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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브랜드 인플레이션 시대에 도시브랜드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도시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대한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고자 <오마이시티, 오마이브랜드> 기획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인천광역시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도시브랜딩 활동의 기획·진행·평가 등을 짚어보면서 도시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천시 브랜드전략팀장이었던 박상희 경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이한기 <오마이뉴스> 기획취재 선임기자가 함께 진행한다.[편집자말]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해항도시의 기능과 역할도 변화한다. 해항도시도 리브랜드(rebrand)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차별화되고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개발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해항도시의 기능과 역할도 변화한다. 해항도시도 리브랜드(rebrand)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차별화되고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개발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 홍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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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항(海港)도시'는 바다와 맞닿아 있으면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위한 항구를 갖고 있는 곳을 뜻한다. 항만 기능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문화·상업의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거점이다. 예로부터 해항도시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고, 다양한 유동 인구를 상대하는 서비스 산업과 부대시설이 발달했다.

세계 주요 해항도시는 나라 안과 밖을 이어주는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세계도시가 부상하는 가운데 해항도시는 경제·관광 산업의 활성화, 새로운 민족정체성 찾기, 복합적인 문화 형성 등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과 현대, 문화와 경제, 지역과 세계,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해항도시의 기능과 역할도 변화한다. 해항도시도 리브랜드(rebrand)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차별화되고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개발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리브랜드의 목표는 대상의 리포지셔닝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은 소비자의 욕구 및 경쟁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기존 제품이 갖고 있던 포지션을 분석해 새롭게 조정하는 활동을 말한다.)

'리브랜드'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도시(혹은 기업, 제품, 서비스)의 가치를 높인다. 둘째, 사람들에게 도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셋째, 도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최소화 한다. 넷째, 도시의 새로운 브랜드 자산을 쌓아나간다. 

그렇다면 세계 주요 해항도시들은 어떠한 리브랜드 전략을 구사해 자기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을까.

포르투닷(Porto.) "포르투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포르투 그 자체"
 
포르투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그래픽 모티브로 개발해 포르투의 기존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시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포르투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그래픽 모티브로 개발해 포르투의 기존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시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 화이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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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Port)를 뜻하는 말인 '포르투(Porto)'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반도 끝에 있는 해항도시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포르투의 중심지인 역사지구는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아름다운 아줄레주(Azulejo, 도자기 타일)로 장식된 상 벤투 기차역과 독특한 포트 와인을 체험할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 등으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4년 포르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도시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비주얼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포르투의 건축·역사·문화 등 다양한 특색을 가진 아이콘을 개발했다. 이 아이콘은 단독은 물론 조합해서 쓸 수 있게 디자인됐다. 도시의 유·무형 자산을 활용해 다양성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시각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언어적 상징은 '포르투닷(Porto.)'이라는 도시브랜드를 내세웠다. '포르투는 그 자체로 포르투'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시각적 상징으로는 포르투갈의 시그니처인 아줄레주를 그래픽 모티브로 삼아 다양성 안에서 통일성을 추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70여 개의 개별 아이콘은 해항도시 포르투를 상징하는 컬러인 파란색으로 제작돼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포르투는 역사·문화적 자산을 그래픽 모티브로 개발해 포르투의 기존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시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포르투는 리브랜드 이후 관광객 한 사람의 소비가 평균 220유로(2013년)에서 412유로(2014년)로 크게 늘었다. 또한, 2015년부터는 A.T.커니(Kearney)에서 펴내는 글로벌 도시보고서의 도시 경쟁력 지수 순위권에 진입했다.

아이엠스테르담(I amsterdam) "내가 암스테르담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아이엠스테르담(Iamsterdam)' 상징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아이엠스테르담(Iamsterdam)" 상징물.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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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헌법상)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유럽 최대 규모인 로테르담 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무역항을 갖고 있다. 도시 규모는 암스테르담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로테르담이다. 170여 개 국적의 이민자가 사는 다양성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12세기 무렵 도시를 형성한 이래 유럽 해항도시의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시간이 지나고 도시의 역할이 변화하면서 암스테르담은 '환락의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커져갔다.

암스테르담은 이러한 인식을 바꿔놓을 도시브랜드 전략을 고민했다. 2002년에는 상업정신(Spirit of Commerce), 창의(Creativity), 혁신(Innovation) 등 세 가지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운하의 도시, 문화의 도시, 만남의 공간, 비즈니스의 도시, 지식의 도시, 거주하기 좋은 도시'라는 여섯 가지의 도시 가치를 만들었다. 그 가치들을 연결하기 위해 탄생한 게 'I amsterdam'이라는 도시브랜드 슬로건이다.

