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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학창 시절이 끝나면 공부와 영영 작별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중년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골프를 배우고, 진작에 포기했던 수학책을 다시 펼쳐 든 청년들이 있습니다. 또, '먹고 살기 위해' 재테크를 공부한다는 청년도 있고요. 요즘 젊은이들의 '공부', 오마이뉴스 청년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골프는 더 이상 중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골프는 더 이상 중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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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새 골프 치러 다녀!"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나의 친구 A가 들려준 얘기다.

직장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첫 독립을 시작한 A는 어느덧 자동차로 출퇴근을 한다. 어디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다니던 우리가 언제 커서 벌써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나이가 됐는지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아직도 상상만 하던 직장인이 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느끼하다'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A가 "그것보다 더 느끼한 얘기 해줄까?" 하고 들려준 소식이 바로 골프였다. 골프를 친다는 그 한 마디에 이야기를 듣던 친구 둘이 웃다가 감탄을 했다.

"와, 너 정말 어른(?) 다 됐네!"

어른의 척도가 골프라니, 정말 웃기지만 지금껏 취미로 골프 치는 사람을 자주 보지 못해 그런지 골프가 여전히 기득권 중년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A 역시 운동을 하나 배워보려는 찰나, 골프장이 많은 주변 환경에 같이 한번 배워 보자는 또래 직장 동료의 제안에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A의 말이 이어졌다.

"실제로 골프장에 가보면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 꽤 많아."

운동 삼아, 취미 삼아 가볍게 골프를 배우는 젊은 친구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나의 친구들을 포함해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미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게다가 취미 생활에 대한 세대 간의 경계도 어느 정도 무너진 것이 틀림없다.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우는 이들

내 주위엔 취미 부자들이 꽤 많다. 가까운 친구가, 지인이, 심지어 나의 엄마마저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또 즐긴다. 생계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오롯이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취미 생활일 뿐. 그들을 볼 때면 부러움과 동시에 그렇게 부지런히 살 수 있는 생의 태도에 대해 경외심 가까운 마음이 든다.

앞서 언급한 친구 A는 소문난 취미 부자다. 한참 가까이 지낼 때도 재봉틀을 배운다며 이것저것 만들던 친구는 지난해엔 필라테스를 배우더니 이젠 골프를 친다고 소식을 알렸다. 이 뿐만 아니다. 이 시국에 노래방 가서 뛰어놀지 못하는 설움에 솟구치는 내적 흥을 발산하고자 재즈 피아노를 배운단다.

그동안 거쳐 온 취미도 비즈 공예, 휴대폰 케이스 꾸미기 등 제법 다양해서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많은 것에 열정을 쏟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A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별거 없어. 그냥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래. 근데 배우다 보면 금방 질리거든. 그러니까 금방 그만두고 또 새로운 걸 찾고, 배우고 그러는 거지."

그런가 하면 중년이 되어 취미 생활을 꽃피운 나의 엄마 같은 인물도 있다. 한참 일하며 아이를 키우던 워킹맘 시절에도 합창단 활동만큼은 빼놓지 않고 하던 엄마는 몇 년 전부터 한식 조리, 컴퓨터, 한문, 서예, 캘리그라피 등을 쉬지 않고 배우더니 지금은 사진에 빠져 있다.

직접 구몬 한자를 등록해 사무실에서 학습지 선생님을 맞이하고, 부엌 식탁에서 숙제를 하던 엄마는 이제 방 하나를 본인의 작업실로 꾸며 놨다. 그렇게 공부한 한자는 구립 복지관에서 서예를 배울 때 유용하게 쓰인다. 글씨를 쓰는 것도, 보는 것도 열심히라 서예 선생님의 애제자가 됐다. 그런 엄마가 현재 무엇보다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사진이다. 일도 하면서 쉬는 시간엔 사진 수업도, 출사 수업도 한 번 빠지지 않고 나간다.

사진이라면 그저 휴대폰 카메라로 적당히 찍던 엄마가 마음먹고 DSLR 카메라를 장만했을 때, "그 비싼 걸 사서 얼마나 찍으려고 그래?"라는 못난 딸의 빈정에도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가던 엄마는 이제 순수히 감탄이 나오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에서 나아가 집에서 직접 포토샵으로 편집도 한다. 꽃과 자연을 담은 사진 속 색과 구도가 꽤나 멋져서 매일 같이 엄마의 성장을 목격하는 기분이다.

