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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고 2021년 장애인노동권 3대 요구안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고 2021년 장애인노동권 3대 요구안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천재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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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의 노동권? 왜 우리는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오늘은 그 배경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실시한 '2019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해당 조사를 통해 나타난 장애인의 노동권 현황은 처참했다.

장애인인구는 전체인구 대비 '경제활동률'과 '고용률'은 낮으며, 실업률은 높다. 그중에서도 중증장애인의 경활률과 고용률은 경증장애인의 절반수준이다. 

비장애인을 포함한 전체인구와 비교하면 전체인구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낮은 수치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은 중증일수록, 여성일수록 일을 하며 살아가기가 어렵다. 현재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이 설계한 노동시장에서 그 몸을 구겨 넣어서 적응하고, 재활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런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얻으면 장애인의 삶은 더 괜찮아질까. 단언하건데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몸을 구겨 넣어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장애인의 임금수준은 비장애인의 74.7% 수준으로 낮다. 심지어 최저임금법 제7조 제1호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법 적용제외 대상으로 규정하여 사실상 합법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같은 출발선에 세워두었다고 하여 공정경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노동권-생존권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권리인데 말이다. 

현행법상 장애인은 최저임금 안 줘도 되는 상황... 차별입니다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이상, 중증장애인의 삶은 더 이상 괜찮아지지 않는다. 노동권을 확보하는 과정이 곧 생존권을 확보하는 과정임에도, 지금까지 중증장애인은 당연하게 배제되어 왔다.

앞서 제시한 '2019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장애인들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그중 아래의 두가지 질문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같은 응답지를 선택했다.
질문1: 지난 주 일할 의사는 있었지만 지난 4주간 구직을 하지 않은 15~64세 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구직하지 않은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질문2: 지난 주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15~64세 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 응답자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수 응답: "장애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비참하지만, 이러한 대답의 비중이 높은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비장애인에 의해 설계되고 강요받아야 하는 일자리에서 이러한 대답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일하는 것, 노동하는 것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민의 권리이며 의무인데, 그 권리와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제시하지 못하니 이러한 실태조사를 할 때마다 이러한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실태조사를 하는 이유는 그저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제안한다: 권리중심일자리

글쓴이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일자리)'를 그 '대안'으로 고용노동부에 제안한다.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권리중심일자리',는 그동안 노동영역에서 배제되어, 비경제활동인구로 규정되었던 최중증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의 삶의 기반들을 새로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일자리이다. 

실제로 이 일자리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임금노동을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으며, 임금노동을 해봤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을 해봤다는 노동자는 찾기가 힘들다. 권리중심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이 살아가는 지역사회에서 활동지원 및 근로지원 제도를 사용하여 노동할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양질의 일자리다.

권리중심일자리는 기존에 시장으로의 이전을 목표로 하는 재활중심의 일자리와는 다르다. 공공영역에서 중증장애인이 일할 권리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며, 처음으로 장애인이 갖는 '노동의 권리'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써 보장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권리중심일자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으로 지난 2020년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올해 이 일자리는 서울을 너머 경기도에서도 작은 규모로 시범운영 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서울시와 경기도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더 이상 최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여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 허망하고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권리중심일자리는 충분히 검토하여 전국화 할 수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고 2021년 장애인노동권 3대 요구안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고 2021년 장애인노동권 3대 요구안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천재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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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권리중심일자리는 '장애인권리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인식개선강사활동'을 3대 직무로 제시한다. 직무를 수행하며 권리중심일자리의 노동자들은 지역사회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서울시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한다. 나아가 기존 비장애인-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맺고 있던 관계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알리고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떻게 다르냐고? 권리중심 일자리, 공공 의무가 강화된 일자리 

노동시장에 만들어져 있는 기존 일자리가 '능력중심' 일자리이고, 그 일자리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면, '권리중심'의 일자리는 노동이라는 행위 자체를 권리로서 수행하는 공공부문의 의무가 강화된 일자리이며, 이 일자리를 통해 생산되는 것은 서비스나 재화가 아닌 '권리'다.

