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마을길을 행진하는 축제 참가자들의 모습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마을길을 행진하는 축제 참가자들의 모습
ⓒ 산내성다양성축제, 삼반인작당

관련사진보기

 
전북 남원시 산내면은 2,1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고 외진 지리산의 농촌 지역이지만, 유독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내에는 서울말 쓰는 사람이 더 많더라'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런 두메산골에도 사람들이 일부러 살러 온다니 놀랍겠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산내에 살러 오는 사람이 만나게 될 행복은 아마도 이런 순서가 아닐까 싶다. 첫째는 잘 보존된 자연의 품에 사는 행복일 테고, 둘째는 먼저 온 이웃들의 환대와 도움, 셋째는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산내만의 독특한 문화.

이 중에서도 세 번째, 산내 사람들이 만들어낸 산내의 문화가 진짜 특별함이 아닐까. 시골에서 그게 가능할까 싶은 일들도 산내라면, 산내 사람들이라면 가능했다. 다양한 배경,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모인 산내 사람들은 언제나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실현해왔다.

2020년, 산내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신인 청년 주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삼반인작당'이라는 이름의 팀으로 활동 중인 보석을 마을카페 '토닥'에서 만났다.


우리 산내에서 살 수 있을까?

"산내에 온 지 이제 1년 조금 넘었어요. 산내에 오기 전엔 서울에서 비거니즘 동아리 활동을 했고요. 그러다 도시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 농촌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도시 청년이 낯선 시골에서 적응하는 것 역시 만만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작전을 짠 것이, 공동체에 들어가는 거였죠."

그렇게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자연주의의 삶에 기대를 품고 내려온 곳이 산내였다. 공동체를 알아가며 웃고 웃으며 3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 예정과 달리 갑작스레 공동체를 나오게 됐다. 공동체에서는 이들의 기대나 요구를 인정할 수 없어서 더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던 그때, 생각보다 많은 이웃이 이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밥 한 끼 사주고 싶어요.", "우리 집에 빈방이 있는데, 와서 지내도 돼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요." 이런 따뜻한 말들이 이 청년들의 마음에 밥이 되고 집이 되었다. 그러다 진짜 살 곳도 구하고, 일자리도 얻었다. 그렇게 그들은 산내에 계속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 진짜 되겠는데?" 이러다 일낸 청년들
산내에 무지개가 휘날리던 날

   
2020년 산내성다양성축제 포스터
 2020년 산내성다양성축제 포스터
ⓒ 산내성다양성축제, 삼반인작당

관련사진보기

 
공동체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저마다 급한 대로 빈집을 구해 삼삼오오 모여 살았다. 공동체 일과가 사라진 시간은 밭을 가꾸거나 책을 읽거나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리가/내가 산내에서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심심하다.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여느 때처럼 누워서 수다를 떨다가 퀴어 축제 얘기가 나왔다. 누구는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포스터를 쓱쓱 그렸다. "되겠는데?" "이러다 진짜 열리겠는데?" 그러면서 기획된 행사가 지난 2020년 11월에 열린 '산내 성다양성 축제'였다.

"모두 행동으로 옮기는 게 빠른 친구들이었어요. 아이디어가 금방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산내에 어울려 사는 친구들끼리 공통분모가 많아요. 저희는 생태주의적 관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비거니즘 철학, 또 청년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안에는 다양성이 기반이 되어 있어서 퀴어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축제를 같이 기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공동체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이런 상상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산내 성다양성 축제를 기획한 건 산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그들다운 일이었다. 산내 성다양성 축제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에서 내어준 공간에서 열렸다. 누구도 여기서 축제를 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작은 사무실이었다. 풍물판으로 시작된 축제는 '해보장'이라는 장터와 콜라보한 다양한 전시/판매/체험 부스와 공연, 퀴어 토크쇼로 채워졌다. 토크쇼에서는 시골 퀴어 이야기, 탈 정상연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는 마당으로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풍물 공연을 하고 있다.
 여는 마당으로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풍물 공연을 하고 있다.
ⓒ 산내성다양성축제, 삼반인작당

