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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인권침해-부당해고 방치하는 서울고용노동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5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인권침해-부당해고 방치하는 서울고용노동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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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준)'은 5월 3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살 만한 집을! 해고노동자에게 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은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이기도 하지만, 고용노동청 바로 옆으로 난 지하차도는 거리 홈리스를 대상으로 종교단체들이 급식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동차 매연 가득한 그곳에서 매일 저녁마다 급식이 이뤄졌지만, 코로나19로 자선·종교단체들이 급식을 중단해 이제는 기껏해야 한 주에 한두 번의 급식만이 이뤄진다.

"코로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그거라도 주워 먹고 싶다."

한 홈리스의 한탄과 같이 홈리스에게 가장 먼저 닥친 코로나19의 위기는 '허기'였다. 생존권적 기본권인 '먹거리'를 민간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터에 그들이 급식을 중단하니 바로 급식 대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노숙인복지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 기준에 맞춘 급식시설을 설치해 홈리스에게 급식을 제공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도 없는 이 조항을 지키는 지자체는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비단 급식 뿐 아니라, 코로나19는 기존 홈리스 정책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인 홈리스 정책의 공백 역시 그렇다.

집답지 못한 주거 제공에 눈 감는 정부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조금씩 강화해 왔다고 하나 여전히 가설건축물 같은 집이 아닌 곳도 기숙사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농업 이주노동자 속헹씨 사망 이후 주거시설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하나 여전히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는 임시 가건물을 기숙사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비닐하우스 내 가건물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이는 기숙소로 쓸 수 없고, 그 외의 가건물은 관심 밖에 두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수준이다.

이렇게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도록 방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식비 징수지침을 통해 임금의 상당액을 숙식비로 공제하도록 하는 뒷배를 봐 주고 있기까지 하다. 값싼 노동으로 평가절하되는 것도 모자라 집답지 못한 곳에 높은 임대료까지 상납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강남 고급 아파트보다 비싼 면적당 임대료를 내는 쪽방·고시원 거주 홈리스의 현실과 판박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에 대한 주거권 보장을 당국이 소홀히 했기에 생기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주거권 특보가 한국에 방문해 주거권 보장 실태를 점검하였다. 사진은 주거권 특보가 서울역 쪽방촌, 부산지역 이주노동자 숙소를 둘러보는 모습니다.
▲ 주거권 특보의 한국 방문 2018년 5월, 주거권 특보가 한국에 방문해 주거권 보장 실태를 점검하였다. 사진은 주거권 특보가 서울역 쪽방촌, 부산지역 이주노동자 숙소를 둘러보는 모습니다.
ⓒ 주거권 실현을 위한 한국NGO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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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배제하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외국인을 보편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주거기본법은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제1조)하며, 주거권의 주체를 "국민"(제2조)으로 한정하고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주택공급신청 요건인 "무주택세대구성원"이란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수록된 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이 역시 외국인을 배제한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중 하나인 '주거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결혼이주민과 난민인정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이주민은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하여 본인 또는 배우자가 임신 중이거나, 대한민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배우자의 대한민국 국적인 직계존속과 생계나 주거를 같이하고 있는 경우에만 수급권자로 인정하는 특례조항을 두는 등 아주 제한적인 상황만을 특정한다. 한국인을 양육하고 부양하는 한, 한국인에 봉사하는 한 급여를 주겠다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국민 중심적인 제도인 것이다.

편협한 노숙인 등 복지지원제도

2018년 8월, L씨는 방문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건설업 취업인정증을 받아 건설직 일당노동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일자리가 급감했고, 본국 커뮤니티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는 벌어 놓은 돈을 곶감 빼먹듯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본국에 들어갈 비행기 값만 남게 되자 고시원을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하늘길 역시 막아 비행기 편이 없었다. 배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통비마저 소진한 그는 이제 노숙을 한다. 비자 만료는 이제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노숙인 등 지원체계는 그이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노숙인복지법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제2조)을 "노숙인 등"이라 정의하고 복지지원의 대상으로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문언상으로는 외국인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지부는 위 법이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법무부는 심지어 '중앙행정기관 외국인 정책 시행계획'(2017)에서 "행려 외국인 발견 시 외국인 전용 보호소에 인계하여 일시보호 후 본국 송환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당국에게 외국인 홈리스는 발견 즉시 그들의 나라로 보내면 족할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주거권 특보 권고, 차별 없는 주거를 권하다
 
2020년 12월 21일, 동짓날. 이주민 홈리스 L씨가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홈리스추모제' 선전물을 바라보고 있다.
▲ 홈리스 추모제 사전 마당 2020년 12월 21일, 동짓날. 이주민 홈리스 L씨가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홈리스추모제" 선전물을 바라보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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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주거권 특보는 2018년 한국에 방문하고, 2019년에 낸 한국방문보고서에서 "차별금지권과 평등권에 따라 성소수자, 외국인 거주자, 일정한 주소가 없는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소득 수준 면에서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들이 사회보장급여 및 주거급여를 받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임대주택 및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하며, 일정한 주소가 없는 사람, 외국인 거주자, 이주자, 성소수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₂

또한 주거권 특보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지난해 4월, 홈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지침을 내렸다. 특보는 본 지침에서 "이러한 전염병에 직면하여, 적절한 주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홈리스에 대한 잠재적인 사형 선고이며, 더 많은 인구를 계속 위험에 처하게 한다. 코로나19는 개인주의의 신화를 폭로하여 우리의 집단적인 복지가 '집에 머무는' 우리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₃

그의 지적과 같이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국적이 무엇이든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한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 누구라도 홈리스 상태에 있다면 주거, 의료, 급식 등 생존권적 기본권은 기한의 정함 없이, 수준의 차이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정 집단을 배제한 방역 대책이 무효하듯, 이주민의 주거권, 홈리스의 주거권을 배제한 채 모두의 주거권은 안녕할 수 없다. 모두가 존중받는 일터, 적절한 주거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자.
   
*참고자료
1. 이주민주거권네트워크, 2018, "이주민의 주거권" 「UN주거권특보방한대응 시민사회보고서」, 주거권실현을위한한국NGO모임, pp 39-44,에서 일부 인용하였다.
2. UN, 2019.6.11., Visit to the Republic of Korea, A/HRC/40/61/Add.1.
3. Leilani Farha, 2020.4.28., COVID-19 Guidance Note: Protecting those living in homelessness.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입니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준)’은 5.31~6.5.까지 일주일 간 “’21년 차별없는 서울 대행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날인 ‘주거권과 기후행동의 날’ 일정 중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의 발언 내용을 기사로 전합니다.


태그:#홈리스, #노숙, #이주노동자, #주거권, #차별없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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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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