'I amsterdam'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온전히 자유를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각적 상징으로는 볼드체에 블랙과 레드의 강렬한 대비를 둔 로고를 만들었다. 이는 'I♥NY'만큼이나 특징 있고 직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다'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am'은 'Amsterdam'의 앞 두 글자와 공통분모를 이뤄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사진 공유 사이트를 통해 도시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다양한 상품과 조형물, 도시민과 여행자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도시에서의 여정을 온·오프라인으로 연결했다. 암스테르담 파트너스, 암스테르담 스토어 등 다양한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확장시켰다. 시민들은 결속력과 소속감이 높아졌고, 관광객들은 늘어났다. '옴니채널'은 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를 뜻한다.

암스테르담은 기존의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도시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창출하는 전략을 펼쳤다. 2004년 도시브랜드 활동을 펼친 이후, 2005년 '얀홀트 도시브랜드 지수'에서 6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브랜드 조사 결과, 브랜드, 자산, 기반시설 부문에 모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 파트너스 조직을 통해 꾸준히 브랜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유럽 5대 도시로 입지를 다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암스테르담 관광객 수는 1900만 명에 달했고, 2025년에는 2900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멜버른(Melbourne)의 'M'은 모던(modern)의 동의어
 
새로운 로고를 만든 뒤 성공적인 도시브랜딩 사례로 꼽히고 있는 멜버른은 도시 이름의 첫 이니셜 'M'의 다양한 변주가 곧 도시 자체를 상징한다.
 새로운 로고를 만든 뒤 성공적인 도시브랜딩 사례로 꼽히고 있는 멜버른은 도시 이름의 첫 이니셜 "M"의 다양한 변주가 곧 도시 자체를 상징한다.
ⓒ RAN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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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의 유럽'으로 불리는 멜버른(Melbourne)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다. 79개의 소도시로 구성돼 있다. 각종 산업이 발달했고, 문화 활동의 중심지이자 스포츠로도 유명하다. 19세기 골드러시와 세계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이민자들을 받았다. 멜버른 항구는 호주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 및 일반 화물을 다루며, 세계 300여 도시의 화물 항로가 있다. 

2009년 멜버른 시의회는 도시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리뉴얼을 결정했다. 글로벌 도시라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멜버른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멜버른의 상징으로서 함축성이나 간결함이 부족했다. 멜버른이 주최하는 다양한 축제·행사 등에서 시각적으로 통일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로고를 만든 뒤 성공적인 도시브랜딩 사례로 꼽히고 있는 멜버른은 도시 이름의 첫 이니셜 'M'의 다양한 변주가 곧 도시 자체를 상징한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역동적인 도시로서, 또한 살기 좋은 거주지로서 적합성을 두루 갖춘 멜버른의 여러가지 특성을 담아냈다.

멜버른의 M은 모던(modern)의 동의어이자 멜버른의 활기찬 이미지를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쓰임새를 선보였다.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에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서비스의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멜버른의 M은 심플하고 간결한 디자인인 동시에 직선과 레이아웃 패턴을 통해 무한대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유기적이면서도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M의 내부 공간을 어떤 색과 패턴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느낌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에 멜버른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데도 효과적이다. 

중국 최고 해양과학기술도시 꿈꾸는 칭다오
 
중국 칭다오 옛 시가지.
 중국 칭다오 옛 시가지.
ⓒ 중국주 서울관광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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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다오(靑島)는 나무가 많아서 일년 내내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과 청나라 때는 북방의 해안 요충지였지만, 규모가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쇠락의 길을 걸으며 홍콩을 영국에 할양(割讓)한 뒤에는 칭다오를 전력적 요충지로 삼았다. 1897년 독일군 침공 이후 99년 동안 칭다오를 독일이 조차(租借)할 수 있는 조약을 체결하며 칭다오는 이국적인 도시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100년이 넘는 유럽풍 저택 200여 채가 보존돼 있는 옛 시가지는 관광 명소가 됐다. 칭다오는 독일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고국의 맥주를 그리워하던 독일인에 의해) 독일 원료와 공법으로 새로운 맥주를 만들었다. 그게 1903년 노산의 청정 광천수로 만든 칭다오 맥주로, 나중에 세계 4대 맥주 가운데 하나라는 브랜드 파워를 얻었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1992년 8월부터 매년 맥주축제를 열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철강, 석탄, 석유화학, 조선 등 중국경제를 이끌던 전통산업이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한 칭다오는 미래 성장동력을 바다에서 찾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해양과학기술도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칭다오에는 해양과학분야 연구소만 30곳이 넘는다. 중국의 유일한 종합해양대학인 중국해양대학도 칭다오에 위치해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다섯 번에 걸친 국토순시 중에 세 번씩이나 칭다오 낭아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봤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불로장생의 약초를 구해오라며 금은보화와 수천 명의 동남동녀를 내린 서복이 출정한 곳도 낭아대다. 다시 바다를 향하는 칭다오의 시선 끝에 도시의 미래가 있다.