엄마를 소문난 취미 부자의 대열에 오르게 한 열정이 궁금했다. 내년이면 나이 앞에 6자를 단다며 푸념을 하는 엄마는 20대 딸보다도 더 바쁘게, 열성적으로 배운다. 엄마의 무엇이 그 원동력이 되는 걸까?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를 배우면 또 하나를 배워야 돼. 서예를 배우려니까 한자를 모르잖아? 그러니까 한자도 공부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편집을 몰라 답답해서 결국 포토샵을 배우러 다니고. 자꾸 그렇게 연결이 되더라고."
 
 엄마의 사진은 이제 딸이 오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엄마의 사진은 이제 딸이 오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 최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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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쓸모 없는 공부라도

주변 취미 부자들에게 묻다 보니 그들의 배움과 공부엔 대단한 목표가 없음을 발견했다. 이 취미를 살려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 같은 거창한 꿈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현재 내가 조금 더 즐겁게 살기 위해,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등 오히려 별 계획 없이 시작하는 일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공부들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취미에 불과해 생계에 도움이 되지도, 일상에 큰 쓸모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옛날 같았으면 "그게 밥 먹여주냐?" 하며 주변 어른의 핀잔만 듣기 일쑤일지도 모른다. 그저 넘치는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려는 실행력이 그들의 열정의 원천이다.

당장은 쓸모없는 공부일지라도 '무엇을 배우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하는 체험이다. 김영민 교수의 칼럼 <공부란 무엇인가> 시리즈 중 '나는 왜 배울까'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이른바 '쓸모없는' 공부는 결국 내가 나를 뛰어넘는 체험이다. 남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적 체험이고, 이것이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새로운 한 가지를 더 할 수 있다는 성장에 대한 인식과 성취감이 삶을 향한 동기 부여가 된다. 또한 배움은 성장과 동기 부여 그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공부는 또한 '섬세한 감성을 기르는 체험'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무언가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면 처음보다 더 섬세하게 대상을 구별하게 된다고 말한다.

커피 위에 그림을 그리는 라떼 아트를 배워보면 그것이 얼마나 세밀한 작업인지 알게 된다. 그 후로 카페에서 커피 위에 올려진 찌그러진 하트를 볼 때면 카페 알바생의 노고가 느껴져 안타까운 웃음만 난다. 모를 때보다 알고 난 후의 나는 한층 섬세한 인간이 된 셈이다. 골프를 배워보면 골프 선수가 새삼스레 더 대단하게 보이고,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다 보면 길거리에 걸린 별것 아니어 보이는 사진에도 감동을 받게 되듯 말이다.

취미, 공부, 배움, 여러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이 활동은 모두에게 여러 의미로 작용한다. 누구에겐 나의 현재를 더 살맛 나게 하는 활동이 되고, 어떤 이에겐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 그리고 또 누군가에겐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인생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계속 꿈꾸며 살고 싶거든, 그래서 배워" 

독일에 사는 지인 B는 정신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다. 의사 과정을 밟으면서 직장인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꾸준히 연주했다. 매 연말 오케스트라 공연에 참여할 만큼 열심히 하더니 연인의 부모님이 연 파티에서 멋들어진 바이올린 연주로 손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이런 것을 보면 어떤 배움이든 우리가 감히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먹고 사는 삶과 관련이 없기에 더 멋이 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공부는, 김 교수의 말처럼, 우리에게 자기 통제력을 놓지 않은 파계승 같은 멋스러움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사례를 더 소개하려 한다. 얼마 전 취직을 한 친구 C는 한때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좋아했던 음악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과는 관련 없는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잠시 멈췄던 피아노 연주를 다시 배운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퇴근 후에 연습을 하고 또 학원을 찾아 레슨을 받는다. C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글쎄, 만족스러운 정체성을 위해서? 대부분 그렇겠지만, 지금 하는 일이 내 적성과 정체성을 100% 반영하진 않으니까.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비로소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을 받아. 난 계속 꿈꾸면서 살고 싶거든. 그래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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