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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 오토바이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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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오고 있다. 여름이 오고 있는 것이다. 폭염보다, 장마철 누수보다 나를 비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창문을 열고 있는 내내 귓속으로 쳐들어올 오토바이 소음이다.

3년간 대학가 대로변의 원룸 빌라에서 살면서 청각과민증과 박동성 이명이 생겼다. 거의 소음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었는데, 그 후 소음을 피해 두 번 더 이사를 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소음에 시달리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시에서 환기와 휴식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욕심일까? 여름에도 창문을 닫고 밤새 에어컨을 돌리며 기후위기 심화에 발 벗고 나서야 되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이기에 매년 여름 오토바이 소음 문제가 화제가 되어도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 것일까.

신고 후 '복붙' 답변에 답답함만 커지는 시민들

부산에 거주하는 P씨 역시 배달 오토바이가 자주 오르내리는 지형에 살면서 소음으로 고통을 겪다가 관할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P씨는 "거리 현수막을 통해 소음기 불량을 제 때 정비하자는 캠페인을 열어주심과 더불어 소음기 불법 개조 오토바이를 단속"하는 등 "제발 해결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원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소관 관청인 경찰청으로 이첩되었다.

답변 내용을 요약하면, 최대한 단속을 하겠으나 인력이 부족할 수 있고, 경찰의 단속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평상시에 동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여 '경찰청 SMART국민신문고' 앱을 통해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신고했을 때 달리는 답변이 서로 똑같고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없다며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실제로 여러 민원 창구에서 모두 비슷한 내용의 답변이 올라오고 있었다.

경찰이 단속하고 식별하기 어려운 것을 시민들이 쉽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도 소음 발생 시 오토바이를 직접 촬영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정확히 찍는 것은 어려웠다. 번호를 외우려고 미간을 좁히고 노려보아도 4자리 번호 외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느슨한 소음 기준, 단속 중 안전은 경찰관 책임
 
국가소음정보시스템(noiseinfo.or.kr)에서는 60dB 수준부터는 수면장애가, 80dB 수준부터는 청역장애가 시작될 수 있고 90dB 이상일 시 난청증상이 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소음원의 사례별 소음 크기 국가소음정보시스템(noiseinfo.or.kr)에서는 60dB 수준부터는 수면장애가, 80dB 수준부터는 청역장애가 시작될 수 있고 90dB 이상일 시 난청증상이 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국가소음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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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충분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경찰의 무능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오토바이 단속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청원이 진행 중이다.

현직 경찰관이 작성한 이 글은 "현장경찰관들이 오토바이를 추격하거나 단속 시 본인들의 무리한 도주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 단속경찰관에게 책임을 돌리지 못하게 하여 오토바이들의 불법을 엄벌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처럼 자동번호판인식(ANPR) 카메라에 소음 감지기를 부착하여 차량 배기소음을 단속한다면 사정이 나을 텐데, 현재 한국은 경찰이 주행 중인 운전자를 직접 저지하면서도 운전자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니 단속의 고충도 이해할 만하다. 

현행법상 이륜차 소음허용기준이 높은 것도 걸림돌이 된다. 환경부령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은 이륜차 소음허용기준치를 배기소음 105㏈ 이하, 경적소음 110㏈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 항공기의 이륙 소음이 보통 100dB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실제 단속 시 불법 개조 오토바이의 배기소음은 120~130dB에 이르는데, 이는 전투기의 이착륙 소음과 같은 수준이다. 환경부는 배기소음 허용기준을 10dB 이상 낮추어 단속의 실효성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또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단속을 위해서 정부와 경찰청에서 인력과 경비 규모를 재편성하고, 국민청원 중인 '오토바이 단속 특별법'과 같은 새로운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험에 노출된 배달기사들, 편의만 중시하는 배달문화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항공기 소음이 나는 것은 대개 머플러, 즉 배기통 쪽에 있는 소음기를 제거하거나 배기통에 구멍을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토바이를 불법적으로 구조 변경하면 자동차 관리법 제29조, 34조, 52조, 81조 등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을 어기면서 굳이 불법 개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짜릿하게 달리기 위해 튜닝을 하는 경우 외에, 배달기사 중에는 안전성과 편의성 때문에 배기소음을 높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오토바이 소음을 듣고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준다거나 배달받을 사람들이 미리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위법 행위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배달 완료 시간을 짧게 잡아두고 사고의 책임은 배달기사에게만 지우는 배달업체의 운영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무리한 배달 시간은 의무로 두면서 안전은 알아서 지키라는 것은 모순된 요구가 아닐까. 이 같은 조건 속에서 배달노동자가 '다들 그렇게 하니까' '먹고 살려면 별수 있나'라는 생각으로 불법 개조를 하게 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억해야 할 점은, 소비자의 소비 형태가 기업의 운영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주문한 물건을 빠르고 손쉽게 받아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모두에게 나은 선택을 하려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져 불편은 조금도 감수할 수 없다는 마음자세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다른 외출은 쉽게 하면서 단지 '편리해서' 식사만 배달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포장 주문을 하거나, 빈 용기를 들고 가서 직접 받아오는 '용기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일회용품 쓰레기 대란 등 배달 문화의 여러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꼭 배달을 시켜야 한다면, 주문 시 '천천히, 안전하게 와 주세요' 탭을 체크하거나 메모란에 적어서 배달기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번 생에 꼭 살아보고 싶은 시대
 
달리는 오토바이를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카메라 앱이 열렸을 쯤이면 오토바이는 이미 저 멀리 하나의 점이 되어 있다. 신고에 성공한들 상황이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니, 이번 열대야에 창문을 열고 자긴 어려울 것 같다.
▲ 야간의 배기 소음 달리는 오토바이를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카메라 앱이 열렸을 쯤이면 오토바이는 이미 저 멀리 하나의 점이 되어 있다. 신고에 성공한들 상황이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니, 이번 열대야에 창문을 열고 자긴 어려울 것 같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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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은 일종의 폭력이다.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스트레스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우울과 무기력, 불면을 겪는다. 소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지원이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다른 얘기 같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거리의 모든 차량이 전기와 수소로 움직이는 시대를 경험해 보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현재 정부에서 전기이륜차 판매와 구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이륜차는 아직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기꺼이 선택할 만큼 충분히 빠르거나 저렴하지 않다. 단순히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조성에 도움을 주는 보조금 정책이 아니라, 성능 개발을 자극하는 높은 기준의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

귀 막을 준비를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게 걷는 시대, 밤이나 낮이나 창문을 열고 숨 쉴 수 있는 하루. 이런 거, 정말 꿈같은 얘기일까?

덧붙이는 글 | * 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민원 내용은 블로거 P님의 승인 하에 홈페이지(포토&태그 https://blog.naver.com/op2001/222271874651)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오토바이 단속 특별법 제정 청원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8439


태그:#배달오토바이, #불법개조, #소음문제, #배달노동자, #전기이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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