역사적 매력을 도시의 강점으로 되살린 요코하마
 
일본 요코하마시가 국제적인 비즈니스 도시로  조성하고 있는 미나토 미라이21 지구의 전경.
 일본 요코하마시가 국제적인 비즈니스 도시로 조성하고 있는 미나토 미라이21 지구의 전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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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의 쇄국(鎖國)정책은 200년 이상 지속됐다. 일본의 쇄국은 1859년 요코하마(橫濱)가 처음으로 서양에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일본은 요코하마를 통해 해외의 문화와 정보를 받아들였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신문, 호텔, 철도, 우유, 맥주 등 일본 최초의 음식과 문화가 시작된 요코하마는 일본 근대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했다. 개항 당시 100여 세대의 가난한 농·어촌이었던 요코하마는 개항을 계기로 인구와 면적이 계속 늘어났다. 2018년 현재 인구 약 370만 명이며, 도쿄 다음으로 큰 일본 제2의 도시다.

요코하마는 개항을 기점으로 현대적인 무역도시로서 기능을 갖추면서 실크와 차 등을 외국에 수출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시민의 힘으로 1929년께 재건에 성공했다. 요코하마는 1931년 이후 무역도시에서 화학·중공업 도시를 거쳐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1980년대에는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

일본의 경제 성장기가 시작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1989년에는 요코하마 엑스포(YES '89)를 개최했다. 2009년 요코하마 개항 150주년과 시정 12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기념한 요코하마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담아 'Imagine Yokoham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요코하마는 새로운 도시 가치와 매력이 예술과 문화의 창의성을 통해 창출되는 도시로 거듭났다. 요코하마의 특별한 매력은 역사의 발자취를 도시의 고유한 멋으로 승화시켰다는데 있다. 이는 주변 항구와 조화를 이루는 공원의 특이한 조형물들도 그렇고, 국제적인 박물관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통 대중예술을 보전하려는 요코하마의 노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코하마는 박물관, 클래식 음악홀 또는 노(일본 전통 가면 무극) 극장 등과 같은 문화시설을 만들어 발전시켰다. 도시 안에 있는 역사적 건물들을 활용해 예술가·창작가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요코하마 시의 경제적 부흥도 함께 꾀하고 있다. 요코하마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와 문화의 매력을 갖춘 곳이다.

인천은 어떤 모습으로 21세기 도시 경쟁력을 만들어낼까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배경은 이 도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볼 수 있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배경은 이 도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볼 수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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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876년 부산, 1880년 원산에 이어 1883년 인천이 개항했다. 개항장(開港場) 탄생 이후 일본과 중국 등 열강이 인천으로 향했고, 개항과 함께 조계(租界,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가 설치됐다.

자유공원을 바라보고 서면 왼쪽은 중국의 조계지, 오른쪽은 일본의 조계지였던 개항장의 이색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두 나라가 마주 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인천은 외국의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제국주의에 의한 아픔을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근대 역사·문화·예술과 건축양식 등을 품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천은 지속적으로 땅의 면적이 넓어지는 몇 안 되는 대도시 가운데 하나다. 인천은 다른 도시와 다르게 신도시 개발을 위해 바다를 메워 면적을 넓히고 아파트를 짓고, 경제자유구역을 만들고, 사업을 유치했다. 공항도 두 섬 사이의 바다를 메우고 연결해서 만들었다. 신도시가 바다를 메워 만든 땅에 형성됨에 따라 원도심은 그대로의 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원도심은 도시재생이 필요할 정도로 노후된 모습이지만, 다양한 시간의 지층이 쌓인 공간은 아픔의 역사보다는 시대적 향수와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지켜내고 싶었던 애틋한 삶을 품고 있다. 도시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포(老鋪)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노포 주인이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류와 산업의 중심으로 발달했던 인천의 과거가 그들이 지금까지 그 공간을 떠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레트로(retro)'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받는 지역 가운데 인천이 더욱 도드라진다. 인천에서 볼 수 있는 레트로는 인위적으로 포장되고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역사에 근거하고 살아있는 스토리를 지닌 '클래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배경은 이 도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볼 수 있다. 신도시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원도심은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도시의 품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적, 물적, 정보교환의 거점 역할을 하던 해항도시 인천은 21세기 어떤 모습으로 도시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인천 도시브랜드의 리포지셔닝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 번에는 인천의 리브랜딩 전략을 도시브랜드 마케팅, 정책브랜딩, 시민참여캠페인 브랜딩, 민간 영역에서의 다양한 로컬브랜딩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태그:#도시브랜드, #포르투닷, #아이엠스테르담, #멜버른, #요코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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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도시 및 국가 등 장소브랜드 관련 글을 기고합니다.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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