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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김훈의 소설 <개>는 개라는 거울에 인간을 비춘다. 치밀하고 섬세한 관찰력으로 무장한 김훈의 맑고 투명한 거울인 개는 인간으로 미처 보지 못한, 깨닫지 못한 것들을 비춘다.

15년 전의 <개>는 삽화가 포함된 동화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소 거칠고 격정적인 물살로 흘렀다면 2021년 개정판 <개>는 더욱 "안정되고 순해져" 잔잔하니 흐르며 인간 내면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큰 낱말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혔다. 글을 마음에서 떼어놓아서 서늘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야기의 구도도 낮게 잡았다. 가파른 비탈을 깎아내려서 야트막한 언덕 정도로 낮추었다." 5, 6쪽
 
2005년 초판본과 2021년 개정판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 김훈 소설 <개>  2005년 초판본과 2021년 개정판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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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의 더 굳건해진 발바닥

2005년에 초판 되어 23쇄를 거듭하는 동안 소설 <개>는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개정판에서는 부제를 뗐다. 가난하다고 했지만 충분히 넉넉했던 김훈의 발바닥은 더욱 풍성하고 굳건해진 느낌이다. 창작 당시의 감성과 호흡을 다시 되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수정되거나 추가된 내용에 덧댄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102쪽
 
소설의 주인공 진돗개 수놈 보리에 대한 이 얘기는 김훈에게도 적용된다. 문장은 더 간결해졌는데 의미는 더 증폭된다. 작가로서 투철하게 이어온, 제 몸뚱이를 비비며 세상을 살아온, 삶 전체와 맞먹는 글쓰기 내공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물론 모든 삶은 붕괴(breaking down)의 과정"이다. 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의 사람들, 흙냄새가 콧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못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죽음을 맞는 주인, 팔려 가는 보리의 엄마, 또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보리, 그리고 노년을 맞이한 작가 김훈까지. 개나 사람이나 시시각각 닥쳐오는 삶의 침수와 붕괴 과정을 몸뚱이 하나로 담담히 견뎌내야 한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절제된 모습으로 그 삶의 절망과 이별, 사랑과 죽음을 겪어내는 모습은 어느 순간 단단해진 발바닥의 군살처럼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 된다. 시종일관 개의 시선을 장착한 소설은 한 단계 더 낮은 톤으로 사람으로 지녀야 하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그럼에도 붕괴되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더 말랑해진 시대적 변화
 
"개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 (중략)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65, 66쪽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 늘 현재에 충실한 개처럼 말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걸로 작품의 의미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개정판을 낸 작가는 이제는 과거가 된 어떤 현재를 바꾸고 싶었던 것일까. 변한 것은 김훈일까, 시대일까.

개정판에서 수정된 내용 중에 크게 두 지점이 눈에 띈다. 하나는 수컷 진돗개 보리에 대한 묘사 부분이 톤 다운된 점이다. 보리가 사랑하는 흰순이에게 다가가는 격정적 감정을 깎아 야트막한 감정으로 다스렸다. 남성다움을 드러내는 마초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대는 점점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를, 투박한 꼰대의 권위보다는 부드러운 민주적 리더십을 선호하지 않는가.

다른 하나는 흰순이가 옆집 큰아들 군대 가는 날 보신용으로 죽는, 좀 잔인한 장면에 대한 수정이다. 이 부분은 출판사가 애견협회로부터 받았을 많은 항의와 개정 요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500만 명을 육박하는 시대, 보신탕 문화가 조금씩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수용이 아닐까.

개는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소설의 표현대로 그것은 "사람의 아름다움이고, 사람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이다. 오래된 글을 손보면서 시대와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가 작가의 고뇌였을 것이다. 그 고뇌는 흰순이는 어딘가로 떠나는, 무난한 결말로 타협점을 찾는다. 잔잔한 소설의 흐름과 더 잘 부합하며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이다.

2021년 개정판 <개>는 김훈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에 농익을 대로 농익은 작가의 삶에 대한 원숙한 성찰이 배어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주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말 못하는 짐승의 몸짓은 진한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간결체 문체에 격정의 감정을 덜어냈음에도 더욱 풍부한 성찰과 여운을 남긴다.

보리가 "컹, 컹컹컹……우우우우우……" 울면서 "당신은 정말 똥개가 아닌가요?" 묻는다면 수많은 유혹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는 정말 당당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까.
 
"똥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86, 87쪽

태그:#김훈,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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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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