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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은 1888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에서 태어났다. 연극배우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였으며 그의 어머니도 아일랜드 혈통이었다. 부모가 소속 극단과 함께 전국으로 공연 여행을 다녀야 했으므로 그는 여행을 따라다니거나 혹은 긴 시간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서 지냈다.

1906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자퇴하고 선원이 되어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1912년에는 폐결핵에 걸려 6개월간 요양원에 입원해 지냈고, 그때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헨릭 입센(Henrik Ibsen),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등 유럽 극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심취해 자신도 전업 극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한다. 1914년 희곡을 공부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일 년간 다니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함께 미국 현대 희곡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네 차례에 걸쳐 희곡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고 193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35년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
 
절망과 환멸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남긴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되었다.
▲ <아, 윌더니스!> 유진 오닐 지음, 임창식 옮김 절망과 환멸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남긴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되었다.
ⓒ 임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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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의 희곡 작품 다수는 사회의 비주류에 속한 인물들이 희망을 지탱하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엔 환멸과 절망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비극적이고 염세적이다. 여기 소개하는 <아, 윌더니스!>(Ah, Wilderness!)는 세상에 알려진 그의 작품 중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다.

1933년 10월 브로드웨이의 길드 극장에서 초연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전국 각지에서 순회 상연되었다. 1935년에는 같은 이름의 영화(주인공 리처드 역 : 에릭 린든 Eric Linden)로도 제작되었다. 작품은 또 <날 데려가 줘>(Take Me Along)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에서 1959년부터 무려 448회나 상연되었다. 작중의 시드 삼촌 역을 맡았던 재키 글리슨(Jackie Gleason)은 1960년 토니상(Tony Award) 최우수 뮤지컬 배우상을 받기도 했다.

원작 <아, 윌더니스!>는 현재도 미국과 영국의 몇몇 극장에서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꽤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필자는 이 정도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번역되지 않았다는 데 놀라며 올해 3월 번역해 내놓았지만 서툰 솜씨로 작품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작품은 미국 소도시 중류 가정이 190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겪는 소동을 통해 잔잔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주인공인 리처드가 여자친구 아버지의 방해로 사랑을 의심하고 잠시 방황하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사랑을 재확인한다는 것이 중심 이야기다.

그것으로만 보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친고모인 노처녀 릴리와 그의 외삼촌인 노총각 시드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잠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다가 다시 절망으로 빠지는 것은 유진 오닐 특유의 비극적 요소라 하겠다.

작품의 제목 월더니스(Wilderness)에 대해서도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작품에는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ám, 1040-1123)의 유명한 시집 루바이야트(Rubaiyat)에서 시 한 수가 인용된다.

A Book of Verses underneath the Bough,
A Jug of Wine, A Loaf of Bread 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Ah, Wilderness is Paradise enow
(에드워드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 영역본)

나뭇가지 아래 시집 한 권,
포도주 한 병, 빵 한 조각, 그리고 당신
이 황야에서 날 위해 노래 부르네
아, 황야도 이만하면 낙원이라 하겠네.

이 시를 보면 작품의 제목을 어디서 따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작품에서는 앞의 세 줄만 인용되고 마지막 줄은 생략되어 있다. 유진 오닐식의 익살일까?

아, 윌더니스!

유진 오닐 (지은이), 임창식 (옮긴이), 부크크(bookk)(2021)


태그:#유진 오닐, #로맨틱 코미디, #아, 윌더니스!, #첫 우리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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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주로 책을 읽고, 간간이 번역일도 하며 소일한다.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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