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큰 화제와 논란을 낳았던 유명 사건들을 다시 조명하는 시사 토크형 교양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은 그중에서도 '범죄'에 해당하는 사건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이나 안전사고 같은 사례에서부터 제노사이드 같은 국제범죄에 이르기까지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원작이기도 한 <알쓸신잡>이 여행과 역사를 통하여 인문학적 교양지식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과 관련된 사건들

그런데 지난 6일 방송에서는 '동물 학대' '갑질' '가스라이팅' '자살' '위조지폐' 등의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전 회차와 비교하면 어디까지가 범죄라고 분명히 선을 긋기 어려운 대신, 주로 인간 본성과 관련해 시의성 짙은 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물 학대와 관련하여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2010년 69건이던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가 2019년 914건으로 10배 이상 폭증했다"고 지적하며 "본인 스트레스나 좌절감을 말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해소하려는 동기가 보고된다. 동물 훈육, 행동을 교정한다는 명목 하에 특정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끼는 동물에게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동물학대의 배경을 설명했다.

잔혹한 동물 학대의 사례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루약을 탄 먹이를 준비해 고양이들에게 먹이고, 판매금지된 사냥 화살촉을 고양이에게 쏘기도 한다. 미성년자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동물판 n번방'의 사례도 거론됐다. 박 교수는 "보통 신체적 학대만 주목하기 쉽지만, 동물 유기, 굶주림이나 질병을 방치하는 것도, 많은 동물을 키우면서 의무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도 학대에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갑질에 대한 화두였다. 최근 큰 이슈가 된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사건,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강북구 경비원 사망 사건 등의 사례가 거론됐다. 갑질의 의미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여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장항준 감독은 뉴욕타임스에서 땅콩 회항 사건를 보도할 때 '갑질'의 어감을 정확히 번역할 영어 단어가 없어서 결국 한글을 그대로 옮긴 'Gapjil'이라고 쓰고는, '봉건 영주들처럼 행동하는 상급자들에 의하여 하급자들이 당하는 학대'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출연자들은 갑질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했다. 윤종신은 "아파트 경비원은 을이, 아파트 입주민 전체가 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고, 장항준 감독은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입주민 협의회에서 경비업체를 통하여 계약을 맺고 경비원을 고용하기 때문에 갑질 같은 문제가 생겨도 (계약이 해지될까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김상욱 교수는 "문제는 약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런 일에 있어서는 사람의 선의를 믿어서는 안 된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한 누군가는 또 갑질을 저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한 장면. ⓒ tvN

 
다음 주제는 가스라이팅이었다. 가스라이팅은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에 조작을 가하여 자신을 불신하게 하고 가해자에 의존하게 하는 심리적 학대를 의미한다. 오은영 박사는 가스라이팅의 특징으로 "연인, 가족 등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관계에서 나타나는 만큼 이것이 학대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세 자매가 친모를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패륜사건을 언급했다. 세 자매가 지인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건으로, 무속인이었던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들과 친분을 맺은 이후, 가족을 이간질하여 남편을 떠나게 만들었고, 자녀들에게는 어머니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부추겨서 결국 집단폭행으로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결국 세 딸은 각각 10년-7년형을 선고받았고 가해자 역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피하지 못했다.

오은영 박사는 "가스라이팅은 평등한 관계에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상하관계-위계질서-힘의 차이 등 평등하지 않는 관계에서 이뤄지는 만큼 인간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박사는 "가스라이팅을 저지르는 가해자를 교화시키기는 불가능하고, '단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단언하며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물리적-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보다는 '한번 생각은 해볼게'라고 하는 게 올바른 대처"라고 설명했다.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한 장면. ⓒ tvN

 
이날의 방송이 유난히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것은 위의 문제들이 언제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거나 직접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 있다. 동물 학대와 갑을관계에서의 갑질, 가스라이팅, 자살 등은 특정한 계층이나 운이 나쁜 사람에게는 벌어지는 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며,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는 사건처럼 보인다. 

<알쓸범잡>은 2008년 'SAGE Journals'의 리포트를 인용, '폭력적인 가정은 비폭력적인 가정에 비하여 동물 학대 비율이 현저히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박지선 교수는 "동물 학대의 본질은 타인과 약자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지적하며 저항할 수 없는 동물에 드러내는 무분별한 폭력성은 언제든 인간을 향해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갑질과 가스라이팅의 연관성도 눈에 띈다. 오은영 박사는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의 특징으로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시즘적인 특성"을 거론했다. 상대에 대한 지배력과 통제력으로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고 쥐락펴락하게 하는 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강북 경비원 사건의 입주민 가해자나 양진호 회장의 사례처럼 '갑의 위치'로 온다면? '갑을관계 가스라이팅'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에피소드의 후반부에 이어진 내용은 '자살'이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1만3799명으로 OECD 37개국 중 인구 10만명 당 자살비율이 1위를 기록했다. 자살률의 이유를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소외감 등 구조적인 문제를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오은영 박사는 자살하거나 자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힘내라'거나 '용기 내라', '왜 그러냐'고 하기보다는, '아프니까 좀 쉬어도 돼'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되었는지 함께 이야해보자'라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알쓸범잡>이 다루는 범죄 이야기들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결국 한국 사회의 화려한 외형적 성장 뒤에 가려진 어두운 치부들이 보인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평범해 보이는 이들도 누구나 악행을 저지르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알쓸범잡>은 왜곡된 사회 구조와 인식 속에서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범죄에 분노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인과관계와 사회적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일 것이다. <알쓸범잡>의 무거운 주제들이 당장은 보고 받아들이기 불편할지라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일상 속에 만연한 수많은 평범한 범죄와 가해자들이 어떤 구조 속에서 탄생하게 되는지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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