관련사진보기

 
퀴어와 관련된 글귀들을 낭독하고 있다.
 퀴어와 관련된 글귀들을 낭독하고 있다.
ⓒ 산내성다양성축제, 삼반인작당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은 역시 '퀴어 퍼레이드'였다. 시골 마을에 퀴어 축제가 열린 그 자체도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특히 '퀴어 퍼레이드'는 축제에 다녀온 많은 이들이 가장 황홀한 순간으로 꼽았다. '끝을 장식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무지개색 한복을 입거나 무지개처럼 알록달록 환희에 찬 표정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산내를 한바퀴 돌았다. 여태까지의 그 어떤 무지개 행진보다 가장 촌(시골)스럽게, 가장 힙하게! ('촌스럽다'와 '힙하다'가 한 번에 쓰일 수 있는 훌륭한 예시였다.)


산내에서 열린 농촌판 퀴어축제에 주민들이 보낸 반응,
"이 청년들이 산내를 떠난다면 그건 비극이지!"


"서울에 살 땐 여러 사람과 같이 가치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약자나 소수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대를 이루며 살잖아요. 여기 내려올 때 시골에는 청년이 거의 없으니까 '청년이 생각하는 어려움이나 청년들의 문제의식을 받아줄 수 있을까?' 그런 게 가장 걱정된 부분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과 마을 삼거리에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과 관련해 피켓 시위하는 걸 보게 되었어요. '성폭력근절을위한지리산여성회의'라는 마을의 자치적인 여성기구를 통해 열린 릴레이 시위였어요. N번방 이슈로 여러 시위현장의 소식을 접하며 부채감이 크던 터라, 마을 주민 누구나 참여 가능한 시위라는 얘길 듣고 시위에 참여했었어요. 산내는 시골이지만 그런 것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다 보니까 이 정도 축제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청년이 느끼는 사회문제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주민분들이 꽤 많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함께한 '삼반인작당'의 보석
 인터뷰를 함께한 "삼반인작당"의 보석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관련사진보기

 
'보석'의 말처럼 산내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모임이나 단체, 주민 자치 모임 등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문화를 지닌 특별한 시골이기도 하다. 

"작년에 퀴어페스티벌이 전국적으로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분의 갈증이 있었는데, '도시가 멈출 때도 시골은 계속 움직인다.'는 시골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시골 면 단위에서 퀴어 페스티벌을 열었던 역사가 없는 거예요. '시골 퀴퍼'의 최초가 되어보자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들만의 잔치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훨씬 많은 사람이 오셨어요." 

많은 주민이 축제장을 찾았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도 꽤 많았다. 마을 주민들은 축제 내내, 축제가 끝나고도 찾아와 애틋한 눈빛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런 청년들이 떠나면 그건 산내의 비극이지!", "우리한테 땅이 있는데, 거기 청년 주택을 하나 지어야 할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음만으로도 고맙고 보람으로 벅찼다. 이 축제는 성공적인 시골 퀴어축제이면서, 산내에 온 그들 스스로 보내는 성공적인 환대였던 셈이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올해도 산내성다양성축제 해요?


"작년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저희한테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1회로 끝내긴 너무 아쉽지 않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다가, 올해도 한 번 더 하자고 얘기했죠. 지원받을 방법도 알아본 다음에 시스템을 단단히 구축해서 열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지난해 산내에 있던 청년들 중에 몇 사람은 반경을 넓혀 지리산권 안에서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산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청년 3명이 '삼반인작당'이라는 팀을 꾸렸다.

"비교적 산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친구들(삼반인작당)이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결코 세 명이서만 기획하는 축제는 아니에요. 축제가 열리면 다른 친구들도 함께 도와줄 거예요."

첫 '산내 성다양성 축제'에는 많은 이들의 물심양면 도움이 숨어있었다. 여러 단체에서 무지개 물품을 빌려주거나 금전적인 후원을 보내왔다. 이들이 코로나 상황을 우려해 소극적인 홍보를 했음에도 전국적으로 축제가 알려진 건 이런 단체들의 홍보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팀이나 축제 스태프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쓰였다고 했다.

