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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의 모습.
 서울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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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유행하는 괴담이 하나 있다. '민식이법 놀이' 괴담이다. 통칭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법률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개정안을 묶어 이르는 것이다. 이 명칭은 2019년 9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초등학생 김민식 사건을 계기로 개정안이 만들어진 데서 유래했다.

'민식이법 놀이' 괴담은 어린이들이 이 법을 '남용'하여,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일부러 자동차에 뛰어들거나 자동차에 와서 부딪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1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마저 관련된 트윗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렇게만 보면 '민식이법 놀이'는 마치 대단한 사회 문제인 것처럼 비친다.

법에 대한 과장된 공포

그럼 도대체 '민식이법'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일까?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경우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의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도로교통법 제12조의 제4항, 제5항은 스쿨존에 무인교통장비를 설치해야 한다거나, 안전시설 및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로 이야기되는 것은 주로 도로교통법이 아니라 특가법 규정이다. 신설된 법조문은 다음과 같다.
 
제5조의13(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를 포함한다)의 운전자가 「도로교통법」 제12조 제3항에 따른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같은 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제1항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본조신설 2019. 12. 24.]

제1호와 제2호의 형량에 관한 내용만 부각시키면서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놀이'나 '부주의'로 차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운전자를 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이 법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 고의로 스쿨존에서 자동차에 뛰어드는 '민식이법 놀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자. 이들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같은 조 제1항에 따른 조치(통행 속도를 30km/h로 제한하는 것을 말함)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라고 쓰여진 단서 조항을 잊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정된 스쿨존에서 속도를 낮추고 어린이의 사망을 방지하자는 취지의 법을 갖고서 마치 자신이 당장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할 것만 같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보면 우스운 상상이 떠오르곤 한다. 형법 제250조 살인죄 조항에 대해 '죽고 싶은 사람이 과도를 든 나에게 뛰어드는 놀이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살인죄의 불필요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비웃음을 살까? 그러나 어떤 운전자들은 정말로 이 정도의 인식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것 같다.

어린이 없는 '어린이 유행'

'민식이법 놀이'를 괴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놀이가 유행한다'라고 할 때 그건 어느 정도 범위에서 누구한테 유행한단 의미인가? 만약 실제로 몇 명이 고의적으로 차에 뛰어드는 행동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 해서 어린이 또는 초등학생 전반에 그런 놀이가 유행한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민식이법 놀이'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어느 지역, 어느 연령대, 어느 성별에서 얼마만큼 유행하는지에 대한 실체가 없다. 어린이 몇 명의 행동이나 장면이 과대 대표되어, 어린이들 전반을 '죽을 수도 있는 일을 놀이로 여기는 위험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첫째 어린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본다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행동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 셋째 '어른'들을 우롱하기 위해 '차량 앞에서 일부러 뛰쳐나올 것'이라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점에서 어린이에 대한 혐오 선동에 가깝다.

이런 운전자들의 태도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을 부추긴 원인들이 존재했던 까닭이다. 이는 바로 혐오 선동을 일삼는 이들과 그들의 말을 '받아쓰기'하는 언론 때문 아닐까 싶다. 일부 유튜버들이나 언론사들은, '민식이법'을 검색하면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동영상들, 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보며 '민식이법 놀이'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당사자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도 없이 이야기를 하며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

국가기간통신사와 주요 일간지, 방송 3사 모두 '민식이법 놀이'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을 내보냈는데, 그중 대부분은 어린이 당사자에 대한 취재 하나 없다. 그리고는 '교육'이 필요하다, 법이 잘못됐다 이야기하는 기사는 얼마나 공허하고, 또 악질적인가? 이제는 그런 괴담이 하도 많이 퍼져서 그 때문에 역으로 이런 장난이나 행동을 부채질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 '민식이법 괴담'을 퍼뜨리는 자는 누구인가? 

두려움을 운행하는 운전자들에게

도로교통법은 운전자의 의무를 규정하고, 면허를 발급할 시에도 운전자의 의무 사항에 대해 교육한다. '차량'은 '사람'에 비해 무겁고, 위험하며, 따라서 국가가 특별히 발급하는 '면허'가 없이는 '운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행자보다 운전자에게 많은 의무가 주어지며, 그것은 면허의 무게이다. 보편적으로 많이 발급되는 면허라고 해서 그 책임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법이 정해놓은 '특별한 주의 의무'가 요구되는 보행자의 대상으로는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이 있다. 이는 이들이 2등 시민이어서가 아니다. 보행이 느리거나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운전자에게 더욱 무거운 주의 의무를 지워놓은 것이다. 개정된 특가법은 운전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지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의무를 위반했을 때에 더욱 강하게 제재하겠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민식이법 놀이' 운운하며 지레 겁을 먹는 것은 단순히 어린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상정하여 악마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린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악용하는 악의적 행동을 할 거라는 담론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조치를 도입하자 이 때문에 자신들이 억울한 피해를 본다고 느끼는 역차별 담론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민식이법 놀이'라는 괴담을 쉽게 수용하고 전파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뒤에는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혐오·차별 현상이 존재한다.

어린이는 당신의 차에 뛰어들지 않는다. 뛰어든다고 해도, 그것이 고의일 확률은 매우 적으며, 실제로 고의일 경우에는 당연히 책임이 조각된다. 어린이에 대한 과도한 망상을 멈추고 차의 속도를 줄이자.

태그:#민식이법, #민식이법놀이, #아동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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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채움활동가. 법을 공부 중. 더 나은 제도를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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