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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을 수상한 보린 작가의 신간 <살아 있는 건 두근두근> (문학동네) 출간 소식을 듣고 4일 퇴계로에 위치한 카페에서 보린 작가를 만났습니다.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시리즈, <분홍 올빼미 가게> 시리즈, <뿔치>, <한밤에 깨어나는 도서관 귀서각>, <컵 고양이 후루룩>, <100원짜리만 받는 과자 가게> 등을 썼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책엔 '고기'에 관한 세 편의 소설이 담겨있습니다. 작가는 이번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두근거렸던 순간은 우리의 살을 그리고 살 속에 반짝이는 생명력을 느낄 때"였다고 말합니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인공으로 포육된 인간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안드로이드 나주에 관한 이야기. 사람은 죽어 곰으로 태어나고 곰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세계의 곰딸과 매발톱 이야기. 폭행 사건으로 산속에 들어와 살아가는 배구소녀 체리와 다니던 학원에서 자살을 목격한 후 많은 것을 포기한 복우가 만나서 펼치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보린 작가님의 필명인 '보린'에 담긴 의미라던가 사연을 물어봐도 될까요? 사전에는 '보린(保鄰) - 이웃끼리 서로 돕고 돌봐 준다'는 뜻의 명사로 나오는데요. 그런 의미인가요?
"기울 보에 비늘 린, 보린입니다. 제 스승이신 정해왕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필명인데요. 물고기 비늘을 깁듯, 정성껏 글을 쓰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물고기 비늘을 떠올려보면, 딱딱하고 매끈하잖아요, 그걸 기워 이어 붙이려면 참 어려울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왜 이런 이름을 주셨을까 생각해봤어요. 제가 그때도 판타지를 좋아하고 많이 썼는데, 좀 덤벙대는 성격이거든요.

아마 선생님께서는 그래서, 꼼꼼하게 공들여 글을 쓰라는 의미에서 지어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린에다가 성을 붙여보니, 약 이름도 떠오르고, 좀 어색해서 그냥 보린이라고 두 자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책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시리즈는 화가 선생님 성함도 버드 폴더여서, 외서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웃음)"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의 작가 보린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의 작가 보린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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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건 두근두근> 세 편의 소설 모두 '고기'를 소재로 분위기가 다른 소설을 쓰셨죠. 폐허가 된 미래, 사냥으로 먹고 살아야 했던 과거, 덫에 걸린 듯한 현재까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레고와 애플>에서 폐허가 된 세계에서 기계 소가 고기를 만드는 과정이 낯설고 독특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저는 현대가 생명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생명이 되는 경향이 가속화 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레고와 애플>은 이런 현대를 거쳐 다가온 미래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고민하며 만든 이야기인데요, 고기-기계, 기계 인간의 이미지가 안드로이드 나주였어요. 고기-기계, 기계 소의 이미지는 그 연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그냥 여러 이미지 속에서 불쑥 떠오른 거죠.

그런데 고기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했어요.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는데, 고기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이십 년쯤 전이었을 거예요. 첫 사건은 넓은 벌판에 더러운 소들이 악취를 풍기며 빽빽하게 서 있는 풍경을 본 일이었어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오랜 동안 같은 장면이 펼쳐졌는데, 그 많은 소들이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먹히기 위해, 고기로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얼마 뒤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났어요. 도막 난 소고기를 사왔는데, 지방이 많아 별 생각 없이 빨간 살에서 흰 지방을 발라내기 시작했어요. 그 뒤 아마 거의 한 시간쯤 편집적으로 흰 덩어리를 떼어내다, 불현듯 깨달았어요. 살에서 지방을 완전히 발라낼 수 없다는 걸요. 내가 난도질하고 있는 덩어리가 공산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었고, 지방은 생명의 일부였으며, 움직이지 못하게 된 뒤에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는 걸요. 저는 그 뒤 반년 쯤 고기를 먹지 못했어요.

그러고 세 번째 사건은 십 년 쯤 지난 뒤에 일어났어요. 주위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는데, 그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기분이 묘한 거예요. 저 역시, 일부러 고기를 찾아먹지 않았음에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낯섦, 껄끄러움, 죄책감, 이질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아치더라고요. 그때부터였죠.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꼭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 (문학동네)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 (문학동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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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린 작가님 작품 중 예전에 <뿔치>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주술적 요소라고 해야 하나요? 토속신앙 같은 거요. 이번 작품 중 <곰딸과 매발톱>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처럼 곰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도 등장하고요. 작품과 신화의 관계나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동물이 상징하는 것을 알려주시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작품에서 나오는 옛이야기 모티프나 신화적 요소가 등장하는 까닭에 관해 몇 번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우선은 제가 어릴 때부터 옛이야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익숙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다음은 이런 요소에 담긴 보편적이고 본래적인 상징을 활용하고 싶어서입니다. <뿔치>와 <귀서각> 두 작품에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 즉, 세계수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지요. 마지막으로는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가독성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편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지요.

그런데 <곰딸과 매발톱>에서는 주제 측면에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어요. 인간이 다른 종(동물)과 뒤섞인 상태에서 떨어져 나왔다가, 또 다른 종(기계)과 결합하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곰'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인간은 곰을 자신과 매우 가깝게 여겼는데, 이런 정황은 우리 단군 신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났고, 그 흔적도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인간과 닮아 보이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인류의 조상이라는 영장류보다도, 더 비슷하게 느껴져요."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의 작가 보린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의 작가 보린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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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는 <체리와 복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빠른 성장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혹은 거대한 시스템 속에 덫을 피해 살아가는 동물과 같다는 비유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배구를 하다가 폭행사건에 연루된 체리가 대답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먹지 않으면 먹히니까. 이기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것은 지독한 경쟁의 시대를 대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선 제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고요.(웃음) 저는 청소년들이, 청소년기의 저를 포함해서요, 지금 저보다 현명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 이야기도 제가 지금의 삶에 관해 느끼는 의문을 소설로 쓴 거라,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요... <체리와 복우>를 통해, 공유하고 싶은 건 있어요.

이 세계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이 세계와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렵다면, 그건 당신만의 문제도, 당신만 느끼는 문제도 아니다. 당신이 잘못된 건 더더군다나 아니다. 세계에 맞추기 위해 나를 망가트리는 건, 답이 아니다. 부디 오늘도 즐겁게, 별 일 없이, 세 끼 맛나게 드시고, 푹 주무세요."

태그:#보린,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 #청소년소설, #고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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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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