"올해는 공연이나 스태프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공연팀 섭외에도 신경 쓰고 있고요. '해보장'이라는 장터 규모도 좀더 커질 것 같아요. 다양성의 폭을 좀 더 넓힌 축제가 될 것이라 기대해요. 작년 축제를 거치면서 '이것도 해봤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트럭을 타고 행진한다든지,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관련 법들이 어떨지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안전한 축제가 되기 위한 방역 조치도 고민해야 하고요. 그래서 이번엔 그런 것들을 알아보며, 좀 더 탄탄하게 준비 중입니다." 

다행히 올해 축제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지리산 권역의 작은변화를 위한 활동에 지원하는 '작은변화지원사업'에 '삼반인작당'의 이름으로 낸 사업이 선정되었다. 여러 아쉬움을 보완하고 더욱 탄탄하게 준비해서 올해는 늦여름쯤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놓치고 싶지 않다면 미리 #산내성다양성축제 태그를 팔로우해두길 권한다. 

산내를 '리틀 포레스트' 저리가라 하는 웰메이드 청춘 영화의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청년들, 지리산을 오색찬란 빛내며 방랑하는 이 청년들의 삶을 누가 다큐멘터리라도 좀 찍어둬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무지개 플래그가 걸린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 기획자와 참가자들의 모습.
 무지개 플래그가 걸린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 기획자와 참가자들의 모습.
ⓒ 산내성다양성축제, 삼반인작당

관련사진보기

 

'삼반인작당'이라는 이름의 숨은 뜻
다양성 끌어안으며 살고 싶어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께서 LGBT 퀴어들과의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을 '삼반'이라고 지칭하셨대요. 퀴어를 흔히 일반이 아니라 이반이라고 하잖아요. 본인이 일반은 아니고, 이반도 아니지만 이반을 지지하고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삼반인이라는 뜻이었대요. 이 말에 큰 울림을 받았어요.

산내에 사는 사람들이 크게 세 갈래로 구분되는 것 같아요. 원래 살던 분들(선주민)도 있고, 귀농귀촌해서 이제 산내에 산 지 꽤 오래된 분들(오래된 이주민, 정착민)도 있고, 이제 막 들어와서 적응해가는 청년 이주민도 있고요. 저희는 그 중 세 번째 그룹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저희가 일상을 살 때도, 하고 싶은 걸 하거나 저희 의견을 개진할 때도 당연히 선주민분들은 도시 문화권에 살다 온 저희와 문화 배경이 완전히 다르니까, 저희를 되게 낯설어하시기도 해요. 그래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정착민분들은 '우리랑 비슷한 결이겠지? 우리 나이 또래에 또 다른 가치를 품고 내려와서 정착하셨으니까, 우리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화를 시도해보면, '그래도 그건 좀…'이라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렇게 '양쪽 모두가 낯설어하는 우린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었어요.

노회찬 의원이 말한 삼반의 의미와 같지는 않지만, 산내에 살다 보니 우리의 위치도 삼반인이라는 위치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촌에서 흔히 일반인으로 분류되는 선주민과 선주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주민인 이반인. 그런데 양쪽 모두가 낯설어하는 우린 삼반인인 것 같아요. 지금은 산내에서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해 삼반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언젠가는 노회찬 의원이 말한 삼반의 의미처럼 같은 위치가 아니더라도 지지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요. 최대한 다양성을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라서 '삼반인작당'이라고 고민 끝에 이름을 지었어요."


기억에 남는 몇 개의 퀴어축제 구호는 시간이 지나도 비 온 뒤의 무지개처럼 떠오르곤 한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농촌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 다양한 생각 그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성다양성뿐 아니라 작게는 생활패턴의 다양성과 패션의 다양성부터 관계 다양성, 가족 구성 다양성, 교육 다양성, 생물 종 다양성… 다양성을 뽐내고 누리며 살게 해달라는 바람을 담아 지리산 자락에 무지개 같은 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띄운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공동운영하며,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의 시민사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