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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인접한 집에서 살다보면 다양한 야생동물을 볼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새벽에 잠을 깨우는 고라니의 외침은 다급한 상황으로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비슷한 새벽시간에 일정한 패턴으로 외치는 소리에 익숙해지면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자세히 들어보면 서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주고 받는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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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다른 생명체도 소통을 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동물행동학자 마들렌 치게의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인간만이 소통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식물과 미생물도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숲과 흙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은 다른 생명체와 소통을 하고 도청으로 먹이사슬을 유지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오래전에 숲을 떠난 인간이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고요한 숲은 없다

인간에게 숲은 항상 고요하고 아늑한 쉼터로 콘크리트 세상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휴식처이지만, 숲속 생명들에게는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거나 도망가고 급박하게 소리를 내서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그들만의 신호를 보내거나 냄새와 화학물질로 방어를 한다. 물론, 그 대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포식자의 침입을 경계하는 생존본능으로 그들은 언어와 행동을 소통의 도구로 이용한다.

그렇지만, 숲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받는 위험한 곳은 아니다. 모든 생명체의 본능인 종족번식을 위한 짝을 찾기 위해서 사랑의 메신저를 보내고 밀당을 하는 언어가 쉬지 않고 송수신되고 있다.
 
'수컷은 암컷을 유혹할 때 정직한 신호만 보내지 않는다. 시각적 도움을 위해 남의 깃털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암컷은 잠재 자손의 아버지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나름의 기준이 정확히 있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암컷은 일상에서 수컷들을 도청하기까지 한다.' - 본문중에서

생존을 위해 서로 돕는다

소리와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동물과 달리, 식물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흙에 뿌리를 내린 곳에서만 살아야 하는 식물은 종족 번식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는 생존 전략을 쓰기도 한다. 또한, 포식자를 경계하고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화학적 물리적 방어물질을 사용한다. 그러나 역부족일 때는 마찬가지로 포식자의 천적에게 신호를 보내서 도움을 요청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숲속에 들어갔을 때 인간의 후각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냄새는 식물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적의 화학물질이라고. 흙에서도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토양미생물에서 나오는 것으로, 식물과 미생물은 서로 협력하여 공생하면서 살아가고 흙을 만든다고 책에 나온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의 일부를 흙속의 미생물에게 먹이로 제공하며, 도움을 받은 미생물은 식물에게 필요한 광물과 유기물을 분해하여 양분으로 돌려준다. 식물중에는 자신의 몸(뿌리)에 미생물이 살 수 있는 집을 제공하기도 하며, 위험에 직면했을 때 신호를 보내서 미생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은 지구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식량을 제공하는 농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사를 짓다보면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을 다양한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추잎을 갉아먹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천적곤충의 먹이가 되기도 하며, 살충미생물에 감염되어 죽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이 공생하는 생명체와 소통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식물은 대개 가시나 독으로 무장하고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여 모든 크기의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줄 안다. 모든 수단을 썼음에도 실패하면, 의사소통 능력이 특히 뛰어난 식물은 동물 동맹군에게 직접 화학 신호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 본문중에서
 
배추잎을 갉아먹은 애벌레가 살충미생물에 감염되어 죽은후에, 흰색의 곰팡이균 포자가 생겼다.
▲ 배추흰나비 애벌레 배추잎을 갉아먹은 애벌레가 살충미생물에 감염되어 죽은후에, 흰색의 곰팡이균 포자가 생겼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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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명체의 언어를 인간이 알아듣거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내는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만약에 그랬다면 모두의 삶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이 숲으로부터 멀어진 채 살아온 시간은 너무 많이 흘렀지만, 숲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은 남아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숲속에 들어갔을 때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은 몸속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던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은 아닐까.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은이), 배명자 (옮긴이), 최재천 (감수), 흐름출판(2021)


태그:#숲, #미생물,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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