문에 비친 앞좌석 승객의 폰 화면을 마주치곤 내심 놀랐습니다. 인스타·페북을 엄지로 내리고, 내리고, 좋아요와 따봉을 클릭 클릭. 내리고, 클릭 클릭.

찰나였지만 저도 저랬겠구나 싶었거든요. 코로나를 피해 모두가 액정 속에 사는 듯한 시대, 남들과 '잘' 연결되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콘텐츠를 사냥하듯 찾아다녀요. 젠더 관점으로 뉴스를 보는 한국일보 <허스토리>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여성 커뮤니티 <창고살롱>에 가입해 함께 영화를 봅니다. 타인은 기본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존재지만, 당신이라면 더 알고 싶다고, 제 자아가 좀 더 위험해져도 괜찮겠다고 결심해봅니다(혜미씨, 마구마구 선을 넘으세요!).
        
 캐럴라인 냅의 마지막 생전 에세이 <욕구들>
 캐럴라인 냅의 마지막 생전 에세이 <욕구들>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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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으로 산다는 것

저는 최근 <욕구들>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몸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돼요. 캐럴라인 냅이 쓴 이 책은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대 속, 여성들이 느끼는 허기와 공허감, 자기혐오 등을 다룹니다. 저자는 끼니를 굶으며 몸을 혹사하는 거식증(섭식장애)을 앓다가 마침내 벗어나고, 그랬던 자신을 돌아보며 사유하는데요, "여자들이 자기 몸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비율은 남자의 세 배"라면서 이렇게 씁니다.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변방 중 하나일 수 있고, 어쩌면 최후의 변방 중 하나인지 모른다. (383쪽)
 
그러게요. 어쩌면 굉장한 가능성의 공간일 몸을, 저는 왜인지 그간 잘 몰랐고 모르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단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됐어요. 몸 어디가 아프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래서 일하(기에 편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지난 10년간은 그 외엔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한편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옷(드레스)에 제 몸을 맞추려 며칠을 굶던 기억도 나요. 굶고, 꼬집고, 미워하고... 그렇게 자기 몸을 미워했던 시절이, 혜미씨에게도 분명 있겠죠?

어떤 어른은 제게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이라고 해요. 생명을 품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여자 몸으로 사는 건 피곤하고 위험한 일 같아서요. 사실 저는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 아직도 종종 분노하거든요. 아홉 살 무렵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나이든 할아버지가 저와 제 친구를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만졌던 기억이요(그땐 그게 성추행인지도 몰랐어요).

누가 더 불행한지, 그걸 비교할 수는 없겠죠. 얼굴마저 '외모자본'이라 불리는 시대, 어쩌면 모두가 피해자일 테고요. 그런데 한편으론 슬퍼져요. 왜인지 여자들은 더 쉽게 죽는 것 같아서요. 엊그제 딱 30분 본 뉴스에서만도 여자를 겨냥한 사건이 내리 세 건이었습니다. 김태현이란 25세 남성이, 온라인서 만난 여성을 스토킹하다 결국 세 모녀를 한꺼번에 죽인 사건이 있었죠? 한 여성 군인은, 상관에 당한 성추행을 신고한 뒤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맞고, 밟히고, 추행당하는...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그래도 축복일까요.

앗, 갑자기 얘기가 너무 무거워졌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어쩌면 그래서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 밤엔 거실에서 스쿼트(기마 자세)를 하고 자려고요. 혜미씨, 우리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잘 살아보아요.

▲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책 <욕구들>. "당신이 20세기 후반에 성년이 된 여자라면 어떤 형태로든 분명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멀리 가지 마.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 너무 많이 원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자기 몸을 미워해본 당신, 이 문장에 공감하는 당신께 추천합니다.     

2021년 6월 3일
당신의 꿀잠을 기원하며, '아뵤' 유성애 드림.
 
 혜미(오른쪽)와 성애는 2019년 11월말 국회 특권폐지 기자회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둘의 공통점이 '정치'라 국회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앞으로 2주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을 예정입니다.
 혜미(오른쪽)와 성애는 2019년 11월말 국회 특권폐지 기자회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둘의 공통점이 "정치"라 국회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앞으로 2주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을 예정입니다.
ⓒ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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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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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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