권리중심일자리를 통해 최중증장애인은 권리의 주체로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를 주도하여 이행한다. 실제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 제8조 인식 제고에 따르면 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인권의 주체로서 장애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해 인식제고 캠페인을 강화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위원회는 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공무원·국회의원·언론·일반 대중들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권리중심일자리에 참여하는 최중증장애인은 협약의 내용을 3대 직무를 통해 체계적·지속적으로 정부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고 홍보한다. 권리중심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최중증장애인이 직접 이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당사자가 되는 국가의 의무와 역할을 지역사회의 최중증장애인이 직접 이행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채용한 장애인 275명, 코로나로 '위기'

하지만 권리중심일자리는 현재 시범사업이고 완전히 한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당장 내년에 이 일자리가 서울시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문단제목처럼 2022년 서울에는 올해 이 일자리에 채용된 275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실업자가 될 수 있다. 왜 그럴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 소비가 늘었고, 그 여파로 지자체의 장애인정책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대부분 삭감되었다. 실제로 2020년 10월 서울시는 2021년 장애인정책예산을 대폭 삭감한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권리중심일자리의 예산도 예산 삭감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20년 10월 13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투쟁했고, 이를 통해 서울시와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투쟁 이후 서울장차연은 공문을 통해 서울시로부터 권리중심일자리의 안정적 운영 및 제도화 추진, 일자리의 점진적 확대 그리고 서울장차연과 협의하여 다른 일자리와 권리중심일자리의 차별화된 평가 기준을 마련할 것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2021년도 권리중심일자리의 예산만 확보 했을 뿐, 그 외에 대부분의 장애인정책예산은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을 스스로 정리하며 확실해진 것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는 투쟁 없이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라고 다를까.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매섭게 위협하고 있다. 권리중심일자리사업은 국비지원 하나 없이 지자체 예산 100%로 운영되고 있고, 지금 이 일자리의 미래는 굉장히 위태롭다. 중증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 사업은 이토록 찾기가 어려운데, 그 일자리가 사라질 판이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은 아직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조금 과거로 가보자, 2017년 어느 장애인단체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권리를 확보하고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85일간 농성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고용노동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 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적제로 운영되었고, 심각한 실적압박을 느꼈던 중증장애인 노동자 설요한 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9년 어느 장애인단체는 다시 서울노동청에서 20일간의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그 농성을 통해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동료지원가의 죽음과 장애인단체의 적극적인 투쟁이라는 꽤 거칠고, 고된 과정을 지나서야, 중증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일할 권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이 불과 5년이 되지 않았다.
 
지난 2019년 12일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씨를 추모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지난 2019년 12일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씨를 추모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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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통해 275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은 서울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며, 지방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여러 장애인 활동가들은 장애인이 살기 좋은 곳이 그나마 서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자랑할 만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사회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우리는 최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권리중심 일자리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것을 보았고, 취업박람회를 진행하여 서른 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공동주최에 동의하며 이 일자리를 응원하는 것을 보았다. 전문가와 당사자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진행하였고, 그 외에도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를 수도 없이 제시했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구체적인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험하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이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을 앞서 제시한 자료 외에도 많은 수치가 증명하고 있음에도,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이 부족하면 언제나 삭감의 대상이 된다. 올해의 서울시은 어떨까. 많은 주의와 관심 그리고 바뀐 행정구조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올해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정당하게 노동권을 확보하는 과정에 공공기관 점거, 자살, 기자회견 등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면, 그 권리는 아직 주권자에게 확보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은 아직 대한민국에 자리를 잡지 못했고, 작은 돗자리 하나 펴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운 상황이다.

그러니 누군가 '대한민국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의 현주소는 어디쯤인가'를 물어본다면, 나는 '아직 주소가 없다'고 답하려 한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에 현주소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그 현주소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고용노동부에 요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의 지속성을 보장하라. 고용노동부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제도화하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이며,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업단 실무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 #장애인일자리, #권리중심, #노동권, #중증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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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업단 실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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