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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지난해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는 모습이다.
▲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지난해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는 모습이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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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42년"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의 항소심(2심) 선고 결과가 법정을 메웠다. 조씨의 기존 45년 형보다 3년 줄은 형이었으나, 조씨가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이 '범죄단체조직'이라는 기존의 판단은 유지된 결과였다.

선고가 끝난 직후, 조씨는 방청석의 한 곳을 쳐다보고는 짧게 눈인사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밖에 법정을 나가기까지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시선이 향한 자리에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이날 조씨 아버지는 취재진에게 아들의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는데, 그곳에는 "염치없지만 모두가 행복하길 기도하겠다", "죄인을 꾸짖어 주셔서 아프지만 감사할 따름" 등의 내용이 적혔다.

재판부 "조주빈, 자기 범행 심각성·중대성도 몰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문광섭)은 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및 범죄단체조직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씨 외 공범 5인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앞서 조씨는 지난 2020년 11월 원심(1심)에서 박사방 사건으로 징역 40년을, 이후 지난 2월 박사방 범죄수익을 가상화폐로 받아 번 수익 1억 800만 원을 은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총합 45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앞선 혐의를 종합해, 조씨에게 징역 42년을 선고하면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 시설에 각 10년간 취업제한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억 828만 9945원 추징을 추가로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박사방이 '범죄집단조직'이라는 판단을 유지했다. 그간 조씨는 항소심에서도 자신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며 운영해 온 박사방이 '범죄집단'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끝내 이는 모두 기각됐다. 아래는 이날 재판부의 판단 일부다.
 
"박사방은 2019년 9월 중하순 경부터 소규모 그룹방을 중심으로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조직적 체계 및 구조를 갖춰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조주빈, 강훈 등은 이를 계속적으로 운영해왔다. (중략)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배포를 목적으로 하는 범죄집단이 2019년 9월 중하순 경부터 형성돼 2020년 3월까지 존속, 유지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조씨가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를 거쳐 성착취물을 촬영했다'고 주장한 부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씨가 거론한 피해자 모두 '강요와 협박에 의해 이뤄졌다'고 봤다. 이는 조씨의 양형 이유에서도 일부 언급됐다.
 
"조주빈은 피해자들의 나체 사진을 얻게 된 것을 기화로 이들을 협박·복종하게 한 뒤, 성적으로 모욕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하고는 이를 유포했다. 해당 사진·동영상들이 수많은 박사방 참여자들에게 배포된 이상, 앞으로도 무한하게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들의 삶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조씨를 향한 재판부의 질타가 이어졌다. 재판부는 "조주빈은 사건 범행을 본인이 주도적으로 계획, 실행한 것을 인정하는 한편 피해자를 속였을 뿐 협박·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 범행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잘 모르며, 이를 진지하게 뉘우치는지도 의문이다"라며 "이 사건 범행과 심각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조씨의 형량이 3년 줄게 된 이유는 항소심에 이르러 소수의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형량이 일부 줄은 점을 염두한 듯, 선고 말미에 "조주빈은 이 사건과 관련된 별건 혐의로 추가 기소가 된 상태고, 곧 재판을 앞두고 있다"라며 "그 사건에서 추가로 형이 부가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사방 공범들도 항소심서 감형 

이날 조씨와 함께 선고를 받은 공범 5인에게도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됨에 따라 원심의 중형이 유지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조씨와 마찬가지로 원심보다 형량이 줄었다. 

먼저 공범 천아무개씨(닉네임 랄로)는 원심의 징역 15에서 징역 13년으로 감형됐다. 천씨는 조주빈씨와 유사한 수법으로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성착취물 영상을 촬영하고,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를 받았다.

사회복무요원 출신 강아무개씨(닉네임 도널드 푸틴)는 징역 13년을 받았다. 강씨는 박사방 사건으로 징역 13년을, 범죄수익 은닉 사건에서 징역 2개월을 각각 선고 받은 바 있다. 강씨는 범죄수익을 은닉하며 조주빈씨 범행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그는 일부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해 가족을 위협하고, 그의 자녀를 살해하려 하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 바 있다.

이밖에 조씨의 공범 이아무개씨(닉네임 태평양)와 장아무개씨(닉네임 오뎅), 임아무개씨(닉네임 블루99)는 원심 형량이 유지됐다. 이씨는 미성년자라 원심과 같은 징역 10년에 단기 5년 형이 내려졌다. 이씨는 박사방에서 제작된 성착취물을 적극적으로 유포한 동시에  박사방 회원 수천 명을 모집한 혐의를 받는다.

장씨는 징역 7년, 임씨는 징역 8년이다. 두 사람은 조주빈씨에게 가상화폐로 금전을 제공해 성착취물을 구매·취득하고, 조씨의 지시에 따라 이를 유포했다. 나아가 이들은 다른 박사방 구성원들과 함께 성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중대한 조직범죄 인정한 것"

이날 재판 직후, 피해자 대리인단인 조은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는 "항소심 재판부도 박사방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라며 "발달된 기술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범한 성착취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중대한 조직범죄라는 것을 재판부가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1심이 그랬듯, 오늘의 항소심 선고도 디지털 성범죄 판결에 대한 이정표가 될 게 분명하다"면서 "오늘의 판결은 디지털 성범죄를 가벼운 범죄나 개인의 욕구 충족에 치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태그:#조주빈, #N번방, #박사방, #디지털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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